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세계사 2 - 전쟁과 혁명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2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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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윌북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셔터를 눌렀다


1권은 185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그때에도 어디선가 싸움은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경이로운 순간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경이와 혼돈의 시대'에서 다뤘다면, 2권,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서는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영광스러운 순간은 지나가고 전쟁과 혁명, 대기근과 인플레이션 주가 폭락, 대공황에 이어 또다시 전쟁이 생기는 그야말로 격변하는 세상을 담았다. 


1권에서도 전투나 항쟁에 따른 충격적인 사진이 인상 깊었는데, 죽음과 관련된 부정적인 사진이 누군가에겐 힘들 수도 있고, 또 검열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차마 올리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양차 세계대전을 다룬 2권이다 보니 선명한 전쟁의 참상이 더욱 노골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저 사람만 죽은 것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해 건물은 박살 나고, 지역이 초토화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도시의 잔해를 허망하게 바라본다.


/

사람들의 영혼 속에 분노의 포도가 가득 차 있고

점점 더 무겁게 자라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글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사진과 영상 기술이 진보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글은 점점 선호 받지 못하는 게 요즘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진만큼 중요한 게 바로 글이다. 마리나 아마랄의 복원 기술이 있기에 이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한 장으로는 알기 어려운 순간의 상황에 댄 존스의 이야기는 더욱 밀도 있는 이해를 돕는다.


1920년대는 여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솔리니를 유럽 최고의 허풍선이라고 비판했다. 무솔리니가 발전시킨 파시즘 나치당 집권과 폭력적인 비주류 운동과 나쁜 농담 사이 어디쯤 놓여있던 나치당의 히틀러가 어떻게 집권할 수 있었을까?

프레임 안에 담기지 못한 장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빈틈없는 고증과 기술로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은 사진, 하지만 그 사진만으로는 미처 떠오르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어느새 100년의 세계사가 풍성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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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1 - 경이와 혼돈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1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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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윌북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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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자연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내 선사할 것이다.

카메라는 자연의 세밀함과 웅대함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판단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조의 힘을 발휘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몫으로 남겨둘 것이다.

─ 로저 펜턴, 1852년


/

제국 시대는 경이와 약탈의 시대였다.

제국주의 열강이 지배력을 전 세계로 확대하면서 모국에서는

신기한 물건, 신기술, 공산품, 본래 맥락에서 떼어낸 특별한 물품들을 전시하려는 취향이 생겨났다.

─ P.30, 「세계박람회」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로 시작하는 카메라는 185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기능을 가진 물건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855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박람회 최초로 사진이 공식 전시되었고, 서로 떨어져 있는 나라의 모습이나 어떤 사건의 순간, 또는 누군가의 모습을 확인하며 제국주의 열강이 서서히 저마다의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역사 채색 전문가이자 디지털 컬러리스트인 마리나 아마랄의 고증을 지킨 컬러링으로 역사적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역사서 『선명한 세계사 1 ─ 경이와 혼돈의 시대』는 185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서사를 담았다. 인물의 모습이나, 과거의 거리들, 놀라운 발명과 창조의 순간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다가온다. 마리나 아마랄의 복원된 사진과 함께 덧붙여진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역사 크리에이터 댄 존스가 맡았다.


1850년부터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책은 독자에게 마치 그 시대를 살아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얼핏 단편적인 역사들의 묶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댄 존스의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역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미세한 연결이 느껴지지 않을까.


역사는 반복된다. 기술의 발전, 새로운 것의 등장은 오래된 과거만이 가지는 특징이 아니다. 하마를 보기 위해 수천 명이 매일 같이 방문하고, 새로운 문명을 접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과 다소 양상은 다르지만 여전히 인류는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AI 같은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고, 등장하고, 모두가 관심을 보인다. 이는 전쟁과 유혈사태, 항쟁 등도 반복된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나. 책에서는 파리코뮌에서 코뮌 참가자들의 주검 사진이나 남북전쟁 후 들판에 시신이 널브러진 사진마저 아마랄의 기술 덕분에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전쟁이나 유혈사태에 무뎌진 독자라면 사진으로 목격하면서 다시금 평화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전투는 곧잘 정교하게 묘사해야 할 주제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극악함'이다!

─ 알렉산더 가드너, 1866년


선명한 역사의 이야기는 아직 1권이 더 남아있다. 1910년대부터 시작하는 2권에서는 양차 세계대전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을까. 아직 펴보지 않았지만, 진짜 전쟁을 다룰 거라 생각하니 긴장되는 한편 설렘과 기대로 가득하다. 역사에 이 정도로 호기심이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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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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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로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우리의 위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설정할 수 있다.


