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연과 대화하는 법

 

 
오늘 공교롭게도 매스컴을 통하여 작곡가 이영훈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문세의 히트곡들을 작곡했던 분인데..

필자의 친누나가 이문세의 열렬한 팬이었던지라..

덩달아 이문세씨의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를 보내었었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에 나란히 출연해서 정겹게 담소를 나누던걸 야심한 밤에 이불을 덮어쓰고 라디오를 통해 즐겨 들었던 일이 참으로 기억에 생생한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더랬다..

 

 

바로 그 시절이었다..

88 서울올림픽이 화려한 서막을 올리며 보다 더 잘사는 나라를 위해 국민들 모두가 희망에 들떠있던 그 시절..

 

어느 시인의 슬픈 이야기와 시가 코밑 수염이 거뭇해지고 이마에 여드름 만발하던 팔팔한 대한민국의 청소년 조차도 여린 감성으로 돌아가 눈물짓게 했으니..

그 분이 바로 도종환 시인이었고..

그 시가 '접시꽃 당신' 이었다..

 

('안개기둥'을 연출했던 박철수 감독이 연출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주연 배우에는 목련같이 새하얀 백색의 조끼 난닝구를 입고 알통을 씰룩 거리며 영비천이나 로얄디 따위를 호쾌하게 들이킬것만 같은.. 시인의 이미지랑은 거리가 상당히 먼 이덕화씨랑 그 시절 당대 최고의 미녀 여배우라 캐스팅 된 듯하나 어우동의 뇌쇄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자연을 사랑했던 시인의 아내역으로는 매치가 잘 안되던 이보희씨가 맡았다.. 그 해 백상예술대상을 싹쓸이한걸로 보아 꽤 흥행에는 성공했던 기억이 난다..)

 

 

임신한 시인의 아내는 암에 걸렸다..

아이는 건강하게 세상의 빛을 보았으나 아내는 구름의 저편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시인의 표현처럼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가버렸다..

그 죽음을 지켜보며 시인은 평생을 자연을 벗삼아 청빈한 삶을 함께 하고자 했던 사람을..

마음 놓고 약 한 번 못써보고 떠내보내야 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워하며..

그래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것으로라도 사랑의 실천을 생각했던..

 

그 시인..

 


아마도 그 때 그 시인은 숲으로 들어갈 생각을 했었나보다..

 

 

세월이 10년이 지나서야..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도종환 시인은 어느 숲 속에서 청안하게 지내며 우리들을 불렀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고..

 

 

5년전 시인이 숲을 찾았을때..

그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남은것 없이 바닥이 다 드러난 상태였다한다..

숲은 그런 시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낌없이 위로해 주었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게 하여 골짜기 물로 닦아주었고 나뭇잎의 숨결로 말려주며..

 

그렇게..

 

 

 


- 책속으로..

 

 

시인은 진정 숲에서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깨달은것 같습니다..

자연을 벗삼아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사랑하는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꽃을 사랑하여 꽃이 제 깊은 곳에서 내어준 꿀까지 가져가되 꽃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벌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비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꽃은 꽃대로 향기롭고 나비는 나비대로 아름다운 사랑.

혼자 있어도 아름답고 함께 있어도 아름다운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p.20)

 

 


욕심부려 무엇을 더 원하지도 않구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불에 갓 구워낸 은행의 연둣빛 또는 노릇노릇한 빛깔, 그 안에는 떨잎으로 지기 직전 가장 아름답게 불타던 은행잎의  샛노란 열정이 있고, 싸아한 맛이 있으며 은근한 겸허가 있습니다.

수억 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진화하기를 거부하는 소박한 자기 고집의 빛깔이 있습니다.'


(p.116)

 

 

 

그리고는 그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요..

 

 


'내가 나를 만나는 일도 중요한 일정입니다.

나를 만나기로 한 날 다른 이들이 약속을 잡자고 하면 나는 중요한 약속이 이미 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 일정이고, 바꿀 수 없는 약속이어야 합니다.

내 안에도 내가 돌보고 배려해야 할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p.140)

 

 

 

텃밭을 망쳐버린 고라니에 대해서 말하는 후배와의 대화는 참으로 인상 깊습니다..

후배가 약을 놓아 고라니를 잡자고 하자 시인은 말합니다..

 

고라니가 좋아하는 풀이나 열매를 우리가 가져다 먹은게 더 많을지도 모르니..

그때 고라니가 참았다면 우리도 참아야 한다고..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배우지요..

 

 


'서로 다른 빛깔이 어울려 내가 돋보이고 나로 인해 다른 빛이 드러나 보이는 그런 삶이 아름답습니다.

조화의 빛은 공생의 빛입니다. 상생과 공존의 빛입니다.

서로 빛깔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다채롭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p.256)

 


전 이런걸 30대 중반이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매번 남들이 저같지 못함을 야속해 하곤 했지요..

내것이 소중하고.. 내 생각 내 기호가 중요하듯이..

타인들의 그것들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요..

 

 


끝으로 시인은 큰스님의 말을 빌어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알려줍니다..

 

 

'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다네.

하지만 짠맛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잔이 되는 걸 멈추고 스스로 호수가 되게나.'


(p.275)

 

 


지금까지 얘기한 이 많은 모든것들은..

시인이 숲에서 깨닫고 배운것들 입니다..

 

 

참..

아름답지 않나요..

 


그리고..

마음 한편이 푸근해지지 않나요..

 

 

우리에겐 언제라도 돌아갈 숲이 있으니까요..

 

 

눈을 감으면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그 소리는..

계곡을 흘러 내리는 시냇물 처럼 잔잔하고..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처럼 영롱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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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8-02-2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종환님에 대한 추억이 상당부분 저와 비슷하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