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푸틴의 정원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6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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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블루홀식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전주홍 교수의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의학의 역사를 소상히 다루는 책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기원부터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의하면 과학적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인간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상당 메꾸며 주술이나 종교에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이어 성경만 확인하더라도 예수가 행한 여러 기적적인 치유 능력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하며, 질병 치유의 약속은 기독교가 대중적 지지를 얻고 확산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음도 지적한다.

독자는 이러한 설명을 들으며 까마득한 과거이니 그럴 만도 하다고 수긍하게 되지만, 지금 누군가가 질병의 치료를 위해 병원이 아니라 종교 시설이나 점집에 간다거나 또는 듣도 보도 못한 민간요법을 쓰고자 하면 대체로 이상하게 느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종교나 주술, 민간요법으로 누군가가 치유되고, 유명한 인물들이 매스컴을 통해 줄줄이 간증을 하며 순식간에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된다면….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이누카이 하야토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이누카이 하야토 시리즈'는 의학과 경찰 소설을 합친 추리·미스터리 시리즈로 이번에 출간된 『라스푸틴의 정원』은 '사이비 종교의 치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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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타 자매는 우애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언니는 동생을 헌신적으로 보살폈고 동생은 언니를 어머니보다 더 따랐다.

부모와 자매, 네 명으로 구성된 가족.

가끔은 소소한 말다툼도 있었지만

구미타 가족만큼 화목한 가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집도 드물었다.

─ P.8

하지만 이상한 종교를 믿던 할머니가 동생마저 입교시키려 하자 구짱이 할머니의 이상한 신의 불단을 골프로 박살낸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아버지가 십만 명 중 한두 명 정도가 걸리는 난치병에 걸리게 된다. 쇼핑도, 외식도 참으며 아버지의 치료에 거의 모든 재산을 쓰지만 결국 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하고, 어머니마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자매는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그들의 분노는 효과 없는 값비싼 약과 첨단 의료를 강요하고, 가진 돈과 삶과 평온과 행복과 부모님을 빼앗은 병원과 의사에 향한다.

신부전 환자인 딸을 둔 형사 이누카이 하야토는 딸의 병문안만큼은 꼬박꼬박 챙긴다. 하루는 자신의 딸과 같은 병실이었던 소년 쇼노 유키와 조우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키는 급작스레 퇴원을 하고 이어 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유키를 특별하게 여긴 사야카는 하야토와 함께 영결식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유키의 목 아래에 이상한 멍이 있다는 사야카의 말에 수상한 낌새를 맡는다.

목 아래로 거의 틈이 없을 정도로 난 온몸의 멍. 그러나 사인은 신부전. 경찰 측에서는 학대를 의심하지만 학대의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고, 이어 공원 벚나무에 목을 맨 여성 시체가 발견된다. 그 여성에게도 똑같은 패턴의 온몸의 멍이 있었고, 하야토는 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집안을 수사하던 중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내추럴리'라는 자연 치유 단체를.

나카야마 시치리의 모든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읽은 책은 늘 재미있었다. 나에게 있어 아무리 못해도 읽은 걸 후회하진 않는 믿고 보는 작가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 안정성과는 별개로 이번 『라스푸틴의 정원』은 초반부터 나의 흥미를 강하게 자극했지만.

믿었던 의료시스템으로부터 온갖 좌절을 맛본 두 자매의 이야기로 시작하며 작가는 독자에게 '와이더닛'은 알려준다. 하지만 이어 펼쳐지는 '타살은 아닌 두 인물의 죽음'과 '교묘한 방식의 사이비적 치료', 그리고 '유명한 아이돌과 정치인의 간증'은 독자를 깊은 혼란으로 이끈다. 추리소설에서 어떻게 했는가를 뜻하는 '하우더닛'이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닌 치료에 대한 것이라니!

겨우 70페이지밖에 안 읽은 시점에서 벌써 재미를 느꼈고,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하루 만에 읽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누군가 그랬던가, 하나의 문장을 쓸 때에는 다음 문장이 궁금해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 책이 그랬다. 늘어지는 구간 없이 떡밥을 뿌리는 문장에 자꾸만 다음 문장이 궁금해지고 결국엔 어느새 다 읽어버리게 되는 소설. 『가시의 집』이나 『카인의 오만』에선 미처 하지 못했던, '다음에 읽을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은 무엇으로 할까'라는 고민을 이 책으로 하게 되었다. 너무너무 혼란스럽고, 너무너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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