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뮤직비디오 리터러시 - 노래와 영상, 플랫폼이 결합된 k-컬처의 최전선
최재경 지음 / 알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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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알렙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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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화면으로 가사와 함께 흘러나오던 뮤직비디오로만 학창 시절을 보냈었는데, 어느 순간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생기더니 뮤직비디오를 더욱 심도 있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창 빠져있던 아이돌을 보려고, 때론 노래를 들으려고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찾다가 어느 순간부터 영상미에 몰입되기 시작했었는데, 그게 아마 에스파의 「Next Level」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팬들의 과몰입을 위해 회사는 아이돌에 특별한 설정과 서사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유튜브라는 발판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노래, 춤, 비주얼, 영상 모든 것에 엄청난 자본을 쏟아붓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탄생한 자본주의의 집적체들을 적당히 즐기다가 누군가가 콘텐츠로 올리는 뮤직비디오 분석을 보다 보니 왠지 나도 이 영상을 더 잘 알고싶어진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런 욕구에서 비롯되어 이번 책을 읽게 되었다.


서울대 재학 시절 015B의 작사가로 활동하며 음악과 깊은 연을 맺게 된 한별미디어랩 최재경 대표이사가 오랜 세월 쌓아온 인사이트로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낱낱이 파헤쳐 본다. 박사 학위 논문과 기존 학술 논문을 바탕으로 쓰인 미디어 스트리밍 플랫폼과 뮤직비디오 읽기에 관한 인사이트는 지난 8월 말 알렙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케이팝 뮤직비디오 리터러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의 열렬한 시청자로 나 자신을 정의할 순 없겠지만,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적극 이용하는 입장에서 저자의 플랫폼에 대한 분석과 정의부터 깊게 동의하게 된다. TV에서 안테나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되고, 선택의 폭도 제한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스트리밍의 등장과 보편화는 주체가 아닌 이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쇼츠, 리믹스, 리액션으로 파생되는 콘텐츠는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확산세가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으니, 뮤직비디오의 퀄리티 역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 줄 수 있었음은 당연하다고 느껴지면서도 초기 뮤직비디오 제작 환경과 비교해 분석하는 글을 읽으며 뮤직비디오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 과거 뮤직비디오의 유형이 실험적이었던 건 영화나 광고에 비해 낮은 제작비 덕분이라고.


책은 가볍게 뮤직비디오의 성질을 톺아본 다음, 저자가 강렬한 흥미를 느낀 어떤 뮤직비디오에 대해 본격적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하는데, 바로 BTS가 군백기를 끝내고 완전체 복귀를 알렸던 곡, <SWIM>이다. 음악과 함께 정교하게 짜인 영상에 대한 분석은 읽다 보면 한 번이라도 영상을 직접 보고 싶게 만든다.

이어 제니의 <Mantra>나,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등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뮤직비디오로 읽은 사회현상을 설명한다. 당신은 제니의 <Mantra> 뮤직비디오가 KBS 심의에 걸린 이유를 알고 있는지. 나 역시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가사와 영상에 온갖 브랜드가 노출되어 '브랜드 언급 금지' 조치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또, 나의 유튜브 시청 패턴을 간파당한 듯해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책은 유튜브 댓글 역시 영상을 보게 만드는, 또 참여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임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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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튜브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계속해서 확장되는 '열린 텍스트'에 가깝다.

화면 위의 영상과 그 아래의 댓글이 결합해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

그 안에서 창작자와 수용자는 끊임없이 자리를 바꿔 가며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경계가 흐려지고 역할이 뒤섞이는 현상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만들어 낸 새로운 창작 환경의 핵심 특징이다.


