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이브날 눈도 살짝 내려주는 저녁, 언니들과 함께 간 영화관에서 을 봤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 청취자 사연을 통한 편지왕래와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엠파이어스테이츠 빌딩에서 아슬아슬하게 만난 사랑을 속삭이는 그들의 달콤한 로맨스는, 90년대의 아날로그적 향기를 한껏 담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로맨스의 환상을 품게 만들었으며,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푹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의 감독 노라 애프런의 수필집이 나왔다. 앞서 말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강한 향수에 이끌려 그녀의 책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영화의 시나리오와 감독을 했다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일본소설풍의 표지 일러스트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귀재 노라 애프런의 인생 이야기는 과연 어떠할까 하는 궁금증에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대로 잔뜩 부풀어 넘긴 책의 첫글은 솔직히 시큰둥했다. 목의 주름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고, 목주름에 모든 것을 건 것처럼 흥분해서 떠드는 그 마음을 내 기준으론 이해하기 힘들었다. 마치 외모에 집착하는 부유한 중년의 푸념같다. 그래도 책장을 계속 넘긴다. 목주름으로도 모자른지 헤어, 제모, 손톱손질, 염색 등등 끝없는 외모 이야기가 이어진다. 내가 이상한 건가. 여전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 부유한 그녀, 핸드백같은 소품에 큰 돈 쓰기는 아까워하나보다. 시장표 핸드백을 자랑스레 얘기한다. 음. 소탈한 면도 있는데. 그러다 방 8개 달린 뉴욕의 아파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헉; 방 8개라.. 도무지 감정이입이 안된다; OTL

그러나 이젠 안다. 부유하지만 소탈하고 치밀하지만 덜렁대는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소재가 목주름과 헤어손질과 핸드백과 방 8개짜리 아파트였을 뿐이라는 것을. 두번 이혼하고 세번 결혼한 자신의 개인사까지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유한 중년 여성의 자랑과 과시가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내어 들려준다는 것을. 그녀가 방 8개의 호화로운 뉴욕 아파트를 떠나면서 나의 지루함도 함께 사라졌다. 노라 애프런의 유머가 쏟아져 나오는 '나와 JFK : 이제는 말할 수 있다'부터는 그녀의 글들은 하나같이 재밌고 즐겁다. 


자신의 심란했던 뽀글뽀글 파마머리 때문에 케네디가 유일하게 추파를 던지지 않은 사람이 자신일 거라는 농담을 통해 케네디의 추문을 얘기하고, 클린턴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는 듯하면서 그의 과거 스캔들과 더 나아가 부시의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은연중에 곁들인다. 그런가 하면 어린 날 즐겨 먹었던 향수어린 음식을 찾기 위해, 또한 새로운 요리법을 배우기 위해 걸어온 파란만장한 여정길 같은 소소하지만 공감할 만한 이야기도 있다. 결혼과 육아 과정 속에서 여자와 엄마 사이의 갈등을 유쾌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그중 책에 대한 노라의 사랑이 듬뿍 표현된 '내 인생은 판타지'는 특히 좋았다. 

돋보기 없이 불편해지는 나이 덕분에 지도나 약병에 적힌 글자를 읽기는 거의 포기했으며 집안 곳곳에 돋보기를 뿌려놔도 불편함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노라 애프런. 그러나 그녀는 나이 먹는 것의 서글픔과 아쉬움을 토론하면서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먹고 마시고 도박을 즐기며 60세 생일을 보낼 만큼 씩씩하게 노년을 즐기고 있다. 이제 슬슬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야 할 시점에 이른 노라. 그녀는 칙칙해지지 말자고, 크게 웃으며 순간에 충실하자고 외친다. 죽음 앞에서 아무리 고민한들 무엇하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 충실하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 "내가 죽다니, 믿을 수 있어?" 그녀가 말했다. 아니. 난 믿을 수 없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칙칙해지지 말자.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자. 크게 소리 내어 웃어보자. 먹고, 마시고, 흥겨워해라. 순간에 충실해라. 삶은 계속된다.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말을 되뇌어라. '그렇다고 별 수 있나?' 여기,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다. 뭘 해야 하는 걸까? (198쪽)


