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푸들 ㅣ 래빗홀 YA
우신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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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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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왜 하필 푸들의 모습으로 찾아왔을까.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욕망을 파고드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다. 지식과 삶의 의미에 갈증을 느끼던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이 원하는 것을 건네는 대신 그 대가를 요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처음부터 악마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우스트의 방으로 들어온 존재는 한 마리의 푸들이고,
곧 그 푸들은 메피스토펠레스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신영의 《블랙 푸들》을 펼쳤을 때 제목부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악마가 한 소년에게 무엇을 원할까.
《블랙 푸들》의 설정은 악마가 건네는 초록색 알약을 얼핏 보면 판타지적인 장치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하는 유혹과 닮아 있다.

‘남보다 뛰어나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우수에게 초록색 알약을 삼키게 한 진짜 유혹이 아니었을까.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더 많은 지식과 더 충만한 삶을 욕망했고, 《블랙 푸들》의 우수는 타인의 능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인정에 닿으려 한다.

두 작품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놓여 있지만,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갈망한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닮아 있다.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일곱 살 표우수에게는 탁수현이 바로 그런 존재다.

우수에게 수현은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가진 아이이자, 자신이 가장 받고 싶었던 엄마의 관심과 사랑까지 가져간 사람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때때로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이 숨어 있다. ‘저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더 솔직한 마음은 ‘나도 저 사람처럼 인정받고 싶다’일지도 모른다.

우수의 문제는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으로 측정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으려면 더 잘해야 하고, 친구보다 뛰어나야 하고,
누군가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하고, ‘최고’가 되어야만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내민 초록색 알약은 너무나 위험하면서도 너무나 달콤하다. 그것은 우수가 평생 원했던 ‘인정받는 나’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은 우수가 자신의 평범함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악기도 애매, 공부도 애매, 인물도 애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빠 닮아 머리라도 좋으려나 싶어 영재 검사를 해 보니 3퍼센트라는 평범한 숫자가 나왔다.”

여기에서 ‘3퍼센트’라는 숫자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100명 중 3명이라면 결코 부족한 숫자가 아닐 텐데, 우수에게 그것은 ‘평범함’의 증거가 되어버린다.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어도 내 옆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부족해 보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어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 앞에서는 실패처럼 느껴진다.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성적표, 대학, 취업, 연봉, 외모, 팔로워 수, 자산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한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가진 것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수의 질투는 경쟁 사회 속에서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질투를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질투가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기 부정으로 이어질 때가 아닐까.


메피스토펠레스가 제시한 계약의 조건이 인상적이었다.
🔖“그저 ‘멈추어라’ 말할 수 없다는 것뿐.”

우리에게도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조금 더'라는 욕망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 더’가 끝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이미 가진 것을 누리기도 전에 다음 목표를 세우고,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며 다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조차 잊게 된다.

《블랙 푸들》의 악마는 바로 그런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악마가 억지로 우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우수가 가장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더 무섭다.
가장 위험한 유혹은 내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내미는 것일 테니까.


🔖“그래, 해 봐. 탁수현. 마음가는 대로 쳐 봐. 건반에서 길 잃어도 돼. 내가 같이 길 찾으러 다녀 줄 테니까.”

이 문장이 《블랙 푸들》이 말하고 싶은 성장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고 느껴졌다.
우수와 수현이 있는 세계에서는 길을 잃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시험에서 길을 잃으면 안 되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되고,
연주에서 틀리면 안 되고, 인생에서도 정해진 방향을 벗어나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살아가면서 수없이 길을 잃는다.
길을 잃는 순간에야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틀렸을 때 다시 방향을 찾는 힘일 수 있다.
그래서 “같이 길 찾으러 다녀 줄게”라는 말이 좋았다.

성장은 때로 누군가와 함께 헤매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바라보며 작아졌던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그게 우수가 찾아가는 진짜 변화처럼 느껴졌다.


🔖“혼자서 도달하는 완벽함은 불가능하지만, 여럿이 만들어 가는 완전함은 가능하다는 것을.”

완벽함과 완전함을 구분한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완벽함은 혼자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반면 누군가에게 없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채워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면 혼자서는 가질 수 없었던 온전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경쟁’에서 ‘연결’로 나아간다는 점이 좋았다.

처음의 우수에게 친구는 경쟁 상대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친구는 함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서로의 상처를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성장한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보다 내가 잘해야 해’에서 ‘저 사람도 힘들었구나’로.
‘내가 이겨야 해’에서 ‘같이 가면 어떨까’로.

그 작은 변화가 사람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니 초록색 알약보다 ‘멈추어라’라는 말에서 생각이 오래 머물렀다.

멈춘다는 것은
계속 달리던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것.
그리고 남의 삶을 훔쳐야만 빛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에게,
사실은 나만의 빛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아마 그것이 우수가 찾아간 가장 중요한 답이 아니었을까.

혹시 나도 남의 빛을 바라보느라 내가 가진 빛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작품이 오래된 악마를 다시 불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은 여전히 무언가를 갈망하고,
그 갈망이 가장 약한 곳을 악마는 정확하게 찾아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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