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안영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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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고액권 발행이 가시화되면서 지폐에 등장할 인물로 신사임당이 거론되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머니상으로 신사임당을 거론하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보다는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보다 능동적인 여성 모델을 고르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나 또한 어느정도 그 의견에 동감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학문과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녀이지만, 자신의 재능보다 남편을 잘 공양한 아내이자 아들 율곡 이이를 조선 대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훌륭한 어머니라는 현모양처의 대표적 인물로 추앙받아 온 신사임당. 아내이자 어머니가 아닌 순수한 한 인간으로서의 신사임당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런 의문부호를 달고 이 책을 시작했다.


강릉 산골의 외조부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선(신사임당의 본명)은 외조부와 어머니의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외동딸이었던 어머니는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자 강릉집으로 내려와 간호를 했고, 이후에 시댁과 남편의 양해 아래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 기거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인선은 빠른 속도로 수의 개념을 터득하고 글자를 배웠으며 학문을 익혔다. 또한 속이 깊어 어머니가 딸만 넷을 낳자 아들 그림으로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했고(할아버지의 만류로 어머니가 보진 못했지만;), 일년에 두어 번 다녀가는 아버지가 오실 때가 되자 매화 그림을 그려 아버지 신명화를 즐겁게 했다. 

그림과 글씨, 학문 등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계속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혼처를 찾다 한양의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와 정혼을 하고, 여섯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결혼 후에도 사임당은 얼마간 강릉 친정집에서 총명하고 속깊은 아이들과 함께 글과 그림에 정진하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시댁으로 돌아간 후 어려운 가정 형편과 잦은 출산으로 약해진 건강으로 인해 몇 번이나 위기를 겪는다. 아들 율곡이 어린 나이에 최연소 장원급제를 하는 기쁨도 잠시, 어느날 피를 토하고 쓰러진 사임당은 결국 자리에 누운지 사흘 만에 세상을 뜬다.


이 책에는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사려깊은 아내와 현명한 어머니로서의 신사임당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러나 그런 전형적인 이미지보다는 아내와 어머니이기 이전에 엄격한 유교정치로 지배된 조선시대를 살았던 한 여인으로서의 사임당의 모습이 더욱 눈에 띄었다. 여자로 태어난 까닭에 재능이 있어도 학문을 닦아 그 능력을 세상에 떨칠 길이 없고, 결혼 후에는 시부모와 남편, 아이들 뒷바라지에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그녀. 그러나 그에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학문과 그림, 서체 등 자신의 꿈을 향해 평생을 매진하는 그녀의 모습이 진정 아름다웠다.

신사임당을 모델로 한 이 책은 소설의 특성상 역사적 사실에 많은 상상력이 보태어졌을 것이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주인공에 대한 미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런 것들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지나왔던 삶에 빠져들어 함께 기뻐하고, 상심하며, 눈물을 흘리고, 즐거워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사임당을 대학자 율곡 이이의 그림자에 가려진 조력자의 위치로 그려냈던 다른 책들과 달리, 작가의 시선을 오롯이 신사임당에게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그간 미처 몰랐던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물론 전반적으론 '바람직한 어머니'의 신사임당이 강조되고 있지만;;)


현명한 아내이자 지혜로운 어머니, 그리고 꿈을 향해 정진했던 한 여인으로서의 신사임당을 만날 수 있었던 <신사임당-그 영원한 달빛>. 세련된 필체로 흥미진진한 구성을 이끌어낸 작품은 아니지만 소박한 문체에 담은 진심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흐뭇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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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 - 오프라 윈프리의 일과 성공과 사랑
로빈 웨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집사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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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티비를 안 보는 내게도 너무나 친숙해진 이름, 오프라 윈프리.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를 진행하는 토크쇼의 여왕이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와 자선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는 기부왕이며,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영화배우이면서, 영화, 드라마, 출판, 인터넷 등을 총괄하는 사업체를 가진 비즈니스우먼이자 갑부인 그녀. 이 책은 이런 오프라 윈프리에 대한 찬사로 가득차 있다.

