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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제제를 처음 만났던 12살 생일 이후로 나는 책 속에서 제제만큼 사랑스런 5살짜리 꼬마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그 때 내가 제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를거다. 제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너무도 일찍 세상을 알아버려서 슬픈 아이 제제..
그의 가족들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고, 누구보다도 제제를 사랑하지만 그들중 누구도 제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아이를 이해해주는 친구는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랑 뽀루뚜가 아저씨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눈물을 뿌린 책이 없었다.
제제가 풍선을 만들다가 누나에게 맞을 때, 유행가를 부르다가 아빠에게 맞을 때, 나는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제제가 맞아서 운 것이 아니다. 아빠를 마음에서 죽이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제제를 보니까 그 사랑스런 아이가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마음이 아팠다.
뽀르뚜가 아저씨가 제제가 그렇게 좋아했던 망가라치바에 부딪쳐서 죽었을 때는 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오렌지 나무 밍기뉴가 꽃을 피우고.. 제제에게 안녕을 고할 때, 마침내 내 눈물은 폭포수를 이루었다.
12살 때 나는 제제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제제를 친구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제의 집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집도 가난했다. 전화기도, 칼라 TV도, 라디오도.. 우리집엔 항상 친구집보다 한참 뒤늦게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굶주리거나 엄청나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난이 사람의 마음을 굶주리고 황폐하게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제제 아빠의 비참함도, 엄마의 고단함도, 누나와 형들의 슬픔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제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오로지 나이 차이 때문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책이 더 슬펐다. 그저 어른들은 몰라요가.... 아니라는 것쯤.. 그 시절의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은 후부터.. 나도 한동안 제제처럼 나무와 말을 했었다. 내 비밀 일기장에 제제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유치하고 시시한 짝지보다도, 말 안듣고 왠수같은 동생보다도, 말이 안 통하는 어른들보다도 제제랑 훨씬 말이 잘 통했다...
제제만큼 극적이고 이른 이별은 아니었지만.... 나도 나의 오렌지나무를 마음 깊은 곳에 밀어두고 뒤돌아서서 걸어와야 했고, 그렇게 내 유년시절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 생각날 때 마다 한번씩 이 책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꺼내어 읽어보았다.
많이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너무도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린아이는 누구나 고통스럽게 자기가 가진 세상에 대한 환상과 이별을 하면서 어른이 된다.
그건 어른이 되면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다.
평탄하지 못한 가정사를 지닌 아이들, 너무 가난하여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은 그 이별의 순간을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맞기도 하지만 5살은 해도해도 너무하다..
어떤 5살 꼬마가 "엄마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 풍선처럼 됐어야만 했어요."(제제가 처음으로 만들려고 했던 풍선은 만들어지기도 전에 산산 조각났다.)라고 말을 하겠는가?"
5살 제제를 철들게 하고, 아기 예수를 원망하면서 "나에게 왜 이러느냐?"고 원망할 수 밖에 없게 하는 냉혹한 세상이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이런 아이들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다.
내 사랑스럽고 기특한 꼬마친구 제제는 자신에게 닥친 슬픔을 극복할만큼 사랑이 많은 아이일 뿐만 아니라 뽀루투가 아저씨처럼 좋은 어른이 그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슬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
뛰어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 비단결같은 마음을 가져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기 때문에 제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 아이는 강하고 따뜻한 어른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자기고백이고, 또..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마흔 여덟살이 된 제제의 고백이 나오니까 이건 확실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탕과 딱지를 나눠주는 멋진 어른이 되었고,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라임 오렌지나무 이야기를 선물해 주었다.
제제가 겪었던 가슴아픈 사건들이 그 자신에게 상처로 남지 않아서 난 슬프지만 기쁘다.
12살의 나는 제제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쳤지만,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은 서른살의 나는 나 자신에게 "너는 어떤 과연 어떤 어른이 될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책을 읽고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야..라면서 눈물 흘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도 지금 세상 어딘가에 있을 제제같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그 아이들의 오렌지 나무를 보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추켜세우면서 오버해서 칭찬해주고 싶다.
그 아이들이 오렌지 나무와 아름답게 이별하도록 지켜주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이토록 아름다고 슬프고 유쾌한 성장소설을 본 적이 없다. ^^
그래도 이 책과 비교할만한 우리 나라 성장소설이 있다면 그건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이 책을 감명깊게 본 분들에게 '나의 아름다운 정원'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