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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안영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고액권 발행이 가시화되면서 지폐에 등장할 인물로 신사임당이 거론되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머니상으로 신사임당을 거론하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보다는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보다 능동적인 여성 모델을 고르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나 또한 어느정도 그 의견에 동감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학문과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녀이지만, 자신의 재능보다 남편을 잘 공양한 아내이자 아들 율곡 이이를 조선 대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훌륭한 어머니라는 현모양처의 대표적 인물로 추앙받아 온 신사임당. 아내이자 어머니가 아닌 순수한 한 인간으로서의 신사임당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런 의문부호를 달고 이 책을 시작했다.
강릉 산골의 외조부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선(신사임당의 본명)은 외조부와 어머니의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외동딸이었던 어머니는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자 강릉집으로 내려와 간호를 했고, 이후에 시댁과 남편의 양해 아래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 기거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인선은 빠른 속도로 수의 개념을 터득하고 글자를 배웠으며 학문을 익혔다. 또한 속이 깊어 어머니가 딸만 넷을 낳자 아들 그림으로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했고(할아버지의 만류로 어머니가 보진 못했지만;), 일년에 두어 번 다녀가는 아버지가 오실 때가 되자 매화 그림을 그려 아버지 신명화를 즐겁게 했다.
그림과 글씨, 학문 등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계속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혼처를 찾다 한양의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와 정혼을 하고, 여섯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결혼 후에도 사임당은 얼마간 강릉 친정집에서 총명하고 속깊은 아이들과 함께 글과 그림에 정진하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시댁으로 돌아간 후 어려운 가정 형편과 잦은 출산으로 약해진 건강으로 인해 몇 번이나 위기를 겪는다. 아들 율곡이 어린 나이에 최연소 장원급제를 하는 기쁨도 잠시, 어느날 피를 토하고 쓰러진 사임당은 결국 자리에 누운지 사흘 만에 세상을 뜬다.
이 책에는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사려깊은 아내와 현명한 어머니로서의 신사임당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러나 그런 전형적인 이미지보다는 아내와 어머니이기 이전에 엄격한 유교정치로 지배된 조선시대를 살았던 한 여인으로서의 사임당의 모습이 더욱 눈에 띄었다. 여자로 태어난 까닭에 재능이 있어도 학문을 닦아 그 능력을 세상에 떨칠 길이 없고, 결혼 후에는 시부모와 남편, 아이들 뒷바라지에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그녀. 그러나 그에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학문과 그림, 서체 등 자신의 꿈을 향해 평생을 매진하는 그녀의 모습이 진정 아름다웠다.
신사임당을 모델로 한 이 책은 소설의 특성상 역사적 사실에 많은 상상력이 보태어졌을 것이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주인공에 대한 미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런 것들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지나왔던 삶에 빠져들어 함께 기뻐하고, 상심하며, 눈물을 흘리고, 즐거워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사임당을 대학자 율곡 이이의 그림자에 가려진 조력자의 위치로 그려냈던 다른 책들과 달리, 작가의 시선을 오롯이 신사임당에게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그간 미처 몰랐던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물론 전반적으론 '바람직한 어머니'의 신사임당이 강조되고 있지만;;)
현명한 아내이자 지혜로운 어머니, 그리고 꿈을 향해 정진했던 한 여인으로서의 신사임당을 만날 수 있었던 <신사임당-그 영원한 달빛>. 세련된 필체로 흥미진진한 구성을 이끌어낸 작품은 아니지만 소박한 문체에 담은 진심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흐뭇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