오프라 윈프리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불우했던 그녀의 과거다. 가난한 미혼모에게 태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며, 어린 시절 사촌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성적 학대에 시달렸으며, 십대에 미혼모가 되었으나 결국 며칠 후 아기는 세상을 떠났다. 어느 하나만 들이닥쳐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한꺼번에 경험해야 했던 오프라 윈프리. 그러나 그녀는 그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거기까지 걸어온 길이 험난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을 응원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조언과 격려 아래 예전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났다.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난 그녀는 날마다 전진했고 발전했다. 그 결과 지금의 그녀가 있다.


그녀의 불우했던 과거에 대한 짧은 이야기 정도만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오프라의 새로운 모습을 여럿 만나게 해줬다. 토크쇼의 여왕이었던 그녀는 뜻밖에도 영화에도 출연했고 첫 작품이었던 <컬러 퍼플>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까지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오프라 윈프리 쇼 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잡지까지 출간한다. 유명 연예인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오프라. 무엇보다 성공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길엔 항상 자선과 기부가 동행하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미국의 스포츠ㆍ연예계 인사들 중 기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 1위는 단연 오프라 윈프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잊지 않고 거울 삼아 또다시 그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길 희망하는 마음에서 각종 장학금을 비롯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큰돈을 기부하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부를 여러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부자인 셈이다. 온갖 악조건을 딛고 당당히 성공의 위치에 오른 당찬 모습과 함께 자신의 성공의 환희를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따뜻한 모습은 오프라 윈프리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 보고 그녀가 직접 쓴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다 잠시 흠칫했다. 그랬다. 이 책은 오프라가 쓴 자서전이 아니라 그녀를 향한 연서를 날리는 다른 작가의 글이었다. 위풍당당한 그녀의 모습으로 꽉~ 채운 표지와 '나는'이란 일인칭 표현만 보고 별다른 의심없이 책을 집어든 나의 실수였다. 작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쓴 줄 알고 덥썩 집어들었다 놀랐던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와 같은 실수를 반복한 셈이다. 쩝.

그러나 이 책은 표지와 제목처럼 '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인생과 철학 등을 다룬 책임은 틀림없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란 제목처럼 이 책은 실패를 겪어도 다시 일어나 결국 성공을 일군 오프라 윈프리의 삶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미 다른 책에서도 많이 알려진 것들이라 별반 새로운 것이 없고, 특유의 통찰력이나 깊이를 품지 못해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다. 오히려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쉽고 부담없이 그녀를 만나기에 적당한 책인 듯 하다.


어쨌든 오프라 윈프리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감동이고, 그녀의 사회활동은 매번 존경스럽다. 가난한 흑인 여성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나아간 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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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이청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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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비운의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이라는 본명보다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그는 삿갓 하나 쓰고 전국을 떠돌며 시를 짓고, 장난기 어린 기행을 일삼은 괴짜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대중가요에까지 그 이름을 내비쳤을까. 그러나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 김삿갓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부풀어진 이야깃거리가 아닌 그의 진솔한 모습이 문득 궁금해진다.

