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
QNTM 지음, XCninety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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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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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QNTM의 『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는 괴이와 격리물의 원조 SCP재단에서 연재했던 시리즈를 다듬어 출간한 소설이다. SCP란 Secure, Contain, Protect라는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온 단어로, 이 가상의 재단에서는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될 상식을 벗어난 초자연적 존재들을 격리하고 연구한다. 대표적인 괴물들로 마네킹처럼 생겼는데 누군가 이 SCP를 관측한 이상 시선을 떼고 눈을 깜빡인다면 관측자의 목을 부러뜨려 죽이는 SCP-173가 있는데, 여러 양상을 띠는 미지체들 중 QNTM의 이번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미지체는 인간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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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학과와 항밈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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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미지체가 있습니다. 괴물이란 말에 충실한 녀석들이 있죠. 위험한 밈적 성질을 지닌 미지체들이 있어요. 전염성 관념, 단지 관념인데도 물리적으로 위험한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격리가 필요한 대상이요. 바이러스성 개념이죠. 밈은 머릿속으로 쑥 들어갔다가 정신을 타고 다른 정신으로 옮겨가요.(P.20)


마치 한때 대한민국에서 소란이었던 '개근거지'라는 관념이 떠오르는 설명이다. '개근거지'란 모 인터넷 기사에서 다루어져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요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결석하고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는 것을 비하한다고 지적하는 글이었으나 실제로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개근거지'를 떠올리니 밈이라는 미지체가 골치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가?


그리고 이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항밈학과이다. 이 미지체 역시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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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밈은 전파되지 않는 관념이에요. 항밈성 개체 및 현상은 정보를, 특히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거둬 가서 집어삼키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면 현상되지 않아요. 펜과 종이를 가져다가 설명을 적어서 남들에게 넘겨주면 어지러운 상형문자만이 종이에 남고 아무도, 자신조차도 해독하지 못해요. 직접 관찰할 수도 있고 눈에도 멀쩡히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해요. 붙잡지 못하는 꿈, 공유하지 못할 비밀, 거짓말, 생명력을 얻은 음모론이 항밈이에요. 항밈의 개념은 생태계에요. 다른 관념을 잡아 먹는 관념이고…… 가끔은…… 현실의 한 조각까지 손을 뻗치죠. 이따금은  사람에게 까지도.(PP.20-21)


이 미지체를 마주하는 것은 밈적 성질을 지닌 미지체보다 더 위험하다. 밈적 미지체는 적어도 (작품 세계관 속에서는 '개근거지'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위험한 관념을 전제하겠지만) '개근거지'같은 좋지 못한 관념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이상 현상을 느끼고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항밈적 미지체는 마치 처음 보는 절대적인 존재처럼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 테니까.


소설은 기억할 수 없는 적, 항밈적 미지체에 대응하는 부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지[未知]라는 강력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쓰인 이 작품은 읽는 독자를 확실하고 끔찍한 혼란으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공략 없이 원 코인 클리어 하기일까?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옛 항밈학과는 왜 모든 정보를 가루로 만드는 항밈 폭탄으로 자폭을 했는가' 같은 미스터리와 잔뜩 검열되어 삭제된 텍스트를 소설 곳곳에 배치해 몰입을 한층 끌어올리고, 가상의 이야기지만 정보식동물(情報食動物)과 마주쳤을 경우 자신의 부모 이름과 배우자와의 관계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현실의 치매나 알츠하이머를 떠올리게 만들며 보다 실감 나는 공포를 자아낸다. 앞으로는 적당히 알고 적당히 까먹음에 감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력함만 느껴지는 관념과의 전쟁, 쏟아지는 허구와 실재를 구분하지 못하며 마침내 결말에 이를 때 '이게 바로 SCP지' 하고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이 결말은 기존 SCP팬에겐 충분한 만족감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겐 새로운 감상을 반드시 안겨줄 것이니 이 공포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이미 읽었을지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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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전설
백지영 지음 / 알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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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알렙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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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백지영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 『치킨의 전설』은 나에게 있어 꽤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나(배준환)의 시선과 이야기로 진행된다. 아내 수연과 이혼 후 아들 진수마저 오해로 인한 학폭 사태로 영국에 보내게 된 나는 이를 악물고 모아둔 돈과 주식까지 처분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감당할 수 없는 빚만 늘어가고, 전 직장의 보스는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항상 승승장구를 한다. 거기에는 나의 사업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날도 울분에 차 탑 타워가 보이는 곳으로 가다가 어두운 시장 임대를 내놓은 '치킨의 전설'이라는 가게를 발견하게 되고, 나는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그곳을 인수해 보스의 '뉴치킨'이 차지하고 있는 '황금날개'를 탈환하리라 마음먹는다.

명백한 계급을 드러내는 단어가 많이 보였던 1장이었다. 높고, 크고, 화려한 것으로 수렴하고 싶어 하는 한국인, 아니 인간의 욕망을 은유하는 듯한 '탑(TOP) 타워', '왕(王) 식품', '황금날개' 등의 단어는 우리는 남을 짓밟고서라도 나만 더 잘 되어야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뿌리 깊은 사고를 보여준다.