유쾌하게 나이들기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무겁거나 칙칙하지 않다. 오히려 밝고 경쾌하다. 노라 애프런의 에세이집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는 이렇게 고상한'척'이나 우아한'척' 하지 않고 자신의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가식없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들엔 적절하고 상큼한 유머가 섞여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처럼 유쾌하다. 그리고 마냥 가벼운 듯 하면서도 그 안에 인생의 보편적인 이야기와 자기 성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시작은 시큰둥했지만 마지막엔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육십을 넘긴 노라 애프런의 솔직함과 엉뚱함과 유쾌함이 마냥 사랑스러워진다.







해리) 당신 인생에 대해 얘기해 볼래요?
샐리) 내 인생이요?
해리)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18시간이나 남았잖아요.
샐리) 내 이야기는 시카고도 못 가서 끝나버릴 걸요. 별거 없어요. 그래서 뉴욕에 가는 거니까.
해리) 뉴욕에 가면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나요?
샐리) 그렇죠.
해리) 예를 들면?
샐리) 신문방송학을 전공해서 기자가 될 거예요.
해리)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쓰시겠다?
샐리)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겠죠.
해리) 그럼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겠네? 죽을 때까지 거기에 살았는데 별 거 없으면. 아무도 못 사귀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어버렸는데, 복도에 썩은 내가 진동할 때까지 2주가 넘도록 아무도 모르면? 뉴욕에선 그런다던데.

-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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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을 들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주동안 거대 로봇들에게 온전히 점령당한 영화관에 두 편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싹쓸이에 대부분의 영화들이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노린 용감한 두 편의 영화는 바로 역도를 소재로 한 우리 영화 『킹콩을 들다』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영화 『시네마 천국』의 두 거장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작곡가 엔리오 모리꼬네가 다시 손을 잡은 유럽 영화 『언노운 우먼(The Unknown Woman)』이다. 두 편 모두 보고 싶었으나 이곳에서는 『언노운 우먼』이 개봉조차 하지 않는 관계로 또다른 신작 『킹콩을 들다』를 만났다.

개봉날이 잡히기 전까진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스포츠를, 그것도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이제껏 무수한 스포츠들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으나 역도는 처음이 아닐런지. 게다가 가녀려 보이는 조안이 역도 선수로 분했단다. 조안과 역도라, 쉽게 조합이 안 되었지만 몇 컷의 영화 스틸 사진에 담긴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영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영화, 개봉날 보고 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이배영 선수를 연상시키는 영화의 첫장면이, 매번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씁쓸함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땀 흘렸는지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승자에게만 환호하고 오로지 금! 금! 금!! 메달의 색깔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영화의 첫장면에서 그대로 쏟아져 참 부끄러워졌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지봉(이범수)은 여러 곳을 전전하다 시골학교 역도 코치로 부임한다. 자신의 실패 때문에 역도를 하려는 아이들을 말리지만 아이들의 열정에 결국 마음을 열고 최선을 다해 소녀들을 지도한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감동 드라마도 잠시, 뜻하지 않은 역경에 부딪치게 되고 진심으로 제자를 위하는 이 코치와 그런 스승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솔직히 <킹콩을 들다>는 다소 좀 빤한 스토리의 뻔한 감동을 담은 영화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킹콩을 들다> 또한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빠지지 않는 악역들의 훼방으로 곤경에 처하지만 그런 역경을 이기고 성공으로 나아간다는 예측 가능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도 그리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재미와 감동, 웃음을 제법 맛깔스럽게 이어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강도 높은 악역의 등장으로 갈등을 고조시키고 조금은 억지스런 상황 연출로 하면서 감동을 강요하면서 급격히 신파적인 면을 보인다. 초반의 즐거움을 후반까지 이어갔으면 좋으련만, 감동도 좋지만 너무 대놓고 울어봐!라고 하니 조금은 김이 빠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쁘지 않은 건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의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신경쓰는, 그리고 그들의 꿈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멋진 조력자가 되어주는 스승의 마음, 그 진심이 뻔한 스토리를 이기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더불어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영화에 대한 나머지 감정까지 모두 순화시켜 버린다. 약삭빠른 이 시대에 진정 저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곳이 아닐까.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남겨주는 엔딩 크레딧이었다.