김삿갓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나왔다는 <소설 김삿갓>은, 대중에게 친숙한 괴짜 이미지로서의 김삿갓이 아니라 미처 뛰어넘을 수 없는 큰 멍에를 평생동안 지고 살았던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김삿갓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가 왜 삿갓 하나 쓰고 전국을 떠돌아야 했는지, 왜 가족들과 안락한 삶 대신에 길에서의 일생을 선택해야 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는 '홍경래의 난'에서부터 시작한다. 부패된 정부에 불만을 품고 역성혁명을 거론하며 추종세력을 모아 반란을 일으킨 홍경래는 빠르게 서북지방을 점령해 가고, 그 와중에 가산군수 정시는 회유를 물리치고 단칼에 목숨을 잃고 선천부사 김익순은 그들에게 투항하여 목숨을 보존한다. 그러나 파죽지세로 맹렬히 반란세력을 넓혀가던 홍경래군은 정주와 평양 사이에서 정주를 선택하는 우를 범하고, 끝내 평양은 들어가지도 못한 채 정주성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홍경래의 난이 있은 지 14년이 지났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김병연은 영월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응시한다.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스런 죽음을 논하고, 하늘에 사무친 김익순의 죄를 탄하라'라는 그날의 시제에 따라 병연은 김익순을 호되게 질타하는 시를 짓고 장원이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어머니로부터 천하의 역적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헤어날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든다. 김삿갓의 절망과 방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문장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역적의 자손이라는 멍에 때문에 출세의 길은 막혀 버렸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시골에서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기에는 세상에 대한 미련과 울분, 자신의 조상을 욕한 죄책감이 너무 컸던 김병연. 결국 그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과 조상을 알아보지 못하고 불효를 저지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시름하다 길을 나서게 된다. 금강산 유람으로 시작했던 길은 한양으로 이어지고, 날이 갈수록 그의 학문과 문장은 깊어지지지만 역적의 후손이 발 붙일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또다시 삿갓 하나를 받쳐들고 머나먼 방랑의 길을 시작한다.


길에서 일생을 보낸 김삿갓. 그는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걷고 걸으며 과연 행복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만끽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삿갓은 내게 방랑하며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인생을 보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난 후 그는 내게 더이상 자유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몸은 비록 얽매이는 것 하나 없이 자유로우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이 헛헛한, 세상을 향해 독설을 퍼붓지만 그런 세상에 대한 미련조차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한 남자가 눈 앞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평생을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며 길 위에서 보낸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향한 아들의 손을 뿌리치고 방랑길을 택한다. 넘치는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면서도 끝내 세상을 등지지 않고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놓치 못했던 김삿갓. 그는 과연 길에서 그 위안을 얻었을까. 우울한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내 마음마저 착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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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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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개봉했다. 개봉 전부터 애니에 대한 입소문이 괜찮아 애니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산뜻한 파란 바탕에 어디론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 소녀가 등장하는 표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독특한 제목과 꽤나 잘 어우러진다. 이 책에 눈길이 머무는 가장 큰 이유는 애니의 원작이란 것 다음으로 독특한 제목 때문일 것이다. 시간을 달린다니.. 어떻게 이런 재밌는 말을 생각해 냈을까.. 책을 보며 혼자 싱긋 웃어본다.

책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가장 당황했던 게 바로 이 책이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이 세 편 모인 단편집이란 것이다. 애니의 원작이라고 하길래 막연히 장편이려니 생각한 터라 처음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끝나고 나오는 『악몽』을 읽으며 어라? 각각 다른 이야기가 함께 엮어지는 옴니버스인가?? 하며 잠시동안 혼자 고민을 해야했다. 알고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억지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을 찾아보려했다뉘;; (그런데 주변에 물어보니 나말고 그런 분이 여럿되시더라; ㅋㅋ)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악몽』, 그리고 『The other world』 이렇게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집이다. 세 편의 단편 모두 평범한 일상과 어느날 찾아와 그 일상을 뒤흔드는 판타지가 적절히 결합시켜 일상의 공포를 나타내고 있는데, 작가의 의도인지 세 작품 모두 십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되 그 옆엔 항상 그녀의 남자친구가 버티고 있다. 아마 낯선 세계를 접하는 판타지의 느낌을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인 청소년들을 통해 더욱 극대화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애니로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어느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임리프' 능력이 갖게 된 소녀 가즈코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실에서 정체 모를 그림자가 남긴 라벤더향을 맡은 후부터 자신도 모르게 과거로 시간을 역행하게 된 가즈코는 불길한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자 타임리프 능력을 없애기 위해 다시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겪는 일들로 타임리프 능력에 대한 궁금증이 한창 증폭되어 있을 때 다시 나타난 그림자. 그러나 그의 입에서 서기 2600년대..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이 소설은 평범한 고등학생이 겪은 해프닝에서 SF 공상과학 소설로 급선회한다. 범인(?)이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은 흥미진진하지만 예상외의 급변신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차곡차곡 쌓아온 전반부에 대한 기대를 한 순간에 반전시킨다. 그 결과가 개인적으론 좀 아쉽다.

