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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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의 첫 장을 읽고 나서 『죄와 벌』을 샀고,

책을 덮고 나서 『자유론』을 샀다.


책에 대한 책은 늘 좋아한다. 한 권의 책에 다른 사람이 느끼는 다양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내 세계 역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한 책을 찾고, 독서모임을 찾는 게 아닐까 싶다. 책에 대한 책이라 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책들이 있겠지만, 여기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역시 빠지지 않는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청춘의 독서』가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작가나 책이나 워낙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기에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독자에게 굉장히 주목받는 책이 아닐 수가 없고 출간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사실 나는 최근에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 읽었던 적이 있다. 운 좋게 빠르게 예약 순번이 돌아와 읽게 되었는데 나는 이 책의 첫 장을 읽고 나서는 『죄와 벌』을 샀고, 책을 덮고 나서는 『자유론』을 샀다.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이 젊은 시절, 대학과 감옥에서 지내며 읽은 책에 대한 글 열네 편, 그리고 작년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건을 지나며 쓴 한 편, 총 열다섯 편의 책과 글이 담겨있다.

무수히 많은 책 중 골라낸 열다섯 권이다. 서문에서 유시민은 정보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얻은, 삶과 인간과 세상과 역사에 대한,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하려고 썼다고 한다. 이런 고민이 담긴 글을 읽다 보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한국에 사는 사람이 읽고 쓴 책이니 어떤 책과 글에서도 우리가 돌아볼만한 지점들이 느껴진다.


사회제도와 빈곤의 상호 관계, 인과관계를 느끼고 '만약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악덕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악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사회악을 완화하거나 종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 유시민 독서의 시발점이 되어준 『죄와 벌』도, 한 번 읽었던 경험이 있지만 계엄의 밤을 지나며 다시 읽고 쓴 『자유론』도 독서 욕구를 자극해 준다.

독서 에세이는 꼭 좋은 책만을 소개해야 할까?

『청춘의 독서』에는 다소 도발적인 책 역시 소개한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인구론』은 편견으로 가득했던 천재 맬서스가 자선은 사회악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낸 이론이자 철학이자 세계관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특별한 요인이 없을 경우, 식량보다 인구가 많아져 잉여 인구는 굶어 죽어야 한다. 기근이 아니면 전염병이 오고, 전염병을 피하면 전쟁이 온다. 맬서스는 이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공중 보건 정책과 구빈제도, 자선을 꼽으며 이를 비판한다.


지금의 시선으로 읽으면 맬서스의 『인구론』은 극단에 치우친 논리이기도 하고, 비판받아 마땅할 부분도 있어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책이다. 그렇기만 했다면 이 책을 다루지 않았겠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맬서스가 일부 옳았기에 다룰 수밖에 없었으리라. 저자는 맬서스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대입해서 변주해 보기도 한다. 논리가 변주되는 순간 이해 가능한 범주에 들어선다. 저자는 그럼에도 원문의 기괴한 논리나 결론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한 천재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결론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신념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통념들 가운데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을 것인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속에도 그런 것이 없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내 생각도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은지 경계하면서 나를 비추어 본다. 생각은 때로 감옥이 될 수 있다!

비판적 독서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렇듯 『청춘의 독서』는 꼭 좋은 책만을 다루고 있지 않으며, 논쟁거리가 있는 고전 저작물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러한 글을 통해 책을, 글을, 문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을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무수히 많은 독서 에세이가 있지만 이 책만큼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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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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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에 푹 빠지기 시작하면 특정 작가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보이게 된다. 좋은 문장을 인용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그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 나에게 있어 횔덜린도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었다. 『히페리온』을 꼭 읽어 보고 싶어서 샀지만, 산 책은 잘 읽지 않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어서 그만…(중략).


​문학 작품을 포함해 거의 모든 글은 작가의 삶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런 걸까, 독자들이 실제 작가의 삶까지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드문 느낌이다. 하지만 어떤 작가의 삶에 특정한 키워드가 들어간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횔덜린'의 '광기'라든지….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횔덜린이 밀회를 하던 수제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다가 발각되어 추방되고, 수제트 사망 이후에 점점 말과 행동이 비논리적이게 되며 교사 생활을 실패하며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던 1806년부터 임종까지의 횔덜린의 삶을 주목한다. 연대기의 형식으로.


/

세상의 흐름이 구원의 역사에서 결정되든,
혹은 온전히 자연적인 역사에서 결정되든
연대기 작가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 P.10



프롤로그로 횔덜린의 광기가 드러나는 시점과 이 이전의 삶을 빠르게 보여주고, 연대기 시작의 첫 몇 페이지는 같은 시기의 괴테의 삶을 병치하고 있다. 1806년 1월 14일, 횔덜린의 어머니는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남편에게서 상속받은 유산마저 모두 소진했다"라며 횔덜린의 질병 치료를 위한 지원 요청으로 시작하는 글과는 대조적으로 괴테는 같은 날 저녁에 극장에서 자신의 5막 중 비극인 <스텔라>의 리허설에 대한 일기를 기록한다. 횔덜린이 정신병원에 실려가며 처방을 받는 그 사이에도 괴테는 작품 네 번째 권이나 『색채론』의 교정쇄에 대해 출판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 여전히 잘나가는 작가였다. 횔덜린의 1809년 마지막 문장은 '결국 이 출판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로 끝난다.


