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치요 - 3천년 리더십의 집대성
샤오샹젠 지음, 김성동.조경희 옮김 / 아템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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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리더십을 찾아서

내가 어릴 때에만 해도 리더십은 모든 어린이 청소년이 가져야 할 중요한 역량 같은 것이었다. 날 따르는 친구가 있기는커녕 따돌림당하던 어린 시절을 지냈던 탓에 리더십을 가져야겠다는 큰 결심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때 리더십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뒀더라면, 오늘날 리더십이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는 걸 좀 더 명확하게 표현했을 텐데.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다. 그럼에도 아직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진 못했지만, 리더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사건들이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떠오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옛말은 과연 죽었는가. 그런 사건들이 켜켜이 모여 1인 자영업의 시대를 지나 무인 운영의 시대까지 왔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 혼자 운영하는 가게를 시작했을까. 그 배경에 강력한 뜻이 있었을까, 어쩌면 리더답지 않은 리더에 질려버린 사람도 있으리라. 수없이 많은 가게가 개업하고 폐업하고 다른 가게가 다시 개업하고 폐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리더라는 무게가 예전 같지 않은 핵개인의 시대에 한 번쯤 고전의 리더십을 돌아보아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 하게 된다.


우리가 리더에 있든, 리더의 자리에 있지 않든.


동양 고전이라 하면 『논어』나 『명심보감』, 『채근담』 따위가 가장 유명하니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겠지만 리더십이라 했을 때 실은 가장 좋은 책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태종 이세민의 명으로 편찬된 책으로 8만 9천여 권의 고적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즉 통치에 도움 되는 부분만 선별해 발췌한 『군서치요』라는 책이다. 통치자를 위한 책인데다가, 조판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중국 상황 탓에 한동안 유실되었지만 일본 궁중에서 다시 발견된 특이한 생존사를 가지고 있다.


천도, 덕치, 인의, 예치, 악치, 교육, 용인, 치정, 민본, 경제, 그리고 군사외교. 『군서치요』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중국의 샤오샹젠이 이 11개의 사상을 정리해 엮었고, 아템포 출판사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김성동 번역가와 조경희 번역가가 힘을 합쳐 이 오래되고 낯선 고전을 한국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리더십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사람이 읽었다. 하지만 리더십이나 통치라는 게 리더 한 사람만 잘 한다고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태종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참고한 이 통치술의 고전은 좋은 리더십도 알려주지만, 각자가 좋은 팔로워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든다.


/

현재 전세계적으로 재난이 빈발하고

사방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류가 자아를 잃고 사욕과 탐심이 날로 팽창하여,

전대미문의 도덕적 위기에 직면한 데 있다.

그리고 그런 도덕적 위기의 근원은 성현교육을 저버린 데 있다.


─ P.137, 「제6장 |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의 군주가 됨에 교육과 학문을 우선으로 삼는다」


도·덕·인·의·예, 이 다섯 가지 경계는 전자가 후자를 포함하는 관계라고 책은 설명한다. 도가 있으면 자연히 덕·인·의·예가 있는 것이며, 덕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인·의·예가 있다. 이 책이 편찬된 오래된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온 지금 많은 것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나. 예가 없는데 어떻게 도·덕·인·의가 있으랴. 지금 예가 사라진 모습은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군서치요·상서』에서는 현명한 인재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덕'을 꼽는데, 리더가 그런 안목을 당연히 가져야 하기도 하지만, 그 '아홉 가지 덕', 성품은 너그럽고, 도량은 넓고 깊어서 만물을 포용할 수 있으면서도 정중하고 엄숙함을 잃지 않는 등의 덕을 리더의 자리에 없는 우리는 가지고 있는지 묻는 것 같다.


