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3 - Spider-Man 3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드뎌(?) <스파이더맨 3>를 봤다. 호평과 혹평이 난무하는 터라 궁금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아주 즐겁게 봤다. 2시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이 지겹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함께 매달려 다니느라 어느새 시간이 후딱 지나가더라. 크게 기대하지 않은 덕에 기분좋게 즐겼다고나 할까.

사실 난 블록버스터를 그리 선호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블록버스터 영화가 갖고 있는 나름의 미덕-대게는 볼거리(=오락성), 때론 덤으로 작품성까지-때문에 나도 때때로, 또는 자주 블록버스터를 보러 영화관을 찾곤 한다. 점점 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그것들은 꽤나 매혹적이다. 또한 거대 영화들은 호평이든 악평이든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설레발치는 언론에 대한 반발심으로 끝내 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솔직히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봤냐면, 갖고 있는 영화예매권의 날짜가 다가오는데 거미 인간이 스크린을 모조리 먹어치운 바람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괴물>때만 해도 8개관 중 2~2.5관 정도였는데 <스파이더맨 3>은 무려 3개관이 넘게 걸려있다. 전국적으로 8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점령했다니 할 말이 없다.(작년에 독점 논란을 일으켰던 <괴물>은 600여개였다.) 영화관측은 되는 영화에 올인하려 하고 배급사는 단기간에 수익을 챙기려고 하다보니 개봉 첫 주 거미인간은 스크린을 싹쓸이했고 엄청난 관객을 삼켰으며 언론은 그에 관련해 매일 기사를 쏟아낸다. 이쯤되면 영화선택의 주도권은 이미 관객의 것이 아니다.

멀티플렉스의 보급화로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 품었던 기대는 슬프게도 기대일 뿐이었다. 오히려 거대영화의 발판이 되어 버렸다. 큰 영화 하나 개봉하면 상영관은 같은 영화로 도배되어 선택의 폭은 오히려 좁아지고, 전부터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던 작은 영화들은 상영관을 못잡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년과 올해에 개봉했던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나 <숨> 등이 바로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난 그 영화들을 보려고 손꼽았지만 이 작은 도시의 멀티플렉스는 이 영화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되는 물건을 밀어주는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으로선 아쉬운 일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문을 열었던 1편은 흥행성공과 더불어 거미인간의 열풍을 이끌었지만 내겐 너무나 뻔하고 시시한 영화였다. 그래서 현란한 CG조차 지겨워질 정도였다. 그러다 얼결에 2편을 봤는데 전편과 달리 2004년의 최고 영화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아주 재미있었다.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함께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을 탄탄하게 그려낸 2편은, 평범하지만 1편의 후광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과 달리 그 자체로 빛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가장 발군이었다. 그럼 3편은 어땠냐고? 간단히 말하자면 1편보다는 낫지만 역시나 2편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했다.



<스파이더맨 3>은 기대만큼 스펙터클하고 짜릿한 영화다. 새롭게 등장한 뉴 고블린, 샌드맨, 베놈 등 특색있는 악당들의 다양한 모습에 눈이 즐겁고,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숨막히는 추격씬과 대결씬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보는내내 몸이 움찔움찔한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지겹게 여길 틈도 없이 긴장과 스릴을 선사한다. (참고로,, <킹콩>의 공룡과의 싸움씬은 감탄을 자아냈지만 지겨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또한 화려한 특수효과와 액션들 사이사이에 살짝 코믹한 요소가 등장하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리제인과의 로맨스도 흥미를 자아낸다.(모든 영웅들의 애인이 그렇듯 그녀 또한 영웅을 사랑한 죄로 살 떨리는 일을 여러번 겪는다.) 특히나 고층빌딩에 거미줄을 뿜어내며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의 공중곡예는 여전히 즐겁다.

