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생각한다 -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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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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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는 연구는 결국 모두 자기 자신에 관한 연구일 뿐이다.

하늘과 땅, 산과 강, 해와 달, 그리고 별까지

전부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자신 외에 달리 연구해야 할 사항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작년에는 스켑틱 37호와 비건에 대한 책을 읽으며, 동물의 권리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변명이겠지만 내가 고등학생 때에는 비건이나 동물권에 대해 가르치는 수업이 없었으니, 다소 늦은 감은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어차피 고기가 별로 맛있는 편은 아니었으니 스스로를 '리듀스테리언[reduceterian]'으로 정의하며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종종 노출되는 번드르르한 고기들과 파충류 사육장을 보며 뭐라 말하기 어려운 모호한 생각들이 들었다.


(1) 스스로 표현할 길 없는 무대, 당신의 언어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구하러 갈 수 없었습니다

(2) 누가 책 한 권을 주며 예전 책에는 없는 부분이고 상위 개념의 문제라 한다


지난 12월 읽었던 리산 시인의 시구절이다. 그때는 이 문장들이 여성인권에 대해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이 문장은 동물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신간 『동물은 생각한다』는 우리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식하고 관계해야 하는지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돕는다.

프레히트는 자신이 동물을 얼마나 사랑했고, 또 동물원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을 고백하며 책을 시작한다. 동물원장까지 될 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꿈이 깨졌고, 그 덕분에 동물에 대한 사랑과 양심의 가책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고. 저자는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는 게 거의 모두에게 내면화된 세상, 지배하는 쪽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이고, 지배당하는 쪽은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생명체로 취급해 무한으로 착취하는 점을 지적하며 본론으로 들어간다.


책은 총 4부로, (1)동물에 대한 인간 사상이 어떻게 지금으로 다듬어져왔는지 긴 역사와 (2)인간과 동물의 문화사를 다룬 다음, (3)저자의 윤리학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4)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동물 착취를 조목조목 짚으며 살펴보도록 돕는다.

프레히트의 방대한 지식에 좋았던 부분을 전부 이야기하기 힘든 게 아쉽다. 철학과 사상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조목조목 비판하는 부분은 철학사로 벽돌 책 3권을 쓴 경력 다운 글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최근에 한 AI로 새소리 분석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프레히트의 비판적 텍스트를 읽으며 이미 동물은 저마다의 언어로 세밀하게 소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 각자로써 적절한 행동을 생각하고 수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며 기존에 가진 묵은 생각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동물에 무자비하게 폭력적인 현시대를 직간접적으로 마주하며 내가 죽고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나면 X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주디스 버틀러는 '인간의 상호작용이란 합리와 모순, 붕괴와 구축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이라고 말했다. 우리 인간은 붕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붕괴의 대상이 인간이 아닌 동물일지라도.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비판적 텍스트로 많은 사람이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을 깬다면, 자기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우리는 동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처음 프레히트의 책을 읽었을 때, 현재와 맞물려서 전개되는 논리와 날카로운 통찰력에 단숨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틈틈이 저서를 찾아보며 공감하고 있었고, 좋은 기회로 읽게 된 이번 저서 역시 너무 좋았다. 동물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꿔주는 것은 물론, 아무리 고전 철학 사상이라도 묵은 관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무기도 얻는 책. 모두가 함께 읽고 인간 중심적 사회에서 인간 동물학적 사회로 사고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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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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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을유문화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짧게 돌아다니는 니체의 글들을 참 좋아했다. 니체의 글에서 파생된 책들, 일력과 필사 책, 그리고 온라인에 떠다니는 명언들. 그럼에도 원전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직까지도 읽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좋은 것은 가장 마지막에' 취하고 싶어 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까지 안 읽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실은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하며 가장 처음으로 산 책이 을유사상고전의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이었지만, 이 역시 아직도 새 책인 상태로 책장에 꽂혀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외에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등의 훌륭한 고전을 꾸준히 내고 있는 을유문화사의 브랜드 「을유사상고전」에서 드디어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왔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책 뒤표지에 강조한 문구들을 보니 그만큼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던 걸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특히, '원전의 문체와 운율감을 살린'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그동안 파편적으로 읽었던 니체의 문장을 한 번도 산문시라고 여겼던 적이 없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 니체의 의도에 맞춘 읽기와 사유에 집중한 번역과 편집
* 저자의 사유에 다가가도록 돕는 해제와 옮긴이의 말
* 니체 철학 연구자의 '원전의 문체와 운율감을 살린' 완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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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고향과 그곳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겼으며,

그렇게 십 년을 지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마침내 변화했다.