때론 이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일지라도, 지금 우리가 되찾아야 할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책. 자본주의와 무한 경쟁 사회에서 『군서치요』는 다시 발견되어야 할 고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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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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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사회평론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난 1월, 김영민 교수의 『논어 연작』 중 한 권인 『논어란 무엇인가』를 반쯤 읽자마자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잠깐 『논어 연작』을 소개하며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게 전부였지만,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슬프게도 당시에는 출간 전이라서 흔적조차 만나볼 수 없었지만, 사유의 밀도가 높은 에세이에 환장하는 내가 2026년 처음 들어 가장 기대하던 책이 되었다. (*참고로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의 개정판이다.)


다시, 논어란 무엇인가

공자의 말씀을 제자들이 엮어 만든 경전이요, 수천 년 전에 발화된 동양 고전이자, 지금 시대에 많은 작가들에 의해 인용되는 텍스트다. 『논어』와 관련된 책을 모두 섭렵한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으나, 이 나이에 꼭 읽어야 한다던가 강조하는 제목을 보면 『논어』는 '불후의 고전'이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영민 교수는 다시 한번 『논어』의 성격에 대해 지적한다. '『논어』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고.

/
하지만 『논어』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
『논어』의 언명은 수천 년 전에 발화된 것들이고,
그 발화자와 청중은 오래전에 죽었으며,
그 언명에 원래 의미를 부여하던 맥락들 역시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면서 오래전에 사라졌다.



과거의 고전을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존재와 연애를 하는 일과는 다르다.
죽은 것을, 죽었기에 사랑하는 지적 네크로필리아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지켜야 할 사랑의 규약이 있다.


─ P.20


이어 김영민 교수는 이 죽은 텍스트가 죽어 묻힌 자리(콘텍스트)를 찾아야 죽은 생각이 부활한다고 말한다. 고전 속에 죽어 있는 생각들은 보다 넓은 콘텍스트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책은 공자의 『논어』를 큰 기틀로 잡아 그 위에 여러 층위의 텍스트를 인용하며 『논어』가 현대인들의 삶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침묵, 말해지지 않은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고, 인간에 대한 호오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지독한 현대의 삶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지. 폭넓은 지식과 유쾌한 글발로 정평이 난 믿고 보는 작가의 글로 어느 정도 에세이 보는 안목이 있다면 이 책의 좋음은 훑어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서문 매니페스토」만으로도 고전 읽기의 방법도 배울 수 있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디테일한 삶의 지혜마저 배울 수 있었던 책이었다.


/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찾아야 한다.

공들여 역사적 콘텍스트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을 때에야 비로소

고전 속에 죽어 있는 생각들은,

"죽은 연인의 흰목을/마지막으로 만질 때처럼/서먹하게" 온다.

고전이 담고 있는 생각은 현대의 맥락과는 사뭇 다른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기에 서먹하고,

그 서먹함이야말로 우리를 타성의 늪으로부터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상상의 지평을 열어준다.


─ P.24


'김영민 논어 연작'은 총 5권이다. 나는 아직 제일 라이트 한 2권뿐이 못 읽었지만, 『논어』에 깊게 파고 든다면 이 시리즈 전부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혹 『논어』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더라도, 『논어란 무엇인가』와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만으로도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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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하자,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고 - 사회과학 명문장 100
노명우 지음 / 원더박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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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원더박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연히 읽게 된 한 권의 책으로 생각의 틀이 확장되고, 디깅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좋아졌던 작가라 하면 저는 노명우 작가님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출간된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는 사고나 재난에 대하여 기억이 가지는 힘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교양고전독서』 시리즈는 숨어있는 좋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 대해서도 배우며 더 나아가 고전이 가지는 의미를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러다 잘 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을 읽고 방문한 연신내의 '니은서점'에는 마스터북텐더와 북텐더가 큐레이션 한 양질의 인문사회과학 책이 가득해 (자주는 못 가더라도 + 조만간 방문예정~) 저의 최애 서점이 되었답니다.