​2장에 들어서며, 소설은 화려함과 번화함을 보여주는 데서 벗어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주변인들로 시선을 옮긴다. 8차선 도로 건너편 탑 타워에 비해 몹시 초라한 나라시장이라는 무대. 그곳에서 하얀 닭과 24시간 돌아다닌다고 이사도라 할머니라는 멸칭 같은 별칭을 가진 인물을 다룬다. 이 장에서 모순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는데, 이 모순이란 비판적인 의미보다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모습을 작가가 텍스트로 적절하게 요리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왕식품'의 '보스'에게 착취의 수단으로 쓰였던 '나'라는 인물이 성공의 발판으로 다른 약한 생명체를 수단으로 쓴다는 점. 옥상을 뛰어다니는 하얗고 잘생긴 닭을 보며 치킨집 광고모델로도 손색이 없다는 독백을 하다가도 살아 있는 닭에 정신을 차리는 점. 하지만 이러한 점들에는 꼭 톱과 바텀 양 극단에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작가는 이사도라 할머니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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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 그렇게 딱 선을 긋는다고 되는 건 줄 알아?

모든 일에 선을 딱딱 그으려고 하니 세상이 이 모양이지.


─ P.73


​그리고 펼쳐지는 이사도라 할머니의 서사로 시작해 나의 과거로 이어지는 흐름, 그렇게 탄생한 레전드 치킨은 장자의 오상아[吾喪我]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 데모와 간첩으로 점철된 시대에 아득바득 살려고 타인을 팔아넘겼던 '나'의 기억들. 그때의 추억과 잘못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레전드 치킨'은 다시 부활하게 된다. 시대와 세대를 이어온 많은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담긴 치킨은 여러 사람의 추억을 되살릴 수는 있었지만 결국 우승은 하지 못했는데 그렇기에 이 작가의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비록 톱이 되지 못했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說]로 또 한 번 새로운 출발을 하며 끝이 나는 이야기는 이쪽과 저쪽, 위와 아래로 갈리며 서로를 밀어내는 비극을 가로지르는 육교의 역할을 한다.


​사실 내겐 다소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평소 소설을 읽을 때 멀찍이 떨어져서 이렇네 저렇네 쉽게 말해왔지만, 백지영 작가의 『치킨의 전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우리 삶의 문제가 피부로 확 와닿았던 탓이었다. 나 역시 때론 소설 속 '나'의 위치에 있기도 하고, '탑 타워'의 주민 같은 위치에 있으니까.


나는 우리 모두 길을 좁히고, 담을 허물자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이 소설을 떠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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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문장이 나를 만든다 - 소통의 고수 한석준 아나운서가 뽑은 인생 문장
한석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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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인플루엔셜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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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경력의 베테랑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석준 아나운서의 행보를 지켜보다 보면 그 비결이 몹시 궁금해질 때가 있다. 유튜브 <지식인사이드>를 진행하며 여러 패널들과 막힘없이 대화하거나 대화를 잘 이끌어가거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중함이 보일 때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싶어지는데,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진 못하더라도 글쓰기는 쉽고, 말하기는 어려운 나에겐 꼭 배우고 싶은 면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그의 책을 한 번 펴보는 건 어떨까. 평소 책을 읽지 않았다면 더욱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니, 바로 한석준 아나운서가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인생 문장 100편을 엮어 필사책 『매일 쓰는 문장이 나를 만든다』이다.

이미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 『한석준의 대화의 기술』과 『한석준의 말하기 수업』을 출간한 바 있는 그가 항상 책을 가까이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읽고 쓰기를 해오고, 읽다가 시선이 머물렀던, 때론 영화 속에서 길어올려 일기장에 받아 적었던 문장들을 소개한다. 책은 나 자신에 관한 문장과 사람과 관계에 관한 문장,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문장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삶이라는 키워드가 누구에게나 유효하듯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좋은 필사책이었다.


​필사책의 긍정적인 효과는 늘 말해 뭐 해 입만 아프지만, 누가 썼냐에 따라 새로운 문장을 만나게 되는 것도 계속해서 필사책을 읽어 볼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 어느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줄 한석준 아나운서의 문장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다 보면 삶에 어떤 풍파가 닥쳐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나 자신도 돌보고, 타인과 현명한 관계를 이끌어주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혜롭게 이겨낼 힘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으로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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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빼고 주문하신 회계 나왔습니다 - 어려운 용어도 단숨에 깨치는 기적의 회계상식사전
정소라.홍지연 지음 / 현대지성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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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분식회계[粉飾會計]'의 정의를 물었을 때,

'분식[粉食]먹고 회개[悔改]하기'라는 개드립만 떠오른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나예요…)


