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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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A4 한 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강남구 소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라는 이력에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비건 수업이나 코딩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어느 학교에서는 철학 수업도 하는구나. 오히려 이상하다. 철학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기초교육과정에 철학은 왜 없을까? 요즘에야 니체나 쇼펜하우어가 자주 '샤라웃'되고 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철학이라는 분야는 썩 선호되는 분야는 아니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쯤 살아보니 이제는 돈보다 어떻게 삶을 잘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철학의 쓸모'는 여기에 있었다.



『모든 삶은 흐른다』로 바다가 건네는 철학을 들려줬던 로랑스 드빌레르의 또 다른 저서 『철학의 쓸모』는 우리가 살면서 생기는 운명과 그에 따르는 고통에 철학으로 처방을 내려준다. 육체와 영혼, 사회, 그리고 그 외의 흥미로운 고통들, 태어난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만능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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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본래 철학은 의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의 정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학자의 이야기는 공허할 뿐"이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혹은 스스로를 '문화의 의사'라 칭한 니체 같은 몇몇 철학자들은 치유의 철학을 강조했다.​

진단명도 다르고 치료법 역시 다르겠지만, 치료의 목적은 같다. 문제가 있는 곳, 통증이나 종양이 있는 곳을 파악하고,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든 진리든 나에게 주어진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 P.13

저자는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 철학자까지 망라하며 우리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해 준다. 텍스트 속에서 독자는 이전부터 명확하게 느끼고 있던 고통을 처방받을 수도 있지만, 불편해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해 달고 살아온 삶의 병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창작물에서 좋은 이미지로 표상되는 '열정'은 사실 병일까? 인생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는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모든 것이 극도로 상업화된 시대에서 '질병'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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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의 경우 자유를 위협하는 병은 정신을 고통에 빠뜨린다. 행운이나 불운, 운명이나 숙명, 운수나 우연 같은 것들 때문에 우리의 자유의지는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또한 통제할 수 없고 일이 벌어진 후에나 수습할 수 있는 사건들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철학은 불행이 닥쳤을 때는 이를 견디거나 저항하거나 피할 수 있는 생존법을, 행복할 때는 이를 지키거나 바라거나 만끽할 수 있는 요령을 제시한다.
─ P.118-119



짧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참 '쓸모'가 많다. 좋았던 부분들에 플래그를 붙이려다가 너무 많이 붙일까 봐 그만 놓아버렸다. 어제는 '사랑'에 대한 글이 와닿다가도, 오늘은 '실패'에 대한 글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내일은 '일상'에 대한 처방이 궁금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매 페이지에서 답을 찾게 되는 내 인생이 그냥 잔뜩 병들어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면,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적절한 처방을 받자. 먹는 약이 아닌 철학이라는 형태로. 피할 수 없는 운명에는 철학이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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