그러나 이야기의 얼개는 헐겁다. 그래서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3년 간의 준비 끝에 선보인 <스파이더맨 3>은 보다 거대해진 스케일과 풍성한 볼거리를 가득 안고 돌아왔지만 많아진 악당들이 제각각 일을 벌이기에 바빠 그 사건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렀는데도 사건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자 감독의 마음도 급했던 걸까. 영화는 악당들이 너무 급하게 개과천선하는 우를 범한다. 그들이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렸더라도 너무나 갑작스런 그들의 변심(?)을 공감하기는 힘들다. 악당이 온순한 양이 되어버리자 사건도 순식간에 종결된다. 허무하다. 있는대로 일을 벌인 탓에 달리 해결 방법이 없었겠지만,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던 관객의 입장에서 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아무리 허망하다 할지라도 <우주전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그 영화는 반전은..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0-;;)


앞서 얘기했듯이 <스파이더맨 3>에는 3명의 악당이 등장한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적인 자신과의 싸움까지 더한다면 4명인 셈이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은 전편보다 훨씬 더 힘겨운 싸움을 해나간다. 3편에서는 친구가 적이 되고 적이 다시 친구가 된다. 증오가 복수로 변하고 복수가 또다른 복수를 부른다. 그리고 복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용서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상이 평화롭지 못한 까닭은 용서가 복수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갈등하는 자아, 아버지를 잃은 절친한 친구, 딸의 병원비를 구하는 탈옥수, 라이벌 사진기자라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적들은 '복수심'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인다. 분노와 원망이 커져 상대에 대한 '복수'로 이어지면서 그들은 점차 괴물로 변해간다. 그리고 삼촌을 죽인 진짜 범인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떠난 메리제인에 대한 야속함이 더해져 정의의 용사 스파이더맨은 암흑의 세계로 빠져든다. 증오의 후유증은 영웅조차 피해갈 수 없나 보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나운 블랙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 (이부분에서 거미인간은 처음으로 눈에 독기를 품는다. 안그래도 큰 토비의 눈,, 부릅뜨니 정말 크더라; 얼굴에 반이 눈이여~;; +ㅇ+)

그러나 스파이더맨이 누구인가. 우리의 절대 영웅 아닌가. 누구나 예상했듯이 스파이맨은 영화의 주인공답게 그 난국을 벗어나 '복수'가 아닌 '용서'의 깃발을 높이 든다. 그리고 그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서 용서의 미학을 증명한다.(그럴줄 알았다!) 괴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 속의 분노와 복수심이라고. 용서함으로 당신 또한 편안해지라고.

 
허술한 점이 없진 않지만 <스파이더맨 3>은 썩 괜찮은 오락영화임은 틀림없다. 오락영화의 본분이 신나게 즐기는 것임을 떠올려볼 때 이 영화는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나는 영화보는 내내 충분히 신났고 즐거웠다. 물론 별다른 기대가 없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어쭙잖게 세계를 구한다고 설쳐대며 미국 최고를 외치는 영화보다는 '용서'라는 다소 교훈적 메시지를 선사하는 이 영화가 더 좋고, 빈틈없이 완벽한 영웅보다 갈등하고 실수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흠씬 풍기는 영웅이 더욱 사랑스럽다. 





 2007/05/09, 햇살박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못 말리는 결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별 기대없이 응모한 이벤트가 걸려서 생긴 예매권으로 극장을 찾았다. 버스가 안 와 거금을 들여 좌석버스를 탔으나 가는 길에 차곡차곡 신호에 걸려 기다리다보니 영화는 벌써 시작, 어쨌거나 영화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영화에 몰입하려 했다. 사실 몰입이 필요없는 영화긴 하다. 그렇지만 절대 몰입이 안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허술한 시나리오는 이미 각오하고 갔다. 이런 영화의 주목적은 일단 웃기는데 있기 때문에 관객도 그 허술함을 어느정도는 이해한다. 그렇다해도 참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장면전환 또한 부자연스럽다. 한 장면과 다른 장면의 연결이 뚝뚝 끊어진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에피소드 또한 따로 논다.

