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군산 출장중이다..

 

여긴 한마디로..

 

'드릅게 심심한' 동네이다..

 

 

어차피 누군가 한명 가야할거 내가 자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들 난리다..
주식은 꼬라박고 펀드는 반토막 났으며 물가는 오르는데 연봉은 동결이고 로또1등의 꿈은 요원하기만하다..
(주식만 안한다 뿐이지 본인또한 위와같은 남들의 사정과 다를바 없는 형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부담없이 나름 몫돈(?)을 단기간에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바로 국내출장이라고 본인은 판단했다..
(계산을 해보니 기존멤버들이 본사로 복귀를 안하고 내가 부장님 숙소에 못들어갔으면 숙박비와 출퇴근 택시비로 인해 뭐 남는것도 없었을뻔했다..)

 

대자연을 벗삼아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면 본인의 건강증진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개뿔.. 막상 와보니 공단이라 깨끗한 공기따윈 없었다..)

 

생생한 산업 현장을 몸소 체험하는것이 본인의 업무능력 레벨업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었다..
(위험하다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 하는일은 본사랑 똑같다.. 다만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다섯시간 더 많이 일할뿐..)

 

그외 본사와의 차이점을 간략히 정리하면..

 

* 사무실내 커피 : 본사 - 유료 , 현장 - 무료

 

* 사무실내 향기 : 본사 - 향긋한 화장품 향기(본인이 근무하는 울회사 5층은 여직원들 무쟈게 많음..)
현장 - 땀냄새, 담배냄새, 홀애비 냄새, 각종 호르몬 향기(?)

 

* 출퇴근 및 생활 : 본사 - 자유로움(바쁘면 야근, 안바쁘면 칼퇴, 바빠도 몸 안좋으면 칼퇴, 주5일근무, 바빠서 주말 출근및 야근시 밥이랑 수당 꼬박꼬박 잘챙겨줌, 아침마다 지각체크 함. 주간조회시 3분 스프치 있음.)

 

현장 - 듣기론 자유롭다고 들었음(부장님 출근할때 같이 출근해야함. 부장님 퇴근할때 같이 퇴근해야함. 안그러면 숙소까지 갈 방법이 없음. 수당같은거 없음. 집에 늦게가나 일찍가나 일당은 동일하게 출장비에 포함. 2주 12일 연속근무 후 토,일 휴식. 지각체크 따윈 없음. 지각할 일도 없음.
매일 업무시작 시간 한시간전에 부장님이랑 같이 인터넷도 다막힌 사무실에 도착해서 멍때림.. -_- 3분 스피치 따윈 없음. 3분이라도 인터넷 좀 뚫렸으면 좋겠음..)


대충 뭐 이정도..

 

여기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호황인 동네라고 한다.. 우리야 업종이 배관설계이니 이 공장 저 공장 다 들어가지만.. 듣기로는 여기서 만드는것이 뭐 몇안되는 국내 라이센스라나 뭐라나.. 암튼 부가가치도 높고해서 삼성,현대,LG,SK 모두다 혈안이 되어 들어올라고 난리인 그런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사람도 무쟈게 많다.. 점심시간에는 근로자들의 새카만 머리통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난 2002년 월드컵 이후로 단위면적당 그렇게 많은 머리통이 모여있는 광경을 이곳에서 처음 보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가장 중시하는 항목이 보안과 안전이 되어버렸다.. 휴대폰에 사진촬영 방지 스티커 같은건 기본에 도면 반출검사, 인터넷 차단, 심지어 출근시 공장입구에서 음주측정까지 -_-;; 안전교육 받을때는 혈압도 측정하더만..

 

그리하여 왠만한 사이트는 다 막혀있다.. 그나마 접속 가능한것이 예스블로그 정도?? 본사 그룹웨어까지 다 막아놔서리.. 메일이라도 확인할라치면 숙소에서 나와 5천원 주고 택시타고 시내까지 가야 PC방이 있다.. 내가 거창하게 숙소 근처에 이마트나 CGV 따위를 바라지도 않는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PC방 하나만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심심하진 않겠다.. 보이는건 온통 논과 밭.. 이른 새벽이면 닭울음 소리에 잠이 깨는곳..

 

내가 부장님과 같이 지내기로한 선택이 잘못 되었을까?? 혼자지내기엔 숙박비+매일 출퇴근 택시비 만원이 만만찮던데.. 혼자 산다고 부장님 일하시는데 혼자 칼퇴근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도착 첫날에 당장 잘 곳이 있어야하니 퇴근후 부장님을 따라 지금의 숙소에 왔었다..