『악몽』은 반야가면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마사코와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는 남자친구 분이치, 그리고 가위 든 귀신이 무서워 밤에 화장실을 못가는 마사코의 남동생 분이치의 이야기다. 무의식 중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물건들에 대해 그 원인을 찾아가던 중 마사코와 분이치는 마사코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악몽』은 일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날의 기억을 무의식 속에 숨겨둔 마사코나 가족의 말을 자신의 잠재된 공포와 연결시키는 요시오의 모습은 우리가 만나는 공포의 실상은 알고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The other world』 또한 SF 판타지인데 그 흐름이 예전 티비외화 <환상특급>이 생각나게 했다. 물론 그것만큼 오싹하거나 스릴 넘치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사는 세계와 똑같은 세계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그 세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뒤바뀔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런 의문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낯선 세계로의 여행은 흥미롭지만 그게 자의가 아닌 타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노부코의 운명은 이 짧은 이야기 안에서 과연 어떻게 변해갈까. 이 짧은 단편은 아주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의 반전도 대게 짐작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과 닮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환상은 언제나 흥미롭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애니메이션 기사를 읽다가 알게되었는데 이 책이 처음 발표된 해가 1965년이란다. 표제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발표 이후 지금까지 드라마, 영화, 만화책, 애니메이션 등으로 수차례 리메이크 되며 사랑을 받고 있다고. 이번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또한 그 중 하나인 셈인 모양이다. 책표지의 날개나 소개말 등에 이 책이 나온 배경이나 이제까지의 약력 등을 함께 소개해 주었더라면 이야기를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듯 한데, 출판사의 배려가 조금 아쉽다. 어쨌든 책을 읽는 동안 가독성에 비해 세 편의 단편들의 이야기 구조나 반전이 비교적 단조로운 점이 못내 아쉬웠는데 40여년 전 이 책이 발표되었을 시절에는 그 소재나 발상이 꽤나 신선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조금 옅어진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가즈코와 함께 내 시간을 되돌려 보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해 본다. 마사코처럼 내 무의식에도 나쁜 기억이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기억을 뒤져보고, 노부코처럼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진다면 기분이 어떨지도 상상해 본다. 이제 원작도 읽었으니 언제 애니메이션도 한 번 볼까 싶다. 현대에 맞게 각색되어 좀 더 발랄하고 활달해졌다는 가즈코가 달리는 시간은 원작과는 또 다른 어떤 색다른 재미를 보여줄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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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 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수업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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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티비에서 스승의 날 기념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의 탄광촌 아이들에게 '시(詩) 쓰기'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셨다는 한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힘든 시절에 꿈을 포기한 아이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선생님께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선생님을 따라 시작한 '시 쓰기'를 통해 좌절 대신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탄광촌 꼬마 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지은 진솔한 시들은 함께 모아져 학급문고로 출간되었고, 그 경험은 한때 두려움 속에서 좌절하던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해 주었다. 브라운관 안에서 이젠 훌쩍 커버린 꼬마 시인들이 어느새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요즘을 두고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없는 시대라고 한다. 학교에는 여전히 수많은 선생님이 있지만 스승을 찾기는 힘들다. 슬프게도 선생이란 이름표조차 부끄러운 얼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건 위에서 언급한 탄광촌 마을의 선생님 같은 분들 때문이다. 그저 교과서 속의 지식만을 전해주는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꿈과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방황하는 손을 잡아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 그런 분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있기에 그래도 세상이 아직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 또 한 명의 스승을 만났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의 에린 그루웰 선생님이 바로 그 주인공.