노명우 작가님의 생각도 좋은데 안목마저 너무 좋아하는 제가 견딜 수 없어할 책이 한 권 나왔는데요, 바로 노명우 작가님의 사회과학 필사책 『필사를 하자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고』라는 책입니다. 필사책이 이제는 너무 많이 나오는 시기이지만, 기존에 차고 넘치던 예쁜 문장이 아닌 낭만적 기대로 칠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를 포착해 현실을 표현한 사회과학의 문장을 담았다는 게 다른 필사책과는 차별화가 되는 포인트입니다.
앞서 니은서점의 큐레이션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어쩌면 이 책 또한 사회과학 서적 큐레이션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그저 보물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문장마다 노명우 작가님이 달아주신 주석도 공부가 되니, 평소 이런 쪽으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꼭 한 권 집에 두셔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필사책은 제가 글을 구구절절 쓰는 것보다, 목차와 내용, 작가만 확인해도 괜찮지 않을까, 평소보다 다소 짧게 쓰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좋으니까요. 더 말이 필요할까.

+
지금 원더박스 인스타그램에서 노명우 작가님과 함께하는 '리얼리스트 필사단'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흔치 않은 기회인데 놓치지 마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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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위한 철학 - 나를 짓누르는 삶의 중력을 거슬러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
시몬 베유 지음, 한소희 엮음 / 구텐베르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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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구텐베르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병철의 『신에 관하여: 시몬 베유와의 대화』를 읽고, 시몬 베유의 철학을 새로 눈을 뜨며 곧바로 문학과지성사 채석장 시리즈의 『중력과 은총』을 샀다. 내가 공감했던 건 한병철의 글이기도 하겠지만, 시몬 베유의 철학이기도 했으니까 꼭 원전을 읽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오늘날의 세태를 덧붙여 시몬 베유의 철학과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한병철의 책과 달리 누구 하나 손대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텍스트와 영성적인 것이 어색했기 때문일까. 내게 『중력과 은총』은 다소 알듯 말듯 다가오는 책이었다.


지금 시몬 베유의 철학을 필요로 하는 이는 적지 않을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소셜미디어와 무언가 놓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의 기질이 바탕이 되어 숏폼과 릴스의 유행을 낳았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적 흐름에서 누군가는 무기력을 느끼며 홀로 침잠하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 몽펠리에 3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통계와 진단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마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철학에서 찾은 심리치료사 한소희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현대인들의 번아웃 문제에 대한 답을 시몬 베유로 내놓는다. 구텐베르크 출판사를 통해 나온 신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위한 철학』이 그 책이다. 시몬 베유의 주요 저작물인 『중력과 은총』, 『신을 기다리며』, 『노동 일기』, 『뿌리내림』를 중심으로 현대 독자들이 쉽게 몰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엮었다.


파리 최고의 엘리트 교수직을 내려놓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접 겪어보겠다는 신념으로 르노 자동차 공장의 프레스공이 된 철학자 시몬 베유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진리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에는 아나키스트 부대에 합류하여 전선에 뛰어들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투신하며 약자에 대한 연민과 진리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은 시몬 베유는 나치의 집권 하에 고통받는 유대인들과 함께하고자 스스로 음식을 거부하다 34세의 짧은 나이로 일기를 마감했다. 사후에 소설가 알베르 카뮈에 의해 원고가 정리되어 출간되었고, 베유만의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비주의적 통찰이 많은 이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중력'과 '은총'.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으로는 중력[重力]은 물리학 용어로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뜻하고, 은총[恩寵]은 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말한다. 시몬 베유는 이러한 용어들에 더 높은 차원의 개념을 담아 이야기한다. 책을 엮은 심리치료사 한소희는 이러한 용어에 어려움을 겪을 독자를 위해 책 첫머리에 시몬 베유의 용어를 알기 쉽도록 정리한다.