이 대비가 선명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이후의 횔덜린의 삶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데, 이는 저자의 의도적인 삽입이었을까? 횔덜린이 괴테와 실러의 명성에 가려져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던 말이 있지만, 횔덜린과 괴테, 이 두 인물의 역사를 병치해서 보니 그 비운이 깊게 와닿는다.

/

- 벨라도나 6g
- 디기탈리스 푸르푸레아 2g
- 캐모마일 및 아니스 축출물 희석, 1일 3회 한 스푼씩 복용

─ 9월 16일 기록자 아우텐리트


​─
1810년 이후에는 횔덜린의 삶의 연대기만이 등장한다. 횔덜린은 그럼에도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부정적인 느낌의 '광인'같지는 않았다. 글이라서 횔덜린의 언행이 정제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지지와 연대가 횔덜린을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게 도와준 걸까?


/

그는 여전히 폐허와 광기 속에서 시를 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들이지만요.

─ P.141


비록 ​말년에 이르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쓴다는 진술이 있지만 이 책이 그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니, 그의 작품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횔덜린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의 삶의 연대기 또한 놓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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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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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필사를 즐기지만, 최근 여러 이유로 구매에 소극적이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가격에 비해 글이 너무 적어서.

두 번째, 내가 왼손잡이라서 책에 글을 잘 안 쓰게 돼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만년필과 잉크로 필사를 즐겨 하는데 대체로 책의 종이가 버티질 못해서.


이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궁금한 필사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도 일단 구매를 보류하게 된다. 그냥 책 읽고 내가 직접 문장을 수집하지 뭐, 만년필 버티는 노트에, 같은 느낌으로.


위즈덤하우스의 필사 책 기강 잡기


위즈덤하우스에서 다양한 필사 책이 나온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두 시인의 필사 책들은 정말이지 보법이 다름이 느껴진다. 이러한 개인적 단점들을 모조리 상쇄해 준 이번 필사 책이 오은 시인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과 유희경 시인의 『천천히 와』였다. 받았던 그 주의 주말에는 무아지경으로 이 필사 책만 끌어안고 살았으니...


이번에 나온 두 권의 필사 책은 시인의 에세이가 주로 있고, 에세이 편마다 좋은 문장들을 일부 발췌해 말미에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다. 시인의 글이라 매 편 유려한 문장들에 깊이 빠지게 해서 사실 통필사를 하고 싶게 만든다. 필사의 페이지가 확 줄어든 건 이 좋은 글들을 더 많이 누리라는 출판사와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

텍스트가 드러내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이때 세계는 정지에 가까워지려고 한다.

고정된 채 고스란하다.

텍스트는 포착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포착이다.

텍스트는 순간을 영원의 방향으로 이끈다.

텍스트는 소유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텍스트는 오직 텍스트의 것이다.

텍스트를 기입하는 사람은 텍스트에서 텍스트로 이동하며

텍스트로부터 멀어진다.

자꾸 멈춰서려는 텍스트를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이야기이다.

오직 이야기를 통해서만 텍스트는 흐름 속에 편입된다.

─ P.8-9, 「천천히 와, 우리의 이야기로」


유희경 시인의 『천천히 와』는 기다림에 대한 키워드를 주로 다룬다. 서점을 운영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답장을 기다리고, 반대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겨울날 버스의 의자를 보며 생각한 것을 글로 옮겨 적기도 한다. 시인만의 시선, 그렇기에 읽을 가치가 충분하고 또 그렇기에 시인이지만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의미를 읽고 글씨로 써 내려가면 마음이 어느새 따뜻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지, 혹은 기다리고 있는지. 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필사책을 권하고 싶다. 그 기다림이 더욱 사랑스러워질 테니.


슬슬 필사 책에 권태감을 느끼던 와중 필사 책의 넥스트 레벨을 본 듯해 너무 반갑고 기쁘다. 앞으로 다양하고 많은 시인들이 이런 책을 내줬으면 좋겠다. 그땐 구매?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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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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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필사를 즐기지만, 최근 여러 이유로 구매에 소극적이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가격에 비해 글이 너무 적어서.

두 번째, 내가 왼손잡이라서 책에 글을 잘 안 쓰게 돼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만년필과 잉크로 필사를 즐겨 하는데 대체로 책의 종이가 버티질 못해서.