미국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이러한 혼란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버틀러는 "그런 혼란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호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따라서 우리와 타인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해준다"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자만심에 사로잡혀 독단적 태도를 고수하면서 털끝하나 상처입지 않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에 의해 붕괴되는 것이 더 낫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나 마찬가지"

라고도 말한다.


버틀러는 인간의 상호작용이란 합리와 모순, 붕괴와 구축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이라고 말했다.


─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마리나 반 주일렌


지독했던 운명을 딛고 일어나 프랑스 페미니즘 문단의 주목을 받는 비르지니 데팡트의 소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이 시대의 증오와 반목, 그리고 연대를 묻는다.


소설의 처음은 40대 남성 작가 오스카가 50대 여성 배우 레베카를 '긁는' 글로 시작한다.

그리고 20대 여성 페미니스트 블로거 조에가 '미투'의 신호탄을 터트리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기꺼이 붕괴하라


구설에 오르며 공격을 받은 오스카는 레베카와의 메일에서 자신의 슬픔에만 도취된 모습, 자신의 불쌍한 처지만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런 오스카를 동정해 주지 않고 강하게 비난한다.


/

최상위 계층을 미워하지 않는 이러한 편집증적 열기가 이상하다고요.

그저 당신의 이웃, 언제든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만 골라가며 증오합니다.

진짜 안전지대에서 보호받는 사람들이 아니라요.

─ P.178

주디스 버틀러가 주장했듯이, 이러한 혼란은 오스카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걸까. 그 붕괴에 이르기까지 꽤 긴 과정이 필요했지만, 결국 그는 출판사 홍보담당 직원이었던 조에를 향한 집착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고, 361쪽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딸에게도 이런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음을 느낀다. 조에의 고발 '덕분에' 평소보다 인세를 더 받게 되는 잭팟이 터졌다고 기뻐하는 모습엔 어떤 권력의 견고한 혜택을 마주한듯해 씁쓸함이 감돌지만.


/

제 인생을 공중분해 시킨 후,

그녀 역시 난생처음으로 엄청난 공격을 받았음을 깨닫는 중입니다.

그땐 제 슬픔에 몰두한 나머지 그녀 입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글에서 언급한 여자의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딸이 떠올랐습니다.


그 일이 우리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으며,

온라인의 어떤 여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은거죠.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 P.361

분노한 여성의 외침에 깨달음을 얻고 기꺼이 무너지는 기득권의 모습에서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느낀 것이 나뿐만이 아니기를.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한 '개자식'들과의 완전한 격리는 불가능하다. 오스카와 레베카는 술과 마약이라는 유해한 쾌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NA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타인의 취약한 모습을 마주한다. 그 과정이 오스카가 무너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이러한 장치의 등장은 술과 마약만이 유해한 쾌락은 아님을, 권력 또한 마찬가지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남성 작가와 여성 배우가 주고받는 이메일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따로 블로그를 통해 외치는 페미니스트의 글들. 각각의 절규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는 타인에 의해 연대로 이어진다. 서간 형식을 많이 띠는 이 소설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많은 독자들이 오스카의 변화를 느끼고, 영원한 분리만이 해답이 아님을 읽어내기를, 또 어떤 특권의 도취에서 벗어나 서로가 붕괴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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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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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비판하며 "역설", "모순", "아이러니"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역설적으로 모두 역설적이며 모순에 차있고 아이러니하다.

(…)

세상은 흰색 도화지가 아니다.

완전무결한 제도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말과 같다.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타협할지를 정하며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스켑티컬하다는 것도 순수한 합리성이 아니라

지금의 토양 위에서 조금 더 나은 제안을 생각하는 것뿐이다.

모든 것은 타협의 결과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이러니야말로 세상의 유일한 진리이자 방식이라 생각한다.


─ 「회의주의자에게 새해 인사하는 법」, 오후




201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장편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소설의 첫 장부터 독자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준다.

사슴을 사냥하는 사냥꾼, 왕발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화자 야니나 두셰이코는 교사를 은퇴하고 별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이웃인 왕발의 죽음 현장에서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그의 죽음은 사냥당한 동물들의 복수라고 주장하고, 죽음을 점성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왕발의 생년월일에 집착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폴란드 고원에서의 연쇄살인사건.

사실 이 작품은 장르상으로는 스릴러이지만 범인이 썩 중요하진 않다.