─ P.130


논문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다 보니 심도 있으면서도 다소 어려웠지만, 읽어내고 나면 모두가 궁금해할 내용이 3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실제 뮤직비디오 여러 편에 대한 심층 분석이다. 아마 많은 독자층이 기대하는 내용이 아닐까. 앞서 분석을 위해 언급되었던 BTS의 <SWIM>부터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내가 좋아하는 인피니트가 목록에 없다는 건 살짝 아쉽지만 거대 자본이 어떻게 영상을 창조했을지 그 분석이 궁금한 케이팝 팬이라면 최재경 대표의 『케이팝 뮤직비디오 리터러시』는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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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양장)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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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만 보고 사놓고는 오랜 기간 방치해뒀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까치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클럽을 계기로 첫 페이지를 떼고, 완독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사놓고 읽지 않았던 기간 동안 이 책은 북스타그래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슬쩍 훔쳐본 읽은 사람의 후기에는 대체로 충격적이라는 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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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충격적이라 봐야 출판사가 인문교양서적을 주로 출간하는 '까치'인데…, 하고 별 걱정 없이 펼쳤던 내게 1부 「비밀 노트」는 꽤 당혹스러운 묘사가 많았다. 개와 수간을 즐기는 마을에서 괴롭힘당하는 장애 여성, 손주에게 욕설을 퍼붓는 할머니, 협잡질을 배워가는 쌍둥이 소년 아무리 '까치'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지만 이 모든 묘사가 나에게 있어 포르노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건 ─ 어쩌면 출판사 콩깍지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위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왜 섹스를 그렇게까지 묘사했을까, 어린아이의 도덕성이 그렇게까지 타락했을까. 전란 속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가족과 마을 사람에게 미움받는다는 상황, 그러한 불행한 삶 속에서 스킨십으로 잠깐의 현실 도피를 하고 싶었으리라는 어설픈 추측과 생존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인 집착일 것이라고, 나는 겪어 보지 못했던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을 어림짐작하며 조심스럽게 행간을 건너게 된다.

​하지만, 2부와 3부를 지나며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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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OILER ALE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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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까 함부로 글을 쓰기 난감하지만, 1부의 지독한 묘사들은 창작물, 그러니까 '거짓'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치 『왕좌의 게임』이나 『반지의 제왕』처럼 온전히 판타지로 치부할 수 있을까, 진실이 아니고 거짓이었구나 안심하기엔 우리는 모두가 현재진행형으로 목격하고 있지 않은지, 비슷한 수준의 지독한 일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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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존재와 문학에 있어 진실인지 거짓인지 세세하게 따질 필요가 있냐고 이 세 편의 소설을 통해 독자에 묻는 것 같았다. 쓰디쓴 풀뿌리를 씹어 삼키는 것처럼 불편함을 견디고,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진리를 찾아내며 읽는다면 마치 슬라보예 지젝처럼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다른 작품, 『잘못 걸려온 전화』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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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 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ㅣ 무작정 따라하기 경제경영/재테크
김선희 지음 / 길벗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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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길벗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증권투자는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여유자금으로 분산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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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준 고민이라면 바로 '언제 팔아야 잘 팔았다고 소문이 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시장은 이게 가장 싼 가격이고, 이게 가장 비싼 가격을 알려주지 않으니 운이 좋았던 고작 몇 번에 취한 끝에 물려버리고, 강제로 장투를 시작하게 된 나는 왜 주식을 오래 들고 있게 되어버리나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까?

정녕 예금만이 정말 답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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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개미들의 든든한 출판사 길벗이 또 답을 가져왔다. 투자법 원칙 제1조가 무려 '장기 투자'인 투자 상품이 있으니 바로 '리츠(REITs) 투자', 국내 1세대 글로벌 리츠 펀드매니저 김선희의 가르침으로 이 '리츠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 수 있는 책 『리츠 투자 무작정 따라하기』가 따끈따끈하게 출간되었다.


​* 리츠(REITs)란?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의 줄임말로 「부동산투자회사법」 제2조제1호에 따라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 및 부동산 관련 증권 등에 투자·운영하고, 수익을 배당하는 간접투자기구(출처 | 리츠정보시스템)를 말한다. 


​AI 쇼크로 반도체주와 코스피지수가 떡락을 해도, 입지 좋은 부동산만큼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뽐냈음을 지난 검은 월·화·수·목·금·토·일을 지나며 깨닫게 되었다. '주식 팔고 집 살걸', 하고 울부짖던 개미들의 곡소리를 듣고도 '다시 투자'를 권유하는 글이 될까 우려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고 천장에 굴비 매달고 간장에 밥을 비벼 먹더라도 조금씩 모아가기로 마음먹었다.


​─

나만 알고 싶은 리츠 투자의 좋은 점


​/

배당주 중에서도 배당의 원천이 되는 임대료는 채권 이자 다음으로 법적 강제성이 높을 뿐 아니라, 리츠 제도상 배당가능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해야 합니다.