코미디 영화답게 캐릭터들도 희화화 되어 있다. 독불장군형 김수미와 임채무, 약간 모자란 푼수형인 윤다훈과 안연홍(그들은 시트콤 '세친구' 커플이기도 하다!), 그나마 가장 정상형인 유진과 하석진. 전형적인 과장 코미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시도때도 없이 욕을 해대며 웃기려는 조폭코미디와 달리 이 영화엔 욕이 별로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극중 김수미가 감탄사 역할을 하는 shit~!는 조폭코미디 속에 난무하는 욕설에 비하면 애교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선남선녀인 유진이나 하석진도, 코믹연기로 인기몰이했던 윤다훈이나 안연홍도 아닌, 코믹연기로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중견배우 김수미와 임채무가 아닐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그리고 그들을 본 순간 필히 이 영화는 웃길 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 아니 웃기려고 노력하는 영화일 거라는 편견을 가졌다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김수미는 '안녕, 프란체스카'와 '가문의 위기/부활' 등의 여러 작품을 통해 이미 코믹 아이콘으로 자리를 굳혔지만, 중후한 이미지의 임채무는 모레노 심판으로 완벽 변신한 '돼지바' 광고 한 편으로 단숨에 코믹스타로 떠올랐다(영화에도 모레노 심판이 잠시 등장한다; ㅋ). 물론 그뒤에도 '황금어장'을 통해 꾸준히 그 끼를 선보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랜 연기 경력이 증명하듯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서슴없이 망가지며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하며 웃음을 전해주는 두 중견배우의 대활약은 영화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특히 호텔 '키스신'은 정말 압권이었다! ㅋㅋ)


또한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 유진. 사실 아이돌 가수 출신의 유진이 스크린 데뷔작으로 코미디 영화를 골랐다는 게 좀 의아했다. 이미지 관리하는 입장에서 망가지는 연기가 쉽지 않을텐데? 하지만 영화시작과 함께 의문은 풀렸다. 코미디 영화에서 유독 혼자 안 망가지고 안 웃기는 사람이 있다.(이성재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나 혼자 안 웃겼다.라고 고백했듯이!) 이 영화에서 그런 캐릭터가 바로 유진이 연기한 박은호였던 것이다. 지적이고 참하기까지 하다. 한결같이 모두 망가지는 상황속에서도 그녀 혼자 꿋꿋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망가지는 연기가 최고라는 말은 아니다. 오해마시라~;) 단 한 컷, 예외가 있는데 바로 무도장 무술씬이다! 망가지기 보다 생뚱맞은 춤솜씨에 박장대소했던 장면이다.

유진이 출연한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비교적 무리없는 연기를 선보인다는 평을 들었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선 어땠는지 몰라도 영화에서 만난 그녀의 연기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대단한 내공을 요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얼굴 표정이나 감정 표현, 시선처리 등이 어색하고, 영화의 긴 호흡을 이어가는 것도 좀 벅차보인다. 다른 가수출신 배우들보단 좀 나은 편이긴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채워야 할 부분이 많은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많은 부분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배역을 고른 점은 칭찬할 만하다. 작품보는 눈은 여전히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꾸준히 노력해 앞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줄 날이 오길 바란다. 



영화를 다보고 나오는 길에 같이 본 언니에게 어떻냐고 물었다. '웃기네'. 그녀의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요즘 웃을 일이 없었는데 그냥 웃기엔 괜찮은 것 같다'.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덧붙여 준다. 그렇다. 발로 쓴 시나리오일지라도 나를 웃게만 해준다면 만사 OK인 분들에게 적극 권장할만한 영화다. 그러나 나처럼 그것만으론 부족한 관객에겐 비추인 영화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발로 썼다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인즉 작품성따위 필요없이 웃고 싶은 영화를 찾는 분들에겐 효용성을 발휘하는 영화라는 이야기다.

그나마 같이 본 언니가 아주 즐겁게 웃는 모습을 위안 삼으며 영화관을 나왔다. 역시 모든 문화상품은 그 성격에 맞는 고객을 만났을 때 가장 빛을 발하는 법이다. 영화같이 본 언니가 바로 그런 고객이었던 것이다! 진지한 예술성 영화와 함께 가벼운 상업영화 또한 자기 나름의 역할이 있고 의미가 있다. 언니에게 이 영화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그럼 나는 어땠냐고? 뭐, 이 글을 다 읽었다면 말 안해도 알 거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내 돈 주고 봤다면 웃다가도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좌석버스비가 생각나긴 했다(영화비는 공짜였으니;).




