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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가장 주목받은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할레드 호세이니가 아닐까 싶다. 저작년말 호세이니의 두 편의 소설 -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두 여인의 굴곡진 삶을 보여주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두 소년의 우정과 배신, 속죄와 용서를 다룬 <연을 쫓는 아이>가 연이어 국내에 소개되었고, 극심한 아픔속에 피어나는 한줄기 희망을 전해주는 그의 이야기는 단숨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프가니스탄하면 가장 먼저 탈레반, 부르카, 오사마 빈 라덴,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의 모습 등이 떠오른다. 그런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기에, 그곳이 풍기는 우울한 느낌이 싫어서, 전쟁으로 얼룩진 그들의 아픈 상처들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처음엔 일부러 회피했다. 그러나 점점 더 커져가는 호평들을 외면하지 못해 결국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집어들었다. 그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그랬듯 나도 단숨에 호세이니에게 반했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듯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여전히 엄청난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연을 쫓는 아이>를 읽기 시작했다. 두 작품 모두 500쪽을 너끈히 넘기는 책두께를 능가하는 묵직한 감동을 전해준 수작이었다.
196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두 소년이 태어났다. 카불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아미르와 그집의 하인의 아들인 하산, 하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핍박받는 민족인 하자라인이며 언청이다. 한 해의 텀을 두었지만 같은 집에서 태어났고, 둘 다 엄마가 없는 공통점을 지닌 두 소년은 어린시절부터 늘 모든 것을 함께 하며 자란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잘 맞는 멋진 친구이자 형제와 같은 사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주인과 하인이라는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그것은 그들의 우정, 정확히 말하자면 (하산과는 달리) 하산에 대한 아미르의 우정을 온전하지 못하게 했고, 바로 거기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바바는 아미르를 사랑하지만, 자신과 달리 연약하고 책만 좋아하는 아들이 내심 못마땅하다. 그런 바바의 마음을 잘 아는 아미르는 바바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아 그를 실망시킨다. 그러다 해마다 열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전통 축제인 연날리기 대회가 다가오고, 연날리기 만큼은 자신있는 아미르는 대회에서 꼭 우승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연날리기 대회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바로 연줄이 끊어지면 그 연을 쫓아가 잡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연줄이 끊어지면 아이들은 연을 쫓아 우르르 달려간다. 특히 연싸움의 결승에서 아쉽게 패한, 즉 가장 최후에 끈이 떨어진 연을 잡는 것은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것 만큼이나 최고의 영예로 치는데, 아미르의 최고의 파트너인 하산은 연을 쫓는 데는 단연 최고다. 동물적 감각으로 연이 떨어질 자리를 미리 찾아내는 하산은 한 번도 목표했던 연을 놓친 적이 없다. 바바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미르의 연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줄이 끊어진 파란 연을 잡기위해 하산은 연을 쫓아 달려갔다. 그리고 바로 그날 두 소년의 우정을 갈라놓고 영원히 이별하게 만든, 더불어 아미르가 평생동안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다.
<연을 쫓는 아이>는 유년시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평생을 죄책감에 실렸던 한 소년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속죄하는 과정을 통해 용서의 치유력을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성장 소설이다. 소년 아미르로부터 시작된 하산의 비극은 아프가니스탄의 상처많은 역사와 맞물리면서 점점 더 커지고 끝내 그의 아들 소랍에게까지 고통을 준다. 아미르는 또한 아무에게도(심지어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동안 하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상처는 감추고 외면할수록 점점 더 깊어져 큰 아픔을 주는 법이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그것을 꺼내보이고 아픔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비밀과 하산의 소식에 망연자실하던 아미르는 소랍을 만나기 위해 카불로 떠나고, 하산에 대한 죄책감을 하산을 꼭 닮은 소랍을 통해 풀어낸다. 그렇게 아미르와 하산은 아미르와 소랍으로 이어지고, 상처입은 영혼들은 서로를 향한 '용서'와 진심이 담긴 '이해'로 더디지만 조금씩 그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그래서 먹먹하게 이어지는 절망 끝에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은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또한 할레드 호세이니는 자신이 자라고 성장했던 사랑하는 조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애정을 책 속에 한껏 담아낸다. 아름다운 도시 카불의 모습들, 정이 많은 사람들, 번화한 거리, 연날리기 대회와 연을 쫓아가는 전통놀이 등은 오사마 빈 라덴이나 탈레반, 부르카 등으로 각인되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상을 단박에 바꿔주었다. 사실 그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프가니스탄이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었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책의 곳곳에 묻어났다.
더불어 소년이 자라면서 변해가는 카불의 모습은 아프가니스탄이 지나온 아픈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파쉬툰인의 오랜 집권과 점점 더 심해지는 하자라인에 대한 차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내란, 탈레반의 집권, 미국의 공습 등 녹록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아미르의 성장과 함께 소설속에서 이어진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우리와 참 많이 닮아있어 가슴이 짠했다. 그저 탈레반이 집권한 불쌍한 나라였던 아프가니스탄이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처럼 느껴졌다.
아미르가 소랍을 받아들이는 것은 좁게는 그의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하산에 대한 속죄를 하는 것이고, 넓게는 파쉬툰인과 하자라인이 모두 아프가니스탄인임을, 민족을 넘어 그들은 같은 '아프가니스탄인'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랑.. 그것들이 모든 문제를 푸는 진정한 해결점임을 호세이니는 아미르와 소랍을 통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게, 그리고 이책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상처와 용서, 이해와 치유로 엮어진 성장소설인 <연을 쫓는 아이>는 묵직한 두께 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심을 심어준 책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은 그의 마력에 빨려들어 다른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고, 내 주변의 사람들 또한 그러했으니.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 작품 모두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다. 꼭 읽어보시길!
- 사진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에도 내 마음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면서 용서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싹트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538쪽)

* 주절주절 혼잣말
결혼 전에 아미르와 소라야는 서로에게 '해요체'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자 아미르의 말투는 갑자기 '하오체'로 변심한다. 남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소라야는 여전히 '해요체'로 말한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아내이니까.
남편이 된 아미르의 말투를 꼭 그렇게 '하오체'로 바꿔야만 했을까.
'고맙소' 대신에 예전처럼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색한 것일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괜찮아요, 그래요, 알았어요'라던 아미르의 말투가 결혼과 함께 '괜찮소, 그렇소, 알았소'로 변해야만 하는지를..
아마 이런 미묘한 높임법의 차이는 영어로 쓰인 원작소설에는 없지 싶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이 그대로 번역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점만 뺀다면 이책의 번역은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