─ P.31


​리츠 투자는 중위험·중수익의 안정을 뽐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배당의 법적 강제성이 높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인이다. 과거 코스피지수가 2000~3000대를 오가다가, 2025년 처음 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을 한 이후 크게 9000이라는 고점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지수가 두배 가까이 오른 것을 보면 높은 주주환원률이 가지는 가치는 주식을 엊그제 시작했어도 잘 알만한 정보다. 이런 견고한 법적인 울타리를 치고, 여기에 투명한 경영 정보 공개와 나 대신 일을하고 나 보다 일을 잘하는 전문가가 있으니 롤러코스터같은 국장에 더는 쓸데없는 분석이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나같은 투자자에겐 속이 편안한 정답지처럼 느껴진다.

실물 부동산이 있으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건물이 강남이나 광화문같은 입지 좋은 곳에 쫙 깔려있는 번쩍번쩍한 첨탑일 수 있을까. 갈수록 노후화되고, 나의 관리 능력도 별 기대가 안될것 같다는 상상까지 하다보면 더욱 리츠 투자에 솔깃해진다. 전 세계 1% 부자들과 미국, 노르웨이 등 연기금의 포트폴리오에는 반드시 '리츠'가 있다고.


​투자란 결국 본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하고, 여유자금으로 분산투자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에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책을 읽기만 하더라도 투자에 관한 좋은 인사이트를 구할 수 있으니, 그럼에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손해만 보고 떠나면 실패한 투자자가 되지만,

이 악물고 공부하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올해의 일을 투자자 인생의 해프닝정도로 책에 쓰게 되는

성공한 투자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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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
QNTM 지음, XCninety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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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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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QNTM의 『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는 괴이와 격리물의 원조 SCP재단에서 연재했던 시리즈를 다듬어 출간한 소설이다. SCP란 Secure, Contain, Protect라는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온 단어로, 이 가상의 재단에서는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될 상식을 벗어난 초자연적 존재들을 격리하고 연구한다. 대표적인 괴물들로 마네킹처럼 생겼는데 누군가 이 SCP를 관측한 이상 시선을 떼고 눈을 깜빡인다면 관측자의 목을 부러뜨려 죽이는 SCP-173가 있는데, 여러 양상을 띠는 미지체들 중 QNTM의 이번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미지체는 인간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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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학과와 항밈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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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미지체가 있습니다. 괴물이란 말에 충실한 녀석들이 있죠. 위험한 밈적 성질을 지닌 미지체들이 있어요. 전염성 관념, 단지 관념인데도 물리적으로 위험한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격리가 필요한 대상이요. 바이러스성 개념이죠. 밈은 머릿속으로 쑥 들어갔다가 정신을 타고 다른 정신으로 옮겨가요.(P.20)


마치 한때 대한민국에서 소란이었던 '개근거지'라는 관념이 떠오르는 설명이다. '개근거지'란 모 인터넷 기사에서 다루어져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요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결석하고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는 것을 비하한다고 지적하는 글이었으나 실제로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개근거지'를 떠올리니 밈이라는 미지체가 골치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가?


그리고 이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항밈학과이다. 이 미지체 역시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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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밈은 전파되지 않는 관념이에요. 항밈성 개체 및 현상은 정보를, 특히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거둬 가서 집어삼키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면 현상되지 않아요. 펜과 종이를 가져다가 설명을 적어서 남들에게 넘겨주면 어지러운 상형문자만이 종이에 남고 아무도, 자신조차도 해독하지 못해요. 직접 관찰할 수도 있고 눈에도 멀쩡히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해요. 붙잡지 못하는 꿈, 공유하지 못할 비밀, 거짓말, 생명력을 얻은 음모론이 항밈이에요. 항밈의 개념은 생태계에요. 다른 관념을 잡아 먹는 관념이고…… 가끔은…… 현실의 한 조각까지 손을 뻗치죠. 이따금은  사람에게 까지도.(PP.20-21)


이 미지체를 마주하는 것은 밈적 성질을 지닌 미지체보다 더 위험하다. 밈적 미지체는 적어도 (작품 세계관 속에서는 '개근거지'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위험한 관념을 전제하겠지만) '개근거지'같은 좋지 못한 관념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이상 현상을 느끼고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항밈적 미지체는 마치 처음 보는 절대적인 존재처럼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 테니까.