+ 군소리 - 그러나 상대를 비하하거나 특정 신체부위를 언급하는 저질 유머나, 웃음을 유도하려는 가학적 상황연출이나, 귀를 막고 싶은 욕설들 없이 상황과 배우의 망가짐으로 관객을 웃기는 점에서 이 영화는 어느정도 '착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비록 쉬트~가 난무하긴 하지만;). 아이들과 봐도 그리 민망하지는 않을 듯도 하다. (그렇다고 권하기도 그렇지만;)

 + 덧붙임 - 참! 깜박했는데,, 닥종이 앞에 두고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 이야기할 때 잠시 울었다. 그것 역시 뻔한 스토리긴 하지만 아무리 코미디라도 엄마 이야기는 항상 눈물이 나나보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가장 주목받은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할레드 호세이니가 아닐까 싶다. 저작년말 호세이니의 두 편의 소설 -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두 여인의 굴곡진 삶을 보여주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두 소년의 우정과 배신, 속죄와 용서를 다룬 <연을 쫓는 아이>가 연이어 국내에 소개되었고, 극심한 아픔속에 피어나는 한줄기 희망을 전해주는 그의 이야기는 단숨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프가니스탄하면 가장 먼저 탈레반, 부르카, 오사마 빈 라덴,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의 모습 등이 떠오른다. 그런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기에, 그곳이 풍기는 우울한 느낌이 싫어서, 전쟁으로 얼룩진 그들의 아픈 상처들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처음엔 일부러 회피했다. 그러나 점점 더 커져가는 호평들을 외면하지 못해 결국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집어들었다. 그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그랬듯 나도 단숨에 호세이니에게 반했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듯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여전히 엄청난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연을 쫓는 아이>를 읽기 시작했다. 두 작품 모두 500쪽을 너끈히 넘기는 책두께를 능가하는 묵직한 감동을 전해준 수작이었다. 


196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두 소년이 태어났다. 카불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아미르와 그집의 하인의 아들인 하산, 하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핍박받는 민족인 하자라인이며 언청이다. 한 해의 텀을 두었지만 같은 집에서 태어났고, 둘 다 엄마가 없는 공통점을 지닌 두 소년은 어린시절부터 늘 모든 것을 함께 하며 자란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잘 맞는 멋진 친구이자 형제와 같은 사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주인과 하인이라는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그것은 그들의 우정, 정확히 말하자면 (하산과는 달리) 하산에 대한 아미르의 우정을 온전하지 못하게 했고, 바로 거기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바바는 아미르를 사랑하지만, 자신과 달리 연약하고 책만 좋아하는 아들이 내심 못마땅하다. 그런 바바의 마음을 잘 아는 아미르는 바바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아 그를 실망시킨다. 그러다 해마다 열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전통 축제인 연날리기 대회가 다가오고, 연날리기 만큼은 자신있는 아미르는 대회에서 꼭 우승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연날리기 대회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바로 연줄이 끊어지면 그 연을 쫓아가 잡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연줄이 끊어지면 아이들은 연을 쫓아 우르르 달려간다. 특히 연싸움의 결승에서 아쉽게 패한, 즉 가장 최후에 끈이 떨어진 연을 잡는 것은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것 만큼이나 최고의 영예로 치는데, 아미르의 최고의 파트너인 하산은 연을 쫓는 데는 단연 최고다. 동물적 감각으로 연이 떨어질 자리를 미리 찾아내는 하산은 한 번도 목표했던 연을 놓친 적이 없다. 바바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미르의 연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줄이 끊어진 파란 연을 잡기위해 하산은 연을 쫓아 달려갔다. 그리고 바로 그날 두 소년의 우정을 갈라놓고 영원히 이별하게 만든, 더불어 아미르가 평생동안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다.