이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궁금한 필사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도 일단 구매를 보류하게 된다. 그냥 책 읽고 내가 직접 문장을 수집하지 뭐, 만년필 버티는 노트에, 같은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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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에서 다양한 필사 책이 나온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두 시인의 필사 책들은 정말이지 보법이 다름이 느껴진다. 이러한 개인적 단점들을 모조리 상쇄해 준 이번 필사 책이 오은 시인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과 유희경 시인의 『천천히 와』였다. 받았던 그 주의 주말에는 무아지경으로 이 필사 책만 끌어안고 살았으니...


이번에 나온 두 권의 필사 책은 시인의 에세이가 주로 있고, 에세이 편마다 좋은 문장들을 일부 발췌해 말미에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다. 시인의 글이라 매 편 유려한 문장들에 깊이 빠지게 해서 사실 통필사를 하고 싶게 만든다. 필사의 페이지가 확 줄어든 건 이 좋은 글들을 더 많이 누리라는 출판사와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

아스라한 옛날과 선명한 그때 사이로,

속삭이듯 밤이 왔다.

─ P.14, 「속삭이다」


오은 시인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은 2020년 겨울부터 2021년 여름까지 <한밤중에 찾아온 용언> 코너를 위해 쓴 에세이 24편이 있다. 속삭이다, 흐르다, 그립다, 쓰다 등 밤마다 단어 하나로 써 내려간 글들. 이렇게 써진 오은 시인만의 감성이 녹아있는 글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바탕으로 생각에 침잠하게 만들지 않을까. 이 익숙한 단어로 이런 생각을 하다니, 경탄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책은 꼭 필사를 즐기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 필사를 취미로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낮보다 밤을 더 사랑한다면, 이 필사책으로 더 사랑스러운 밤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밤이 좋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슬슬 필사 책에 권태감을 느끼던 와중 필사 책의 넥스트 레벨을 본 듯해 너무 반갑고 기쁘다. 앞으로 다양하고 많은 시인들이 이런 책을 내줬으면 좋겠다. 그땐 구매?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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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디바이디드 : 온전한 존재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4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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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본 서평은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시리즈의 1권, 『언와인드 : 하비스트 캠프의 도망자』과 2권, 『언홀리 : 무단이탈자의 묘지』, 3권, 『언솔드 : 흩어진 조각들』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언와인드 제도', 사회적 질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경제적 이득과 노화만이 남아있는 어른들의 이익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이 제도는 생존을 위해 분투하던 아이들에 의해 마침내 붕괴된다. 하지만 잃어버렸다는 건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해관계에 의해 철저히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그렇기에 파괴되지 않도록 소니아가 소중히 감춰왔던, 잰슨의 마지막 역작인 '장기 프린터'가 남아있었으니….


/

「한 5년 됐어요. 이 몸에 언와인드의 간을 넣고 다닌 게.

근데 솔직히 말해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난 술을 끊고 내 간으로 어떻게든 버텼을 거요.」​
─ P.491


​─

드디어 이 소설의 끝을 봤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언바운드'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더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한국어판은 일단 이것으로 끝이 났다. SF는 오락적인 장르로만 즐겼었는데,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는 꽤 깊은 메시지를 내게 던져주었다. 이 가상의 이야기에서 현실의 일부가 느껴져서였을까?


처음에는 극단적인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던 '언와인드'라는 제도도 장마다 삽입된 검은 종이, 마치 참고문헌을 보는듯한 글들을 읽으며 충분히 현실적인 발상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고, '부디 이 이야기 속 미래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이라던 『커커스 리뷰』도 역시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4권을 덮을 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 돼가는 장기매매 시장, 이식받은 부위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사례들, 줄기세포와 3D 프린팅 기술 등 파편적이면서도 유기적인 기사들이, 아니 수면 위로 드러난 현실들이 이 SF 소설에 근거를 부여하고 있었다. 감춰진 것들은 얼마나 거대할까? 닐 셔스터먼의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는 그러한 것들을 방치했을 때 벌어질 미래의 인류가 살아갈 세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

닐 셔스터먼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비록 낙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고, 여성 진영에서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법에 대해 거세게 저항하고 있지만, 이미 태어나버린 아이들에 대해서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성숙하지 못해 어리석은 행동을 보이더라도 빠르게 포기하기 보다 그들의 성장을 믿고 지지해 주자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1권에서 아직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몰랐던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고 연대해왔다. 마침내 4권에 도달한 독자들은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며 많이 성장하고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피날레를 맞이하는 순간, 작품 속 미성숙한 어른들이 저지른 다양한 폭력의 양상들이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오며 부끄러워진다. 반면교사. 이런 어른이 되지는 말자, 법과 제도와 규칙을 세울 수 있는 힘을 내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서 쓰자, 이러한 생각은 '언와인드'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지 않은가. '영 어덜트'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누구나 즐기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빨리 스크린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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