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 위치한 윌슨 고등학교에 초임 국어 교사로 부임해 학교의 골치거리였던 문제아들을 훌륭한 자유의 작가로 만든 그녀.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들을 편견과 오해없이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했던 그루웰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수업을 위해 자비로 책을 샀고, 영화와 박물관 견학 등의 체험활동을 주최했으며,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그 비용을 충당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강사로 초빙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으로선 쉽지 않았을 그녀의 열정에 읽는내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아'라는 낙인과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점점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아이들에게 그루웰 선생님은 책읽기와 글쓰기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전파한다. 처음엔 가시 돋힌 반응을 보이던 아이들도 점점 그녀의 헌신적인 교육에 이끌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구제불능 문제아에서 꿈을 펼치는 당당한 인격체로 변화했다. 그리고 그 감동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일기에는 우리가 쉽게 공감하지 못할 일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느날 친구가 갱들의 총에 맞아 죽고, 마약의 유혹에 빠져 삶이 황페해져 가고,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임신으로 인해 고민하며, 학교 내에서 인종별로 나뉘어 패싸움을 벌이며, 백인과 유색인 간의 인종차별이 여전히 행해지고, 교내 클럽의 새내기들은 선배들의 온갖 가학행위를 견뎌내야 한다. 처음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 같던 그들의 고민에 점점 공감하게 되는 까닭은, 총과 마약만 없을 뿐 이 땅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날이 심해지는 교내 폭력과 따돌림 등은 더이상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맞닥뜨리는 모양새와 크기가 다르더라도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의 무게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연유로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아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전해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루웰 선생님이 맡은 국어반 아이들의 일기를 모아 엮은 책이다. 처음 그루웰 선생님을 만난 1학년에서부터 졸업하기까지 4년간의 여정이 아이들의 일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존의 선생님과 달리 열성적인 이 괴짜 국어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거부감, 자신이 처한 처지에 대한 한탄과 원망, 희망없는 삶에 대한 좌절 등의 내용들로 채워졌던 일기들은 어느새 그루웰 선생님이 권한 책들을 읽으며 느낀 생각들과 책을 통해 깨달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짐하는 내용들로 변해간다.
책읽기와 글쓰기가 비관적이고 자포자기였던 아이들을 어떻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두 권의 책 -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즐라타의 일기>. 인종차별의 비극을 기록한 이 두 권의 책은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편견과 오해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전해주었다. 흑인이기 때문에, 남미계 미국인이라서, 또는 가난하기 때문에 자신은 실패자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이제 인종차별은 잘못된 것이며 우리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똑같은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자신감을 찾은 아이들은 자신들을 '자유의 작가'라고 지칭하고 고통받는 십대의 모습과 세상의 오해와 편견에 맞서는 의지를 담은 글을 썼고, 책으로 출판했으며, 그 책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기를 통해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부당하고 위험한 것인지 들려준다. 한때 문제아였던 아이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초석이 되고, 그 울림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감동을 전해준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열정을 품은 한 사람이 세상을(학교를, 각각의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는 것과 책읽기와 글쓰기라는 행위 안에 얼마나 거대한 힘이 숨어있는 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그리하여 교육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한다. 꿈도 희망도 없었던 슬램가의 아이들을 자신의 꿈을 향해 세상의 편견과 당당히 맞설 줄 아는 열정적인 작가들로 변화시킨 그루웰 선생님. 그녀같은 스승을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인종차별 따위의 잘못된 편견들이 하루 빨리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본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는 감동의 다이어리,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오랫만에 가슴 벅찬 따뜻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별점 다섯 개가 아깝지 않다.
자유의 작가가 전해주는 감동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장담과 함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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