<연을 쫓는 아이>는 유년시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평생을 죄책감에 실렸던 한 소년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속죄하는 과정을 통해 용서의 치유력을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성장 소설이다. 소년 아미르로부터 시작된 하산의 비극은 아프가니스탄의 상처많은 역사와 맞물리면서 점점 더 커지고 끝내 그의 아들 소랍에게까지 고통을 준다. 아미르는 또한 아무에게도(심지어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동안 하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상처는 감추고 외면할수록 점점 더 깊어져 큰 아픔을 주는 법이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그것을 꺼내보이고 아픔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비밀과 하산의 소식에 망연자실하던 아미르는 소랍을 만나기 위해 카불로 떠나고, 하산에 대한 죄책감을 하산을 꼭 닮은 소랍을 통해 풀어낸다. 그렇게 아미르와 하산은 아미르와 소랍으로 이어지고, 상처입은 영혼들은 서로를 향한 '용서'와 진심이 담긴 '이해'로 더디지만 조금씩 그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그래서 먹먹하게 이어지는 절망 끝에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은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또한 할레드 호세이니는 자신이 자라고 성장했던 사랑하는 조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애정을 책 속에 한껏 담아낸다. 아름다운 도시 카불의 모습들, 정이 많은 사람들, 번화한 거리, 연날리기 대회와 연을 쫓아가는 전통놀이 등은 오사마 빈 라덴이나 탈레반, 부르카 등으로 각인되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상을 단박에 바꿔주었다. 사실 그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프가니스탄이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었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책의 곳곳에 묻어났다.

더불어 소년이 자라면서 변해가는 카불의 모습은 아프가니스탄이 지나온 아픈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파쉬툰인의 오랜 집권과 점점 더 심해지는 하자라인에 대한 차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내란, 탈레반의 집권, 미국의 공습 등 녹록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아미르의 성장과 함께 소설속에서 이어진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우리와 참 많이 닮아있어 가슴이 짠했다. 그저 탈레반이 집권한 불쌍한 나라였던 아프가니스탄이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처럼 느껴졌다. 


아미르가 소랍을 받아들이는 것은 좁게는 그의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하산에 대한 속죄를 하는 것이고, 넓게는 파쉬툰인과 하자라인이 모두 아프가니스탄인임을, 민족을 넘어 그들은 같은 '아프가니스탄인'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랑.. 그것들이 모든 문제를 푸는 진정한 해결점임을 호세이니는 아미르와 소랍을 통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게, 그리고 이책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상처와 용서, 이해와 치유로 엮어진 성장소설인 <연을 쫓는 아이>는 묵직한 두께 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심을 심어준 책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은 그의 마력에 빨려들어 다른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고, 내 주변의 사람들 또한 그러했으니.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 작품 모두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다. 꼭 읽어보시길!


- 사진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에도 내 마음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면서 용서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싹트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538쪽)








* 주절주절 혼잣말 

결혼 전에 아미르와 소라야는 서로에게 '해요체'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자 아미르의 말투는 갑자기 '하오체'로 변심한다. 남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소라야는 여전히 '해요체'로 말한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아내이니까.

남편이 된 아미르의 말투를 꼭 그렇게 '하오체'로 바꿔야만 했을까.
'고맙소' 대신에 예전처럼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색한 것일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괜찮아요, 그래요, 알았어요'라던 아미르의 말투가 결혼과 함께 '괜찮소, 그렇소, 알았소'로 변해야만 하는지를..