모피와 업진살

​밈이 되어버린 '업진살 살살 녹는다'를 알고 있는가? SNS에서 한 유저가 '인조가죽조차도 도살 장면이 연상되어서 소비하기 힘들다'라고 했던 발언에, 과거에 고기 사진과 함께 올렸던 글이 발굴되어 지금까지도 여전히 조롱 받는 일이다. 물론 업진살 얘기는 안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모피 착취의 잔혹함을 지적하는 부분마저 비웃음거리로 전락된 점은 유감이 아닐 수가 없다.(나 또한 한때 밈으로 소비했던 적이 있기에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의 화자, 야니나 두셰이코 역시 모순적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별자리로 타인의 운명을 읽기 위해 출생일과 출생지를 캐묻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묘사되었을까 봐 이웃인 작가의 저서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사회구조나 규칙은 비판하지만, 자신 역시 동물들 ─ 심지어 자신의 자동차까지도 ─ 을 다소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화자가 동물을 착취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에겐 살아 있는 생명체를 향해 총을 쏠 권리가 없다'라고 일갈하는 부분은 미친 여자의 미친 소리가 아니다.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가끔 눈에 들어오던 이 문장은 검색해 보니 드라마 환혼의 대사라고 한다.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운 인간만이 타인을 비판해야 할까?


​─
역설적이고 모순에 차있고 아이러니해도

​동물 사냥과 연관된 이들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서사를 가진 이 작품은 스릴러가 주는 도파민보다는 모순적인 문장들이 주는 혼란스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선과 악의 모호함, 텍스트화된 법과 텍스트화되지 못한 도덕, 어쩌면 이성과 비이성 사이의 줄타기일 수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해도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지 않았는가. 악행에 동참했을 때 면죄부 같은 것이 주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무결할 수 없으니 차라리 놓아버리는 게 맞을까? 소설은 역설적이고 모순에 차있고 아이러니하더라도 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주는 영향력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는지, 또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
체코 쪽에서 나의 처녀 비너스(금성)가 지평선 위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 P.368

​화자가 별을 읽는 서술은 상당히 디테일하지만 별자리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주장에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동물들을 위한 정당방위를 실천한 화자가 별을 읽고 무사히 도주에 성공하는 결말에서는 그동안 인간의 손에 의해 스러진 말 할 수 없는 생명들이 지켜준 건 아닐까 하는 두셰이코스러운 여운이 남는다. 이러한 해석이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해도 그렇게 믿고 싶은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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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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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A4 한 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강남구 소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라는 이력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비건 수업이나 코딩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어느 학교에서는 철학 수업도 하는구나. 오히려 이상하다. 철학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기초교육과정에 철학은 왜 없을까? 요즘에야 니체나 쇼펜하우어가 자주 '샤라웃'되고 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철학이라는 분야는 썩 선호되는 분야는 아니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쯤 살아보니 이제는 돈보다 어떻게 삶을 잘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철학의 쓸모'는 여기에 있었다.



『모든 삶은 흐른다』로 바다가 건네는 철학을 들려줬던 로랑스 드빌레르의 또 다른 저서 『철학의 쓸모』는 우리가 살면서 생기는 운명과 그에 따르는 고통에 철학으로 처방을 내려준다. 육체와 영혼, 사회, 그리고 그 외의 흥미로운 고통들, 태어난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만능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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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본래 철학은 의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의 정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학자의 이야기는 공허할 뿐"이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혹은 스스로를 '문화의 의사'라 칭한 니체 같은 몇몇 철학자들은 치유의 철학을 강조했다.​

진단명도 다르고 치료법 역시 다르겠지만, 치료의 목적은 같다. 문제가 있는 곳, 통증이나 종양이 있는 곳을 파악하고,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든 진리든 나에게 주어진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 P.13

저자는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 철학자까지 망라하며 우리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해 준다. 텍스트 속에서 독자는 이전부터 명확하게 느끼고 있던 고통을 처방받을 수도 있지만, 불편해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해 달고 살아온 삶의 병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창작물에서 좋은 이미지로 표상되는 '열정'은 사실 병일까? 인생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는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모든 것이 극도로 상업화된 시대에서 '질병'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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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의 경우 자유를 위협하는 병은 정신을 고통에 빠뜨린다. 행운이나 불운, 운명이나 숙명, 운수나 우연 같은 것들 때문에 우리의 자유의지는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또한 통제할 수 없고 일이 벌어진 후에나 수습할 수 있는 사건들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철학은 불행이 닥쳤을 때는 이를 견디거나 저항하거나 피할 수 있는 생존법을, 행복할 때는 이를 지키거나 바라거나 만끽할 수 있는 요령을 제시한다.
─ P.118-119



짧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참 '쓸모'가 많다. 좋았던 부분들에 플래그를 붙이려다가 너무 많이 붙일까 봐 그만 놓아버렸다. 어제는 '사랑'에 대한 글이 와닿다가도, 오늘은 '실패'에 대한 글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내일은 '일상'에 대한 처방이 궁금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매 페이지에서 답을 찾게 되는 내 인생이 그냥 잔뜩 병들어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적절한 처방을 받자. 먹는 약이 아닌 철학이라는 형태로. 피할 수 없는 운명에는 철학이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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