 

원래 그곳이 3명이 같이 살던 숙소인데 부장님을 제외하고 다들 본사로 복귀하는 바람에 혼자 계시는거라고.. 셋이 내던 방값을 혼자 내고 지내려니 아깝기도하고 부담도 되신다기에 1/3만 보태고 같이 지내자고 하셨다.. 뭐 구질구질한 여관방 같겠거니하고 따라간것이..

 

오옷!! 이게 왠일인가.. 방 3개, 화장실 2개, 넓은 거실, 주방, 전망좋은 베란다, 따뜻하고 안락하며 부장님과 마주칠일 없이 완벽하게 사생활이 보장되는곳..

본인이 싸짊어지고 내려간 2주일치 양말 15켤레가 순간 무색해지는 최신식 드럼세탁기까지..

 

올모스트 패러다이스..

 

럭키 인 마이 라이프..

 

순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난 캐발랄하게 부장님께 대답했다..

 

 

'네 같이 살아욤'

 


하지만 닭울음 소리에 눈을 떠 날이 밝아오자 알게 되었다.. 주위엔 온통 전답뿐이란 것을..
그리고 그곳이 서울 강남과 맞먹는 월세 85만원짜리 아파트였단 사실도.. 그러니 당연히 좋을 수 밖에..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군산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온다 리쿠의 소설책을 한권 읽었다..
출장중에 본격적으로 읽을 대망도 챙겨왔었다..

매일 일곱시전에 부장님과 함께 숙소에서 나오고 밤 아홉시가 다되어서야 숙소로 들어간다..
샤워를 하고 올모스트 패러다이스 럭키 인 마이 라이프 같은 자리에 누워 대망을 펼쳐들면 이내 스르르 잠이 들곤 한다..
닭소리에 중간에 몇번을 깨기도 한다..

 

주변에 여러가지 할일도 많고 놀거리도 많은데 시간을 내어 책을 보는것과 책 보는것 외엔 할게 '전혀'없어서 책을 보는것..
양자간에 있어 독서의 '질'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내일 모레면 마흔인데 이거 뭐..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도 아닌것이.. 밤 열시가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청소년도 아닌것이..

 

현장-숙소-잠-현장-숙소-잠의 연속인 생활..

 

일주일만에 벌써 정신이 피폐해져버린 느낌..

 

 

문득 떠나기 전날 네이트로 말을 걸어오던 분당에 파견 나가있는 한과장의 얘기가 떠오른다..

 


한과장 : 장반장님 군산 가신담서요??
나 : ㅇㅇ
한과장 : 아니 왜 몸도 안좋으신분이 하필 거길..
나 : 걍 바람쐬러 가는거지 뭐..
한과장 : 왜.. 애들이 죽어도 못가겠다고 형님을 보냅디까?? 현장가실라면 태국같은델 가셔야지..
나 : 아니.. 전무님이 세명이서 합의봐서 한명 가라는데 걍 내가 간다고한거여.. 해외로 장기간 나가있는건 몸때문에 좀 곤란하고 난..
한과장 : 내가 군산에 한 석달 있었잖수.. 거긴 진짜 추천할데가 못되는데.. 쩝.. 암튼 건강하게 잘댕겨와요..
나 : ㅇㅇ 가기전에 얼굴 함 봐야되는데 아쉽구만 ㅎㅎ

 


그땐 몰랐다.. 한재훈 과장이 왜 그렇게 안타까워 했었는지를.. 이제 그친구는 군산방향으로 오줌도 안눈다지.. -_-

 

 

 

끝으로 이젠 고백한다..

 

내가 스스로 이곳으로 온 이유를..

 

돈을 모으기 위함도.. 자연과 만나기 위함도 아닌..

 

갑작스런 출장 통보로 저으기 당혹해하던 너희들의 눈빛.. 그 눈빛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주 금요일 여친과의 천일이라던 김형수 대리..

화이트 데이 파티를 준비하던 신재준 대리..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너희들의 그녀가 살아 숨쉬고 있는 서울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

 

이번 출장은 형이 너희들에게 주는 첨이자 마지막 선물이다.. -_-;;

 

여기 일정은 아무도 모른다..

 

어젠 예정보다 빨리 복귀한다 그랬다가 오늘은 더 있어야된다 그랬다가 뭐 이러고 있는 실정이다..

 

형수야..

 

형님 복귀할때 까지 회식은 제가 꼭 연기할게요라던 해맑은 약속은 꼭 지켜주길 바란다..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니..

 

애인이 없어도 서울이 좋았던 것이구나..

 

군산..

 

GG 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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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6-2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어요. 참 오랜만에 들렸는데 아프시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네요. 얼른 복귀하셔서 좋은 리뷰,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