─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그는 아침놀과 함께 일어나

태양 앞으로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보라! 나는 마치 꿀을 너무 많이 모은 꿀벌과도 같이 나의 지혜에 물려 있다.

내게는 내밀고 있는 손들이 필요하다.
나는 선사하고 싶고 나누어 주고 싶다.

그리하여 사람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들은 또 한 번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가난한 사람들은 또 한 번 자신들의 부유함을 기뻐할 때까지.
그러기 위해 나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태양 그대가 저녁마다 그리하듯이 바다 너머로 가서,

심지어 하계에도 빛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대 너무나도 넘쳐 나는 천체여!
내가 내려가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하듯,

나도 그대와 마찬가지로 몰락해야 하는 것이다. (…) "

​─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P.17,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몰락한 차라투스트라가 군중을 향해 위버멘쉬를 가르치는 여러 편의 철학적 산문시로 이루어져 있다. 원전이 되는 책을 읽으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진리 ─어쩌면, 진리가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만 유효하는 그런 말이겠지만─에 최근에 접한 추상 예술들이 떠오른다. 추상화 그림을 보고 잠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가 다시 보았을 때에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프리스타일 연주를 들으며 멜로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처럼, 니체의 철학도 허공에 떠있다. 신은 죽었고,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때론 절대적 진리처럼 다가오다가도, 어느 순간 반박하고 싶어지기도, 그리고 지금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먼 미래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렴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철학'이나 '사상'이란 키워드에 여전히 겁이 많은 편이지만, 번역가의 노력 덕분에 물 흐르듯 읽힌 책. 더 나아가 처음으로 원전을 읽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시간이 흐르면 꼭 다시 펼쳐보고 싶은 고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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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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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쁘게 만들어져서 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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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란 무엇인가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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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사회평론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서점가에 철학 붐을 일으켰지만, 뒤를 이어 등장한 고전 동양 철학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라 했으니 생소한 한자어의 나열이 나에게는 꽤 큰 장벽이었다. 나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않으냐?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군자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영원한 숙제였을지 모르는 『논어』가 단숨에 흥미로운 책으로 바뀐 건, 김영민 작가의 논어 교양서 『논어란 무엇인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어쩐지 구닥다리인 것 같은 책',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짧지만 산만하고, 유익하지만 철 지난 말씀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은 현대 독자들이 흔히 느끼는 『논어』의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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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문장들이 산만한 것은 『논어』에 담긴 정신이 산만해서가 아니라

『논어』의 문헌 전통이 산만해서 그렇다.

『논어』는 공자孔子라는 인물이 책상에 앉아

정신 집중하여 써 내려간 한 권의 책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응집력 있고 일관된 책이 되었으련만.

공자는 『논어』라는 책을 쓴 적이 없다.

『논어』는 후대에 얼기설기 편집된 책이다.

그러기에 실로 산만한 책이다.


─ 「1. 『논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中


​지금까지는 내가 『논어』를 읽어도 읽는 게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절된 내용이라 맥락을 파악할 수 없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체계가 없는, 그래서 저자는 『논어』는 쇼츠라는 은유를 든다.