​국장을 얼렁뚱땅 들어가 버린 탓에 주식 공부마저 얼렁뚱땅하고 있었다. 주식할 때 꼭 봐야 한다는 게 전자공시시스템 DART 라지만 회계 같은 건 전공도 아니요, 대기업은커녕 회사도 다녀본 적 없는 데다, 사주에 재물을 뜻하는 재성마저 없어 기업의 재무제표 같은 돈 얘기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분식회계[粉飾會計]는 분식[粉食]먹고 회개[悔改]하는 건가요? 옹홍홍' 따위의 개드립만 떠오르는 나에게 쉽게 회계를 알려주는 선생님은 정녕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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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절망하고 있을 때, 거기에 코스피지수 떡락에 세게 처맞고 이도 저도 못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구원투수처럼 나타난 책이 있었으니 바로 현대지성에서 지난 10월 초 출간된 『숫자 빼고 주문하신 회계 나왔습니다』라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숫자는 빼고 일단 난해한 용어부터 정리하자는 의지가 팍팍 담겨있다. 저자인 정소라와 홍지연은 모두 현재 공인회계사와 회계학 박사로 일하고 있지만, 과거 회계와는 관련이 없는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동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공통점이 이 책이 만들었다고. 책의 서문에서 회계 비전공자로서 회계원리 강의를 들었을 때 첫 수업부터 높은 벽에 부딪힌 기분을 느꼈지만, 전공으로 한자에 익숙했던 덕분에 돌파구가 보였고, 한자를 풀어서 회계학 용어를 공부하니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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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빼고, 한자로 하나하나 풀어서 공부해 봅시다


​표어문자인 한자로 회계 용어 뜻풀이를 한 번 보고, 두 회계 전문가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하니 아무리 초보자인 나라도 이해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책. 거기에 익숙하지 않거나 모르고 있었는데 꼭 알아야 할 회계 용어까지 소개해 주니 책에 미치도록 감사하게 된다. 아니, 정가 17,500원으로 이런 수업을 하신다고요….

회계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주식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모두 권하고 싶다. 염승환 LS증권 이사의 추천사,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끝까지 읽게 만들어줄 것이다」에 최근 들어 얼씬도 안한 DART를 다시 들어가 보고 싶어졌으니 이걸로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분식회계요? 가루 분, 꾸밀 식을 써서 기업의 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도록 고의로 왜곡하는 행위라 하죠,라고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다 느닷없는 폭락에 그저 얼타던 초보 개미는 위기를 기회 삼아 이참에 회계까지 섭렵해 보고자 한다. 당신도 혹시? 그렇다면 같이 이 책으로 공부해 보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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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바깥에서 - 노예와 여성, 노동자와 소수자가 바꾼 쓰기의 역사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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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틈새의시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 반대편에서 항상 목소리를 내주는 고마운 털보 아저씨, 박홍규 교수님이 이번에는 여성, 노예, 노동자, 피해자의 언어를 쓴 작가를 소개한다. 지난 9월 11일 틈새의시간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표준어 바깥에서』는 우화를 통해 권력을 비판했던 노예 출신의 이솝부터 흑인이자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가진 제임스 볼드윈까지 17명의 작가의 생애와 작가의 작품이 가지는 의의를 풀어내는 책이다.

가름끈이 짧아 소개된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도 좋았지만 제목에 쓰인 '표준어'라는 단어가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시대와 소외되는 자들의 삶에 대해서, 또 그들은 그 시대에 감히 어떤 목소리를 내었는지 때론 교수님 개인적 일화와 단상도 살짝 더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유익하면서도 독자에게 오늘날은 어떤지 돌아보게 만든다. ​귄터 발라프에 따르면 노동자의 존엄성이 가장 심각하게 훼손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 상거래라고, 기업과 고객 사이에 끼여있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내하며 일한다고 한다. 극한의 효율과 편리함 때문에 수많은 쿠팡 노동자들이 사망에 이르렀음에도 쿠팡의 위상이 여전히 견고한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귄터 발라프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아마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쿠파스(*쿠팡 파트너스의 줄임말로 쿠팡 링크를 통해 수수료를 얻음)라는 사익을 위해 주류를 찬동하는 글을 쓰는 것만큼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소개된 작가 중 넷뿐이라지만, 여성 작가의 서사 역시 독자에게 가치 있는 정신을 안겨준다. 이 책의 취지와 꼭 맞는 작가로 꼽힌 스웨덴의 마이아 에켈뢰브는 청소 노동자나 신문 배달 같은 중심에서 빗겨난 일을 하며 버려진 종이 위에 자신의 글을 써 내려간 작가다. 스웨덴 사회복지 제도의 실상과 굴욕을 낱낱이 드러내며 낮은 자리에서도 책과 문학으로 고된 삶을 버텨냈다고 책은 소개한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교수님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맺음말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는 글쓰기」에서 그 동기를 밝힌다. 책은 보다 교육 환경이 좋지 못한 아이들에게 가능성과 중심에 설 수 없었음에도 위대했던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문자 권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도 보여주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글의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고. 바로 며칠 전이 한글날이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훈민정음과 97년 처음 도입된 기초교육과정으로 문자를 읽고 쓰는 데에 더 이상 장벽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문자로 쓴 글이 세상이 들어야만 하는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누구나 글을 쓰기를 저자는 권하고 있다. 주류와 권력으로 수렴하는 이 시대에 『표준어 바깥에서』가 저마다의 위치에서 경계를 깨부수는 도끼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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