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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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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김영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죽음의 논리적인 필연성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지고

​/
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언뜻 보기에 완전히 무의미한,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피에르는 반듯하게 앞에 놓인, 기름때 묻은 해고통지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P.11, PP.13-14
갑작스럽게 공장에서 해고당한 프롤레타리아 피에르. 그 개인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피에르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일자리는 물론, 연인 자네트도 그를 떠나고, 돈이 없자 사회적 위치마저 위태로워진다. 길바닥으로 내몰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존엄성마저 상실한다.

피에르가 벤치에서 자고 있을 때, 누군가 세게 잡아 흔들자 피에르는 눈을 떴다. 모습은 변했지만 친숙한 목소리. 피에르를 깨운 것은 고향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는 어느 세균 연구소에서 관리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며 피에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
예측 불가능한 우연의 룰렛은 불운한 숫자들을 오랜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피해 갔고,
운명론자인 도박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 숫자들에 걸었다가
재산, 신념, 여자, 이겨서 되찾을 방법이 없는 것을 순서대로 잃었으며
그러다 마침내 빈털터리가 되어 도박판에서 일어서려 할 때,
언제나 그렇듯 룰렛 회전판은 너무 뒤늦게,
그렇게 오랫동안 헛되이 기다렸던 숫자를 드디어 던져주었다.


피에르는 일자리를 찾았다. 생 모르에 있는 시립 정수장 수압관리탑이다.

─ P.59

피에르는 정수장에 취업하고, 르네는 자신이 일하는 세균 연구소를 피에르에게 견학시켜준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착한 심성의 소유자가 내민 구원의 손길도 피에르가 모두에게 느끼는 증오는 미처 잠재우지도, 알아보지도 못했다.

피에르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흑사병 시험관을 훔쳐 정수장 필터에 독을 탄다.

파리 시내에 새까맣게 그을린 흑사병 시체가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고, 피에르가 자신이 이 모든 일을 했음을 대중 앞에서 인정하자 결국 두들겨 맞아 죽는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논리적인 필연성' 앞에 모두가 평등해짐을 느낀 사람들은 각자의 이념을 위해, 또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보라 작가의 번역으로 빛나는 브루노 야시엔스키의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자본주의가 세워진 땅에서 처절한 노동환경과 계급의 부조리함, 자본 앞에서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무자비해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벨 에포크를 막 지나 광란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듯 보인다. 비슷한 시대를 그렸던 작품으로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른다. 하지만 두 작품은 정 반대의 양상을 띤다. 프루스트가 벨 에포크의 유한계급이 한가로이 무도회나 즐기는 사교계와 빛나고 찬란했던 시절을 그렸다면, 야시엔스키는 그 이면에 존재했던 음울한 사회를, 처절한 프롤레타리아가 처한 부조리한 환경과 자본주의가 사람을 어떤 식으로 바꾸는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세우기 위해 각자가 투쟁하는 방식을 불타는듯한 텍스트로 쏟아낸다. 마치, 파리 시내에 검은 시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듯 말이다.

소설은 1928년부터 1929년까지 프랑스 잡지 <뤼마니테>에 연재되었지만, 자본주의가 여전히 견고하고,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부조리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야시엔스키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양한 인종, 성별, 세대가 낼법한 목소리를 담은 텍스트는 야시엔스키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었을지 짐작하게 된다.


균으로 인해 자본과 권력이 무의미해지고, 기회를 엿본 이들의 반동과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의 이야기.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과 균과 쇠가 인간의 운명을 바꾼 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이 눈앞에서 인정사정없는 운명의 망치에 맞아 우르르르 무너지는 이 강렬한 서사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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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자유 - 일의 미래, 그리고 기본 소득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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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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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해 준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재화의 분배 문제뿐이다.

기계가 생산한 부를 적절히 분배한다면 모두가 호사스럽게 살 수 있고,

반대로 기계의 소유주들이 그런 식의 글로벌한 분배에 완강히 저항한다면

대다수 사람은 끔찍한 가난에 시달릴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면 두 번째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술의 진보는 불평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 스티븐 호킹, 2015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국을 하고, AI가 우리 일상에 점점 자리함이 피부로 와닿기 시작하며, 누구나 자신의 일자리가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적어도 창작 분야는 안전하리라 믿었겠지만, 지브리 화풍으로 변환시킨 그 프로필 사진이 친구 목록을 가득 채우자마자 그 희망마저도 절망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노동은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인간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그려야 할까?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그의 저서 『모두를 위한 자유』에서 오늘날 노동과 근로가 기계에 의해 어떻게 위협이 받는지, 노동의 양상은 어떻게 변할지를 짚어보고, 노동에 대해 독자에게 다시 생각해 보게 하며, 거대한 불안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도발적인 제안을 던진다.

날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세상에 공개되고 있는데, 어떤 직업이 자동화될까? 선사 시대와 열대 우림에 흩어져 살던 시절에서 어떻게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게 되었을까? 아방가르드의 판타지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돋보인 이유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노동자가 아닌 산책자를 왜 동경하게 되는 걸까? 노동의 의미는 왜 변해버린 걸까?


/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족을 모르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과 물질적 재화로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하는가?