아마 이런 미묘한 높임법의 차이는 영어로 쓰인 원작소설에는 없지 싶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이 그대로 번역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점만 뺀다면 이책의 번역은 참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가끔 '감'만 믿고 책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선택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이책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특이한 소재로(특이하다 못해 선정적이긴 하지만) 남다른 시각에서 풀어낸 독특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스토리 전개도 무난하다. '개구리 왕자'가 생각나는 깜짝 결말이 허무하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생활판타지의 충족감과 패러디의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는 그리 부합하지 않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는 하더라도 '공감'할 수는 없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금욕적인 삶을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프란체스코는 어느날 자신의 팔뚝에서 이상한 종기를 발견한다. 병원에만 가면 사라지는 요상하고 흉측한 종기를 바라보며 한숨짓던 어느날, 그녀는 자기 팔뚝의 종기와 눈이 '딱' 마주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종기는 인면창(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종기)이었던 것이다. 놀란 프란체스코가 종기를 없애려고 온갖 시도를 해보지 인면창은 그녀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들어 그곳에 눌러앉는다. 그렇게 프란체스코와 인면창의 이상야릇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나 프란체스코가 '가고 씨'라고 부르는 인면창은 그녀의 몸에 무단침입해 거주하는 주제에 시도때도 없이 프란체스코를 향해 온갖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프란체스코가 아직도 성적 관계를 한 적이 없는 '처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그녀가 여자로서의 성적 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며 그래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여자라는 것이 가고 씨의 논리다. 그러나 자극적인 독설들로 그녀를 성적 쾌락의 길로 인도하려는 가고 씨의 의도와 달리 프란체스코는 그의 거친 말들을 별다른 항의없이 순순히 인정하는가 하면 그렇게나마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 독특한 성품을 선보인다. 황당한 커플의 탄생이다.

그러나 가고 씨의 거친 입담을 들어야 하는 프란체스코도 사실은 여러모로 억울하다. 웬만한 상황에서는 성적 욕망이 일어나지 않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손이 닿기만 하면 성적 욕망에 가득차 불물을 안 가리던 남자들이 가장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오고, 멀쩡하던 성인용품이 불꽃이 튀며 고장이 나는가 하면, 하다못해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자는 신체의 중요 부분에 상해를 입기까지 하니 어쩌란 말인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그녀는 여전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욕적인 삶을 이어나간다. 대신 자신의 집에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이름의 연인들을 위한 방, 즉 러브호텔을 운영하며 다른 연인들을 통해 대리만족에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이 거치면서 중요한 사실이 밝혀진다. 프란체스코가 잠시라도 진심으로 대했던 상대는 그녀의 특이한(?) 능력에 별다른 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가 잠시 짝사랑했던 옛사랑 쿠스가 그렇고(그것을 체험하게 된 과정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지만), 뒤늦게 발견한 진짜 사랑 지그프리트가 그렇다. 그리고 프란체스코는 이제껏 가고 씨의 험담이 무색할 정도로 환상적인 성적 매력을 만개한다. 고군분투 끝에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프란체스코와 그녀의 사랑에 힙입은 가고 씨의 깜짝 반전으로 그렇게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 반전이 어찌보면 황당하기 그지없고 좋게보면 귀엽기도 하다. 다만 허무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소재가 참으로 '일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종종 엽기적이고 성적인 일본소설의 소재는 가끔 나를 당황케 한다. 그러나 이런 성적 소재를 선정적인 용어들로 채워가면서도 소설은 참으로 차분하고 담담한 일상소설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성(姓)'이 우리 삶의 일부분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글은 지극히 일상적인 (성적) 이야기에 약간의 판타지가 들어간 소설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모든 가치와 기준이 성(姓)에 있는 양 끊임없이 가학적이고 비하적인 말을 쏟아내는 가고 씨의 발언들은 소설적 상황을 이해한다고쳐도 불쾌하긴 마찬가지였다.

<내 안의 특별한 악마 PASSION>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오가 비교적 분명하게 갈릴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별로였지만 나와는 다른 취향을 가진 독자들에겐 어쩌면 재미있는 책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1페이지에 3번 씩은 웃을 거라는 책소개에 혹해 읽기 시작했다가 웃음은커녕 가고 씨의 독설 때문에 1페이지에 서너 번은 찡그려야 했던 것이 심히 유감스러웠지만, 그래도 그것에 낚여 타인의 취향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웬만해선 공감할 수 없었음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메리카 로드 - 라이더를 유혹하는 북미 대륙과 하와이 7,000km
차백성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었다. 자전거의 중심을 잡아주시던 아빠의 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곡예하듯 비틀거리다 내리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를 몇 시간, 남은 건 손바닥과 무릎의 쓰라린 상처요 얼룩진 자존심이었다. 내 기필코 너를 타고야 말리라, 독기를 품고 매달린 끝에 겨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엔 마침내 도움의 손길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지는 그 짜릿함이란! 자전거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직 자전거가 서투르던 때에 큰 사고가 일어날 뻔한 아찔한 경험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릴 때의 황홀한 기분은 잊을 수가 없어 어딜 가든 자전거와 함께 움직였었다. 물론 그 덕분에 집안의 단거리 뿐만 아니라 장거리 심부름까지 혼자 떠안아야 하는 험난한 세월이 시작되었지만.

