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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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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비판하며 "역설", "모순", "아이러니"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역설적으로 모두 역설적이며 모순에 차있고 아이러니하다.
(…)
세상은 흰색 도화지가 아니다.
완전무결한 제도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말과 같다.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타협할지를 정하며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스켑티컬하다는 것도 순수한 합리성이 아니라
지금의 토양 위에서 조금 더 나은 제안을 생각하는 것뿐이다.
모든 것은 타협의 결과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이러니야말로 세상의 유일한 진리이자 방식이라 생각한다.
─ 「회의주의자에게 새해 인사하는 법」,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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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장편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소설의 첫 장부터 독자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준다.
사슴을 사냥하는 사냥꾼, 왕발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화자 야니나 두셰이코는 교사를 은퇴하고 별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이웃인 왕발의 죽음 현장에서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그의 죽음은 사냥당한 동물들의 복수라고 주장하고, 죽음을 점성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왕발의 생년월일에 집착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폴란드 고원에서의 연쇄살인사건.
사실 이 작품은 장르상으로는 스릴러이지만 범인이 썩 중요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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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와 업진살
밈이 되어버린 '업진살 살살 녹는다'를 알고 있는가? SNS에서 한 유저가 '인조가죽조차도 도살 장면이 연상되어서 소비하기 힘들다'라고 했던 발언에, 과거에 고기 사진과 함께 올렸던 글이 발굴되어 지금까지도 여전히 조롱 받는 일이다. 물론 업진살 얘기는 안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모피 착취의 잔혹함을 지적하는 부분마저 비웃음거리로 전락된 점은 유감이 아닐 수가 없다.(나 또한 한때 밈으로 소비했던 적이 있기에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의 화자, 야니나 두셰이코 역시 모순적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별자리로 타인의 운명을 읽기 위해 출생일과 출생지를 캐묻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묘사되었을까 봐 이웃인 작가의 저서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사회구조나 규칙은 비판하지만, 자신 역시 동물들 ─ 심지어 자신의 자동차까지도 ─ 을 다소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화자가 동물을 착취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에겐 살아 있는 생명체를 향해 총을 쏠 권리가 없다'라고 일갈하는 부분은 미친 여자의 미친 소리가 아니다.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가끔 눈에 들어오던 이 문장은 검색해 보니 드라마 환혼의 대사라고 한다.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운 인간만이 타인을 비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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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고 모순에 차있고 아이러니해도
동물 사냥과 연관된 이들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서사를 가진 이 작품은 스릴러가 주는 도파민보다는 모순적인 문장들이 주는 혼란스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선과 악의 모호함, 텍스트화된 법과 텍스트화되지 못한 도덕, 어쩌면 이성과 비이성 사이의 줄타기일 수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해도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지 않았는가. 악행에 동참했을 때 면죄부 같은 것이 주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무결할 수 없으니 차라리 놓아버리는 게 맞을까? 소설은 역설적이고 모순에 차있고 아이러니하더라도 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주는 영향력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는지, 또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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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쪽에서 나의 처녀 비너스(금성)가 지평선 위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 P.368
화자가 별을 읽는 서술은 상당히 디테일하지만 별자리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주장에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동물들을 위한 정당방위를 실천한 화자가 별을 읽고 무사히 도주에 성공하는 결말에서는 그동안 인간의 손에 의해 스러진 말 할 수 없는 생명들이 지켜준 건 아닐까 하는 두셰이코스러운 여운이 남는다. 이러한 해석이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해도 그렇게 믿고 싶은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