장차 <우월감에 대한 욕구>나 <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배우고 가르치는 문화적 진보가 없다면

밝고 평화로운 미래는 없을지 모른다.
─ P.237



미래 노동 사회의 두 가지 도전, 즉 불공평해지는 부의 분배와 수백만 임금 노동자의 퇴출(P.122)이 예상되는 오늘날, 더 이상의 러다이트 운동은 할 수 없고, 기계와 AI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서 밀려나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오직 극소수만이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된다.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울부짖고, 비트코인과 주식과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는데, 관성적으로 전통적 노동관을 그저 따르는 게 맞는 걸까? 이 책의 주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도 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가 소수에 수렴할 수밖에 없는 생산의 구조, 앞으로를 살아야 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리하르트의 '공화주의적' 제안,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괜찮게 다가올 것이다.


책은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사회과학, 철학, 경제학 등 분과학문을 가리지 않고 다루고 있기에, 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철학자라는 이점이 우리에게는 있다. 제목이 『모두를 위한 자유』이니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관성적으로 이대로 살기 보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닌가.


/

우리가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이 사실만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 자체로 매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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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위한 침묵 수업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침묵의 뇌과학
미셸 르 방 키앵 지음, 이세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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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우주님이 모집하신 #우주클럽_글쓰기방

어크로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넥서스』,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가 방한했을 당시, 출판사에 단 하나의 요청을 했다고 한다.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꼭 마련해달라". (출처, 김영사 인스타그램)

명상이 좋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정작 왜 좋은 건지, 자는 것과 멍 때리는 것과 명상은 무엇이 다른 건지, 명상은 어쩌면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닌지 등의 의문만 품고 있었다. 명상에 대한 실천은커녕 방법조차 모르고, 심지어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명 FOMO(Fears Of Missing Out) 때문에 한시도 눈과 손을 휴대폰에서 놓지 못한다. 이렇게 살아도 딱히 문제는 없다, 아니 없는 것 같다.


… 이렇게 시끄럽게 살아도 과연 정말 아무 문제 없을까?


안면 근육마비로 쓰인 침묵 수업

모든 안전 수칙은 피로 쓰였다는 유명한 문장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은 한 뇌과학자의 안면 근육마비로 인한 충격으로 쓰였다.

연사로 초청받아 강연을 일주일 앞둔 뇌과학자 미셸 르 방 키앵은 갑작스러운 안면 근육마비를 겪게 된다. 검사 결과,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스트레스나 피로가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그리고 그에게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라니, 너무 고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키앵은 프로젝트, 이동, 강연을 모두 취소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침묵하기, 회복을 위해 우연히 동네에 있었던 명상 수련원까지 찾아간다. 그러자 2주 차부터 조금씩 신체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명상과 침묵으로 마침내 안면 근육마비에서 회복한 뇌과학자는 이러한 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 책, 『뇌를 위한 침묵 수업』을 집필하게 된다.


뇌과학이 설명하는 침묵의 필요성

나는 앞서 말했듯 명상은 잘 모르던 독자였다. 이렇게 살아도 딱히 문제가 없다고 느꼈다. 내가 어느 정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에는 이미 TV와 컴퓨터가 있었고, 자라면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생겼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던 세대다. 스피커에서는 항상 소리가 흘러나오고, 스크린에서는 항상 영상이 재생되는 환경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에도 '유튜브를 조금 멀리하는 정도'면 될까 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영역에서 소란스러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귀만 닫고, 신체를 가만두는 것뿐만 아니라 듣기 위해서도 침묵을 지키면 뇌 건강에 이롭고, 눈을 감는 순간 뇌는 미세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키앵은 말한다.

우리 신체 기관 중에 고통을 알리지 않고 서서히 병들어가는 기관이 몇 있다는데, 뇌도 사실 그런 신체 기관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평소 인지하지 못할 뿐 엄청난 문제를 끌어안고 살고 있을 수 있다. 저자가 뇌과학으로 설명하는 스트레스 상태에서의 우리 뇌의 변화와 침묵이나 명상을 했을 때의 우리 뇌의 변화는 보통 사람들이 인지하기 힘든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안면 근육마비라는 형태로 드러났지만, 나의 경우 자아 상실을 겪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증상으로 나타났다. 누군가는 또 다른 형태의 장애를 겪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키앵의 제안대로 침묵과 명상으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을까, 평소 명상은 잘 모르는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살아가는 말 많고 소란스러운 사회에서

침묵을 치유와 자기 계발의 도구로 삼는다는 발상은 참신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동서양 위대한 현자들은 이미

침묵이 신체와 정신에 끼치는 미덕을 알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침묵을 존중했고 내면의 삶을 여는 귀한 시간으로 여겼다.

이러한 침묵의 힘이 이제는 과학으로 증명되고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여러분이 그 힘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 책은 알려줄 것이다.

─ P.20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 살며 시끄럽고 번잡스러움이 느껴지고 있지는 않은지, 직장에서 스트레스로 번아웃을 겪은 적은 없는지, 감미로운 음악이라도 끊임없이 귀에 뭔가 들려야 편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을 은연중에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을까. 많은 현대인들이 명상의 필요성을 『뇌를 위한 침묵 수업』으로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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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문구 -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아무튼 시리즈 22
김규림 지음 / 위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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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밀린 방학숙제 일기를 보는 듯 하다던 누군가의 리뷰에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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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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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사건의 취재라는 컨셉에 핍진성이 느껴지는 묘사가 독자를 미친듯이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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