기껏해야 동네 주위나 어슬렁거리는 어설픈 실력의 자전거 라이더인 나는 북미 대륙과 하와이를 합쳐 7,000km, 차로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광활한 북미 대륙을 두 바퀴의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이야기에 그만 입을 쩌억 벌릴 수 밖에 없었다. 햇빛과 비,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페달을 움직이는 두 다리에 의존해야 하는 자전거 여행은 웬만한 용기와 체력이 아니고는 힘든 여행이다. 그러나 저자는 더 늙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품어왔던 꿈을 이루고자 남들보다 이른 퇴직을 하고 자전거와 함께 태평양을 건넜고, 자전거에 몸을 싣고 아메리카 여행을 시작했다. 그의 용기와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적지 않은 나이에 북미 자전거 여행에 도전한 차백성 씨의 고단하지만 짜릿한 여행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바로 <아메리카 로드>다.

한 번에 다녀온 여행기록일 거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아메리카 로드>에는 모두 세 번의 여행에 대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30일의 여정으로 달린 서부 해안길 여행,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인디언을 찾아 떠난 평원으로의 여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년 전 이민간 우리 선조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하와이 여행이다. 첫 북미 여행의 시작인 서부 해안길의 여행이 온전히 자전거에만 의지한 여행이라면, 인디언을 찾아 떠난 평원으로의 여행은 광활한 북미 대륙을 환경을 고려해 자동차와 자전거를 함께 병행한 여행이었다. 우리 선조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하와이에서는 자전거를 중심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 버스를 이용하는 융통성을 발휘해 여행을 이어나간다.

책을 읽는 동안 30kg에 육박하는 짐을 자전거 앞뒤로 싣고 낯선 북미 대륙을 쉬지않고 달려가는 그의 여정의 고단함과 피로함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야영지에서 야생 동물에게 음식물을 도둑맞고, 무리한 일정으로 무릎이 아파오고, 간만의 만찬으로 배탈이 나고, 도로를 달리던 중 경찰차를 만나는 등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그의 여행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길을 나설 때마다 그를 반기는 황홀한 풍광들과 길에서 만난 자전거 라이더들의 격려와 낯선 여행자에게 건네는 현지인들의 따뜻한 배려, 타국에서 만난 동포들의 훈훈하고 넉넉한 인정 등은 지쳐가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가슴 뿌듯한 보람을 남겨 주었다.

자전거로 만나는 지역에 대해 저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중에서 처음 알게 된 내용도 꽤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지역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세 개의 여행에 대한 단락마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그가 여행한 곳을 표시한 지도를 실어두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명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 터라 어디쯤을 언급하는지 헛갈리 때가 많았다. 나같은 독자들을 위해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작게나마 그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함께 보여주는 배려를 해주었다면 그의 자전거를 따가는 여행이 좀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서부 해안 여행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저자가 찍은 사진들을 위주로 실려있어 그곳의 풍경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평원 여행부터는 풍경 사진도 넉넉하게 실려있어 그에 대한 갈증은 조금 풀렸다. 

그러나 자전거로 달려간 여정과 그의 열정이 대단함은 알지만 정작 그것을 전달해주는 글은 전체적으로 단조롭고 심심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곳을 거쳤고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정도에 그친 글들이 많았고, 여행지의 풍경이나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 등이 좀 더 깊고 풍성하게 다뤄지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그가 들려주는 해박한 지식들은 재미있었지만.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에 꿈을 이루기위해 먼 길을 달려온 도전 정신과 온갖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과의 약속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마지막 선배로서 자전거 여행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부록 부분은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