이어지는 본문은 시몬 베유의 철학을 바탕으로 쓴 글들로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도울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풍경과 사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엮은이보다는 지은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세계를 해석할 때 자아가 닫혀있는 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다. 판단하려는 의지를 멈추고 내면을 공백으로 만들어 기다릴 때 정답은 찾아온다. 불행은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공포, 사회적 멸시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총체적 파괴 상태를 낳는다. 시몬 베유는 불행을 통해 '나'를 구성하던 것의 허상을 보고 더 큰 실재를 만나며 영혼이 성숙해진다고 한다. 지적 겸손과 존재의 투명성을 회복하는 순간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시몬 베유의 철학들과 이를 바탕으로 짜인 엮은이의 텍스트는 견고했던 자아를 가졌던 탓에 더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철학과 함께하는 심리치료사라는 이력이 눈에 들어온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최악의 순간을 지낸 적이 있었다. 정신과 약을 한동안 먹었지만 약은 속 쓰림만 남겼고, 정작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것은 약이 아닌 책과 철학이었다. 당신도 치열한 삶을 살며 무기력한 시기를 겪고 있는가. 어쩌면 이 책이 그 고통을 해결하는 하나의 답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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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루스트 - 삶의 슬픔과 희열, 위로와 예술을 알려준 우리들의 프루스트를 찾아서
김주원 외 지음 / 현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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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현암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민음사 릿터 49호, 『잠의 힘』에서는 10명의 소설가와 시인에게 「자기 전에 읽는 책」을 묻는다. 소설가 문지혁이 꼽은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문지혁은 자기 전에 읽는 책이란 모름지기 ①끝이 나지 않고, ②적당히 지루하며, ③그러다가도 어떤 순간엔 예기치 않게 섬광 같은 영감을 주어야 한다는 세 가지 요소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두 충족하며, 읽고 있노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느낀다고. 그러면서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한 가지 유의 사항을 남기며 짧은 글을 마친다.


'책은 열세 권이지만, 한 권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당신은 영원히 스완네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매일 밤 내가 그렇듯이.'


이 문장은 내겐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리다.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과 늘어지는 만연체를 가진 이 소설을 나는 한때 꾸역꾸역 붙잡고 10권까진 읽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13권까진 도착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느꼈을 때 다시 1권으로 돌아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독서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남는 건 있었으니 원전에서 파생된 글이나 프루스트에 관한 글을 마주할 때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읽었을까'하고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밤 시작된 기획으로 열 명의 필자가 모여 각자 고유의 시선과 개성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풀어낸 책이 한 권 나왔다. 제목은 『나의 프루스트』.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고 프루스트에 입문해 프루스트와 관련된 여러 저서를 쓴 유예진 교수와 인문학자, 문학연구가, 극작가, 피아니스트, 번역가 등의 전문가들이 함께 프루스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루스트 읽기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반가운 기획이 아닐 수가 없다. 길고 어려운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들에 확신이 안 설 때도 종종 있었는데, 『나의 프루스트』 속 글에 공감하며 내가 느낀 모호한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글이 봉준수 교수의 「길이를 화두 삼아」라는 글인데, 프루스트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도전해본 독자라면 '집요하게 내면에 천착하는 긴 소설'이라는 표현에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도, 그 만연체가 가지는 의의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동화인류학자 오선민의 「프루스트에게 배우는 일상의 글쓰기」는 프루스트가 그의 소설에서 일상의 어떤 것을 포착해 글감으로 삼았는지를 이야기한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김주원 교수의 「프루스트에게 피아노에 대해 배운 것」은 피아노나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프루스트의 책에서 피아노에 관한 텍스트가 나올 때 어떻게 읽고 생각하고, 무슨 음악을 들으면 좋은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루스트를 읽은 지가 오래되었다. 애매한 지점에서 읽기를 중단해, 언제 다시 도전할까 고민이 되던 찰나에 만나게 된 책이다. 『나의 프루스트』 속 프루스트에 관한 십인십색의 다양한 글은 독자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볼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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