『논어』에 대해서, 그리고 공자에 대해서 짧은 장을 통해 다룬 다음 하나의 키워드로 일관될 수 없는, 『논어』라는 텍스트 그 자체에 설명하기 시작한다. <세속의 질서>, <행동규범>, <주체>, <인간> 등의 10가지나 되는 주제로 『논어』를 바라보는데, 김영민 새 번역의 『논어』 문장과 함께 하는 해설은 그렇게나 어렵게 다가왔던 논어가 순식간에 쉽고 재미있어진다. 『논어』가 시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 역시 지적하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고 정교한 읽기를 돕는 글을 따라가다 보니 '논어, 나도 읽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도 어느새 들었다. 아마 나만이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김영민이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이 책이 처음 읽는 책이 되었다. 유쾌한 문체와 깊은 지식을 모두 아우르는 글을 읽으며 왜 한국에서 많이 읽히는 작가인지 알게 된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논어란 무엇인가』는 '김영민 논어 연작'중 한 권이다. 공자와 논어의 세계 해설을 다루는 이 책 외에 논어 새 번역과 논어 에세이, 심층 해설과 번역서 비평까지 있다. 만약 지금까지 『논어』가 어려웠다면 새해에는 든든한 김영민 작가의 책과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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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 - 강창래의 세계문학 강의
강창래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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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비록 성인 독서율이 여전히 저조하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난 몇 년간 도서출판업계에서 가장 반기던 소식이 있었다. 텍스트힙[text+hip], 읽는 행위를 멋지다고 생각하며 젊은 세대들이 독서를 즐기는 현상의 등장이다. 나는 이러한 유행과는 별개의 말 할 수 없는 이유로 독서를 시작한 케이스지만, 내가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알고 지내게 된 것도 어쩌면 이 흐름 덕분일지도 모른다.


오락 본위의 독서에서 졸업하고 폭넓은 독서를 추구하게 된 지 대략 4년에서 5년쯤 된 것 같다. 이젠 무슨 책을 읽어도 자신 있다고 말하고 싶으나 여전히 책 읽기에 두려움은 있는데 그 두려움은 대체로 문학작품에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내가 이해를 못 하면 어쩌지에 대한 고민, 때로는 완독 이후에 이 작품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 이러한 고민 탓에 문학비평·평론집을 자주 찾게 되었다. 

'강창래'라는 이름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처음 읽었던 강창래의 책은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였다. 20여 년간 출판편집기획자로 지내며 쌓아온 내공으로 스물여섯 권의 책을 읽고 쓴 인문교양서적. 그 책으로 문학에 대한 '강창래'의 날카로운 시선을 읽어내는 순간 다른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에게 강창래의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늘 장바구니 한켠에 머물러 있던 책이었으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번번이 다음으로 미뤄지던 책이었기에 더 받게 돼서 영광이었던 책. 실물로 받아보니 '강창래의 세계문학 강의'라는 부제목을 보고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려운 주제라 해도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수식어를 가진 작가답게 문학과 문예사조와 문학 이론, 개념 등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책은 시작부터 외설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다루며, 독자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법적 공방과 외설 아래에 숨겨진 문학적 가치에 대한 설명에서 저자는 문학이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규정되고 재정의 되는 대상임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 동안 지배계층만의 전유물이었던 문학은 산업혁명 이후 종교를 대체하고 값싼 교양교육 도구가 되었다. 문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톺아본 다음, 저자는 각 나라에서 문학이 어떤 역사를 거치며 태어났는지, 유명한 작가와 작품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지 설명한다. 투르게네프의 『연기』를 읽으며 왜 러시아 문학에 프랑스어가 이토록 많이 나오는지 잘 알지 못했는데, 그런 부분을 알려주며 깊은 이해를 돕는다. '당시 러시아 귀족들은 '말할 때뿐만 아니라 생각할 때도 세련된 프랑스어'를 사용했다(P.155)'고. 역사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고전 읽기를 미뤄왔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다른 작품에서도 떠오르는 의문을 이 책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세계 고전문학의 믿을 구석이다.


저자의 독자의 흥미를 끄는 방식과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 쉽게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과 저자에 대한 확신이 또다시 서게 된다. 이 책의 목적이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것이 아님을 책 말미에서 언급하듯 책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하나 독자가 문학에 한 발자국 더 딛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고전이나 문학 읽기를 돕는 책은 적지 않지만, 이 책만큼은 독서가 취미이든 보다 진지한 태도이든 상관없이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세계문학이나 고전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거쳐가도 좋다.


언젠가 필자가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을 다룰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P.344)라는 문장으로 책은 마무리가 되는데 꼭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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