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 도시의 가장 낮고 뜨거운 일터에서 발견한 인생의 존엄
장샤오만 지음, 허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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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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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깨끗한 공간을 너무나 당연하게 누린다.

바닥에 먼지가 없고, 화장실에 휴지가 놓여 있고, 쇼핑몰의 유리창이 반짝이고, 사무실의 복도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풍경을 보면서 그 상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닦고, 쓸고, 치우고, 채우고, 다시 닦고 있다는 사실은 깨끗함이 완성되는 순간과 함께 지워진다.

그래서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는 한 청소 노동자의 고된 삶을 기록한 책으로만 읽히지 않으며 그 동안 너무 쉽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도시의 풍경 뒤에 누군가의 몸과 시간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특히 내용의 출발점이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는 딸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성장한 뒤에는 부모의 말과 생활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모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내가 알고 있던 부모의 모습이 사실은 그 사람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에게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돈을 지나치게 아끼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몸이 얼마나 지쳤는지는 뒤로 미루는 사람. 딸의 눈에는 때로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그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 몸에 새긴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저자가 엄마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엄마의 삶을 따라가 보기로 한 선택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것을 우리 모녀가 함께 걷는 길이라 여기기로 했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 가운데 하나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왔을까’를 묻는 것에서 이해가 시작될 때가 있다. 엄마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그 과거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딸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의 역사까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하나의 긴 귀향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것은 ‘도시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도시의 발전을 높은 건물, 첨단 기술, 기업의 성장, 높은 임금, 편리한 교통과 같은 것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선전처럼 빠르게 성장한 도시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저자는 그 도시의 가장 화려한 표면을 조금 걷어낸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하루에 수만 보를 걷고, 오랜 시간 서서 일하고,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숨겨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

이 대목에서 ‘최저임금’이라는 숫자조차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은 노동자가 받는 돈을 보여주지만, 그 노동을 위해 얼마만큼의 체력과 시간, 건강과 삶을 내놓아야 했는지는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미화원의 노동을 바라보며 이렇게 표현한다.

🔖“쇼핑몰이 ...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화원 개개인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빼앗은 결과다.”

이 문장은 ‘청결’이라는 긍정적인 결과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노동의 결과라는 사실을 아주 간단하게 뒤집어 보여준다.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감탄하는 순간 누군가는 이미 수없이 바닥을 닦았을 것이다. 또한 ‘편리하다’고 느끼는 순간 누군가는 그 편리함이 유지되도록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

노동의 가장 낮은 가치란 돈을 적게 받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 자체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청소 노동자만 생각하게 되지는 않았다.
택배를 배송하는 사람, 새벽부터 매장을 준비하는 사람,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사람, 우리가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을 정돈하는 사람들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결과를 너무 쉽게 소비한다.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정돈된 건물에 들어가고, 새벽에도 배달되는 물건을 받고, 언제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하루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노동의 가치를 ‘필요성’으로 판단하면서도 실제 보상은 그와 전혀 다르게 책정한다는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가장 낮은 대가를 받는 노동이 있다.
반대로 사회에 꼭 필요한 정도와 상관없이 높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노동도 있다.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과 인간의 삶에서 갖는 가치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유난히 아프게 다가온 이유를 알게 된다.


책에서 마음에 오래 남은 장면은 딸이 엄마의 손을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엄마의 손가락 마디는 툭 불거져 있었고, 살갗은 작고 붉은 구멍들이 생긴 데다 몹시 거칠어져 있었다.”

손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삶을 많이 말해준다.
얼굴에는 표정을 만들 수 있지만 손에는 살아온 시간이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거칠어진 피부, 굳은살, 휘어진 관절, 상처와 흉터 같은 것들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장면은 ‘엄마가 힘든 일을 했다’는 설명보다 훨씬 아프게 다가온다.
딸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엄마의 손을 보고 나서야 엄마의 노동이 자신의 눈앞에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마음 아픈 것은 이런 대목이다.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요즘 일은 어떠냐고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가족이라서 오히려 묻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요즘 힘들지 않아?’ , ‘몸은 괜찮아?’
‘일은 어때?’ , ‘많이 아프지는 않아?’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너무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질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노동의 문제만큼이나 깊게 다가오는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계층 이동에 관한 이야기다.

부모 세대는 몸으로 일해서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주었다. 자식은 공부하고, 도시로 나가고, 좋은 직업을 얻으며 부모보다 다른 세계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자식이 올라간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 역시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다.

책 속 딸 역시 안정된 듯 보이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지만 성과와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모 세대와 하는 일은 다르지만 불안의 형태는 닮아 있다.

이 부분에서 ‘계층 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교육을 통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업을 얻으면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교육과 직업이 삶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동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자식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을 내놓았고,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혹사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뒤로 미루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오롯이 ‘나의 능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 있다.

나의 현재에는 누군가의 과거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성공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진다.


처음 저자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엄마를 기록한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 안에는 가족의 역사와 가난, 이주, 노동, 교육, 세대의 가치관이 들어 있었고, 그 모든 것이 딸 자신에게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왜 저렇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이 변화가 참 좋았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시작한 일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돌아오는 것.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평생이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부모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엄마는 ‘엄마’였지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꿈이 있었고, 두려움이 있었고, 포기한 것들이 있었으며,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인생을 너무 쉽게 역할 하나로 축소해버린다.

‘엄마.’ 혹은 ‘아빠.’

하지만 그 이름 아래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가난을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고된 노동도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가 없다.
부모의 희생 역시 ‘부모니까 당연히 해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그 고단한 삶 속에서 자식을 사랑했던 마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희생은 숭고하다고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희생 속에 있었던 사랑은 잊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좋은 균형감이라고 느꼈다.


책을 읽고 나면 내가 평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동을 ‘풍경’처럼 지나쳤는지가 마음에 남는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청소 노동자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깨끗한 건물에 들어가면서 그 공간을 깨끗하게 만든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부모가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해오던 일이니까’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그리고 나 자신 역시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 위에서 지금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기억하고 있을까.

이 책은 한 사람의 엄마를 따라간다.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청소부’라는 직업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낸 시간은 지금의 딸을 만들었다.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를 읽으며 ‘노동의 존엄’이라는 익숙한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노동이 존엄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내가 편리함을 누리는 순간 그 편리함을 만들어낸 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

값싼 노동의 결과를 소비하면서 노동자의 삶을 보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을 지우고 결과만 소비하게 된다.


나는 누구의 노동 위에 서 있는가.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은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대해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


서평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 마음에 남는 것은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다. 어쩌면 이해한다는 것은 완벽하게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깨끗하게 정돈된 건물에 들어설 때면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이 깨끗함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의 오늘은 어땠을까.

누군가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먼저 바라봐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삶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마음.
보이지 않는 노동을 너무 쉽게 지나쳤던 마음.


한 사람의 거칠어진 손.
그 손에 새겨진 시간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평소 너무 빨리 지나쳐버렸던 사람들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그 오래 바라봄의 끝에서,
타인의 삶뿐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까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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