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오는 대부분의 아토피 환자들을 보면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라는 말들을 한다.
내게 아토피는... 죽을만큼 가렵지 않다.
그냥.. 긁고 있으면 기분이 딱 좋은.. 결코 참지 못할 그런 가려움은 아니다.
그러나 긁으면 딱 기분이 좋으니까 나도 모르게 난 계속 긁고 있을 때가 많다.

외로움은 꼭 아토피같다.
주변 사람들과 나는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친구들은 이야기한다. 아파트 평수나 자기 남자의 능력에 대해서 보험금과 적금에 대해서 때로는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다.
그러면 나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에 건성으로 동조하거나 어디서 들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난 생각한다.
'난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건지도 몰라..'
맞다. 난 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좋게말하면 '이상주의자'고 귀엽게 봐주면.. 'fe 부족'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이상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확고한 이상'같은 걸 품고 있지 않다.
나에겐 소속이 없다. 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서 기를 쓰는 주변인일뿐이다..
외롭다. 내 얘기에 공감해줄 누군가가 뼛속깊이 그립다. 
하지만 못 견딜만큼은 아니다. 그냥 있으면 견딜만한 외로움이다.

외롭지만 죽을만큼은 아니라는 것... 가렵지만 참을 수 없을만큼은 아니라는 것...
내 외로움도 아토피도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웬만하면 참을 수 있을만 하다는 거.. 그러니까 참을 수 있으니까 난 그냥 가만히 있다.
이게 문제다. 그래서 늘 그대로다.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의 '절룩거리며'라는 노래 가사같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뿐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깨달은지 오래야 이게 내 팔자라는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난 죽을만큼 외로워봤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난 죽을만큼 외로워봤으면 좋을만큼 외롭다.

안다. 누구나 혼자라는 걸.. 누구나 외롭다는 걸..
그리고 잘 안다... 이건 다 그들이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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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2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사람들이 '너 외롭냐?'하고 물으면 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요. 외롭다고 하기엔 외롭지 않고 외롭지 않다고 하기엔 외롭고... 외로움하고 친구하고 살아도, 또 곁에 있어도 괜찮은 친구라 저 또한 그냥 내버려 두나봐요...
 

한밤중에 15층 내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창 밖의 세상은 창 안의 세상과는 완전 딴판인 얼굴을 하고 있다. 새벽 4시 고대의 악명높은 지하 감옥의 철문보다 더 굳게 닫힌 것 처럼 보이는 아이보리색 블라인드를 밀치고 창문을 여니 창 밖의 세상은 처음 보는 낯선이의 표정을 짓고 있다. 비가 온다. 고개를 내미니 텅빈 허공에서 빗방울이 확 떨어졌다. 빗물이 머리에서 이마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니 머리가 가려웠다.
15층 허공 바로 아래 땅에는 텅빈 아파트 뒷편을 비추는 가로등이 하나 둘 있고, 그 옆에는 길쭉한 삼각형 형태의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깜깜한 놀이터에서 식별되는 놀이기구는 산 모양으로 솟은 미끄럼틀 뿐이다. 미끄럼틀 앞으로는 시소가, 옆으로는 그네가, 그 뒷편으로는 철봉이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5층 아파트에서 창 밖으로 뛰어내릴 생각을 해 본적은 없지만 이런 밤에 창을 열고 아래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층 빌딩에서 투신자살한 사람들의 뉴스가 떠오른다.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의 심리는 어떨까 자못 궁금해지는 것이다. 각자 말 못할 사연이 있었겠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뛰어내리려고 창문턱이나 베란다 난간에 올라선 기분이 어떨까? 곡예하는 기분일까? 그곳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겨우 좁은 몇미터의 판대기를 밟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이런 밤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층에서 아래를 내다보면 가끔은 땅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게 느껴져 어느 순간 한번쯤은 창틀 위에 올라서서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창 밖과 창 안을 구분짓는 건 겨우 두께 몇십센티의 벽돌뿐이다. 그러고보면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공에 붕 떠 있는 셈이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은 땅을 그리워하는 걸까? 땅이든 물이든 생명이 다 거기서 오니까 내 몸도, 피도, 근육도, 뼈도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가겠지..
창 밖에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의 십자가가 있다. 좁은 공간에 많기도 하다. 사람들은 저 아래 시꺼먼 거리에서 돌아다니다 약속한 때에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한다. 나도 한 때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지금도 가끔씩 십자가 안을 생각한다. 지은 죄가 많아서 두려운가 보다. 허공에 집 짓고 사는 인간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십자가 안에 있을까? 저 아래 땅에 있을까? 아니면 창 밖의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얄팍한 벽돌로 둘러쌓인 허공 위에 붕 떠 있는 한평 남짓한 방 안에 있을까? 과연 구원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비를 맞으면서 오래된 친구보다 훨씬 다정한, 그러나 처음 보는 듯 낯선 가로등에게 묻는다. 지금 이 시간은 흘러서 어디로 가는지? 내가 가는지? 시간이 가는지?
나는묻는다. 나보다 훨씬 오래 여기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가로등에게 묻는다. 그러나 가로등은 뿌옇고 노란 불빛만 내 보일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을 뿐더러 대답도 안 한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창 안의 세상은 창 밖의 세상과 완전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지금 땅으로부터 몇십미터 위의 허공에 떠 있는 한평 남짓한 좁은 공간 안에서 이 글을 쓴다. 허공에 침대를 놓고, 옷장을 놓고, 거울을 달고, 책장을 놓고, 컴퓨터를 올려 놓았다. 나는 허공 위에서 글을 쓴다.
내 마음도 허공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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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거리에 눈이 쌓여 있다.

올해 눈이 참 많이 왔는데 부산에는 거의 안 왔다 쌓인 적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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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빠랑 대화란 걸 했다.

대부분 아빠가 얘기하고 나는 듣기만 했다.

우리 아빠가.. 나더러 밀어줄테니까 하고 싶은 거 하란다..

그 외에도 얘기를 했지만.. 핵심은 그거였다.

말만으로도 고마웠지만.. 슬프고 마음이 무겁다.

나이 서른에 아직도.. 부모한테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내 꼴이 우습기도 했다.

아빠가 나를 비난했다면 할 얘기가 아주 많았을 거다...

그런데 그냥 너 하고 싶은거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니까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날 믿는다는 말까지 했다.

나는 늘 할 말이 없다.

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이란 걸 한 적이 없다.

늘 내 맘대로 하고 살았는데... 그런데도 아직도 남들에게 보일 결과물이 없다.

물론 나는 그런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부모님에게 자랑스런 결과물 하나쯤 안겨주고 싶다..

그러데 결과물은 켜녕.. 독립조차 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2006년에 내 몸과 마음... 모두 독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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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하루 2006-02-04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자아자 화팅!!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마음의 독립은 하되 결혼하기전까지 머물수 있다면 그냥 몸의 독립은 하지 않는 것이 건강상 좋을듯..^^ 2006년 홧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