소설은 기억할 수 없는 적, 항밈적 미지체에 대응하는 부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지[未知]라는 강력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쓰인 이 작품은 읽는 독자를 확실하고 끔찍한 혼란으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공략 없이 원 코인 클리어 하기일까?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옛 항밈학과는 왜 모든 정보를 가루로 만드는 항밈 폭탄으로 자폭을 했는가' 같은 미스터리와 잔뜩 검열되어 삭제된 텍스트를 소설 곳곳에 배치해 몰입을 한층 끌어올리고, 가상의 이야기지만 정보식동물(情報食動物)과 마주쳤을 경우 자신의 부모 이름과 배우자와의 관계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현실의 치매나 알츠하이머를 떠올리게 만들며 보다 실감 나는 공포를 자아낸다. 앞으로는 적당히 알고 적당히 까먹음에 감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력함만 느껴지는 관념과의 전쟁, 쏟아지는 허구와 실재를 구분하지 못하며 마침내 결말에 이를 때 '이게 바로 SCP지' 하고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이 결말은 기존 SCP팬에겐 충분한 만족감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겐 새로운 감상을 반드시 안겨줄 것이니 이 공포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이미 읽었을지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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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전설
백지영 지음 / 알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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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알렙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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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백지영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 『치킨의 전설』은 나에게 있어 꽤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나(배준환)의 시선과 이야기로 진행된다. 아내 수연과 이혼 후 아들 진수마저 오해로 인한 학폭 사태로 영국에 보내게 된 나는 이를 악물고 모아둔 돈과 주식까지 처분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감당할 수 없는 빚만 늘어가고, 전 직장의 보스는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항상 승승장구를 한다. 거기에는 나의 사업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날도 울분에 차 탑 타워가 보이는 곳으로 가다가 어두운 시장 임대를 내놓은 '치킨의 전설'이라는 가게를 발견하게 되고, 나는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그곳을 인수해 보스의 '뉴치킨'이 차지하고 있는 '황금날개'를 탈환하리라 마음먹는다.

명백한 계급을 드러내는 단어가 많이 보였던 1장이었다. 높고, 크고, 화려한 것으로 수렴하고 싶어 하는 한국인, 아니 인간의 욕망을 은유하는 듯한 '탑(TOP) 타워', '왕(王) 식품', '황금날개' 등의 단어는 우리는 남을 짓밟고서라도 나만 더 잘 되어야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뿌리 깊은 사고를 보여준다.


​2장에 들어서며, 소설은 화려함과 번화함을 보여주는 데서 벗어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주변인들로 시선을 옮긴다. 8차선 도로 건너편 탑 타워에 비해 몹시 초라한 나라시장이라는 무대. 그곳에서 하얀 닭과 24시간 돌아다닌다고 이사도라 할머니라는 멸칭 같은 별칭을 가진 인물을 다룬다. 이 장에서 모순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는데, 이 모순이란 비판적인 의미보다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모습을 작가가 텍스트로 적절하게 요리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왕식품'의 '보스'에게 착취의 수단으로 쓰였던 '나'라는 인물이 성공의 발판으로 다른 약한 생명체를 수단으로 쓴다는 점. 옥상을 뛰어다니는 하얗고 잘생긴 닭을 보며 치킨집 광고모델로도 손색이 없다는 독백을 하다가도 살아 있는 닭에 정신을 차리는 점. 하지만 이러한 점들에는 꼭 톱과 바텀 양 극단에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작가는 이사도라 할머니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

세상일이 그렇게 딱 선을 긋는다고 되는 건 줄 알아?

모든 일에 선을 딱딱 그으려고 하니 세상이 이 모양이지.


─ P.73


​그리고 펼쳐지는 이사도라 할머니의 서사로 시작해 나의 과거로 이어지는 흐름, 그렇게 탄생한 레전드 치킨은 장자의 오상아[吾喪我]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 데모와 간첩으로 점철된 시대에 아득바득 살려고 타인을 팔아넘겼던 '나'의 기억들. 그때의 추억과 잘못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레전드 치킨'은 다시 부활하게 된다. 시대와 세대를 이어온 많은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담긴 치킨은 여러 사람의 추억을 되살릴 수는 있었지만 결국 우승은 하지 못했는데 그렇기에 이 작가의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비록 톱이 되지 못했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說]로 또 한 번 새로운 출발을 하며 끝이 나는 이야기는 이쪽과 저쪽, 위와 아래로 갈리며 서로를 밀어내는 비극을 가로지르는 육교의 역할을 한다.


​사실 내겐 다소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평소 소설을 읽을 때 멀찍이 떨어져서 이렇네 저렇네 쉽게 말해왔지만, 백지영 작가의 『치킨의 전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우리 삶의 문제가 피부로 확 와닿았던 탓이었다. 나 역시 때론 소설 속 '나'의 위치에 있기도 하고, '탑 타워'의 주민 같은 위치에 있으니까.


나는 우리 모두 길을 좁히고, 담을 허물자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이 소설을 떠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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