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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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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어크로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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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싸움은 언어 게임과 비슷하다. 단어와 수사적 장치가 상대방에게 던져지고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반동주의자, 혁명론자, 보수, 진보, 음모론자,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급진주의자, 광신자 같은 단어들. 우리는 이러한 꼬리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는 실제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아는 경우가 거의 없다. … 우리는 사람이나 생각을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각각의 범주로 나누어 명확성을 높이고 어떤 정체성을 씌우려고 한다. 이웃에 광신도가 있다! 10대 아이들은 바보다! 이런 분류법은 유쾌하거나 충격을 안긴다. 하지만 이것은 언어학적인 양동이와 같아서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의 실제 모습을 덮어 씌운다. 삶 속의 이데올로기는 지저분하고, 위선적이고, 오만하고, 자기파괴적이다. 거기에는 상실과 기쁨, 유머, 후회, 두려움, 좌절, 주저, 반추, 친밀함, 슬픔이 있다. 그리고 눈물과 한탄, 환한 미소, 혼란스러워하는 곁눈질도 있다.
─ P.22, 「1,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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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오랜 기간 '빨갱이'였다. 이 사람은 이렇고요, 저 사람은 저렇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오늘날 우리는 신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언어의 집이 여기저기 세워지면서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일상에 더욱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사람도 마주하게 된다. 아, 말이 안 통할 것 같다는 예감. 그냥 대화를 애초에 안 하면 서로서로 편하다. 딱 그 정도로만 살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사람이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하거나 의심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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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르 즈미그로드의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이데올로기와 우리가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 역사와 종교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본 책이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감옥에서 태어난 이데올로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어떻게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어떻게 극단적인 생각에 치우치게 되는가.
동그란 원에 기다란 막대가 두 개 달려있다. 동그란 원 안에는 점이 찍혀있다. 이것은 오리인가, 토끼인가. 하나의 그림에서 어떤 사람은 오리를 보았고, 어떤 사람은 토끼를 보았다. 그것은 오리이며 토끼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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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상,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우리를 양극으로 분열시킨다.
우리는 단순한 착시와 모호성을 받아들이는 대신 각자의 해석을 상대에게 설교하며 전쟁을 벌인다.
─ P.236, 「14, 정치적 착시」
서로 조율할 수 없다면 극단주의는 큰 골칫거리가 된다. 문제가 생겼기에 연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신경과학자들은 아이들을 인터뷰를 하고, 뇌를 들여다보고, 환경과 삶을 분석한다.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는 두려움, 분노, 혐오 등 부정적 감정을 맡는다. 보수주의자는 이 편도체가 더 큰 경향이 있다. 집, 이웃, 도시, 국가, 기후로 인해 극단주의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따돌림당한 뇌 역시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다.
저마다의 뇌는 들여다볼 수 없어도, 또 뇌구조나 환경이 애초에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우리의 내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의 행동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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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의 신념은 옳을까?
이 책은 읽는 동안, 나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든 책이었다. 편견으로 가득한 말을 들어오고, 때로는 특정 부류의 사람인 양 변명도 못해보고 낙인찍혀봤기에 내가 타인을 대할 때에는 유연한 사고로 대하고자 다짐했지만, 얼마 전에도 다른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경직된 사고를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대한 이 책은 극단주의에 빠지기 쉬운 뇌를 가진 사람들의 사례들과 나의 공통분모는 없었는지,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을 때 오류에서 빠져나올 때 더디거나 머뭇거리지는 않았는지, 나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또 다른 극단주의적 생각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검토해 보게 된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직된 사고를 인지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할까? 지금 내가 타인에 대해 일말의 기대조차 없는 것도 경직되고 편향된 사고일 수도. 이 책을 읽고 다 같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유연하게 생각해 봐요! 대립하고 싸우지 말고, 서로 타협안을 찾아가요! …라고 어딘가에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