더불어 이범수와 조안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다.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며 첫장면에서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는 이범수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화장기를 걷어내고 늘어진 티셔츠와 추리닝에 얼굴에 버짐 분장까지 하며 역도 선수로 분한 조안의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드라마 <토지>를 잠깐 보다가 악녀 귀녀 역을 맡은 그녀의 연기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이 앞으로 기대를 갖고 지켜봐도 좋을 배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녀와 함께 출연한 역도부원 소녀들 역을 맡으며 함께 땀흘린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이 영화를 한층 빛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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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 문학동네의 인기만점 책도둑 이벤트가 다시 열렸네요!!  

이번에도 이렇게 기나긴 리스트 댓글들이 줄을 잇다니~
역시~ 문동의 책도둑 이벤트 인기는 엄청난 것 같아요. ㅎㅎ

현재 대략 15: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보이고 있지만,
저 경쟁률을 뚫을 확률이 그리 커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멋진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왜냐~!!
탐나는 책들이 느무느무~ 많은 문학동네의 책을
한두 권도 아니고 무려!!! 열 권이나 골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하냔 말이죠!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니까요~ ㅎㅎ

저번처럼 댓글 대란에 화들짝 놀라셔서
볼펜 던져서 당첨자 뽑으시는 일이 다시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이번에는 꼭 훔쳐낸 책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문학동네에서 훔치고 싶은 책 10권을 열심히 고르고 골랐답니다!

책도둑니임~~~
부디~ 울트라캡숑나이스짱 제발~
이번에는 이책들 꼬옥~ 훔쳐주셨음 좋겠어요! >_<
그럼 올해 남은 날들도 만사형통일 것 같다죠~ ㅎㅎ

그럼 책도둑님, 잘 부탁드려요!! 
훔쳐주실 책 목록은 아래와 같답니다! ^ㅇ^  


1. 메신저 
2. 체실 비치에서
3. 노란 불빛의 서점
4.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5. 효재처럼 살아요
6. 힐더월드
7.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8. 나를 위해 웃다
9.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10. 고산자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메신저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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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9년 07월 07일에 저장
품절
노란 불빛의 서점-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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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07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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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을 들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소 뻔한 에피소드와 작위적 설정이 거슬린다. 하지만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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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7월1주)

트랜스포머2가 스크린을 다 잡아먹은 한 주를 보낸 가운데, 이번 주말에 새로운 영화가 개봉을 했다. 일단 개봉 영화에겐 얼마간의 스크린이 주어지는 형편이니 트랜스포머2에 질려버린 나같은 마이너리티에겐 개봉작 소식이 반가울 터! 하지만, 영화사들도 눈치껏 개봉일을 잡아야 하는 형편이라 헐리웃 초강력 핵폭풍급 영화 개봉 다음주에 개봉하는 무리수는 다들 피하고 보자인 마음인지라 개봉작이 달랑!!! 2편, 뿐이다.

그러나 어디든 틈새는 있는 법! <트랜스포머2>라는 골리앗이 전체 스크린의 절반을 넘게 점유해 버렸지만, 이미 그 영화를 봤거나 나처럼 아예 관심없는 사람들은 다른 영화를 찾게 마련! 그런 틈새를 노리고 이런 살벌한 시점에 개봉을 한 용감한 영화 2편을 살펴보자.
















두 편 중 먼저 <킹콩을 들다>에 눈길이 간다. 개봉날이 잡히기 전까진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스포츠를, 그것도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이제껏 무수한 스포츠들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으나 역도는 처음이 아닐런지. 게다가 가녀려 보이는 조안이 역도 선수로 분했단다. 조안과 역도라, 쉽게 조합이 안 되었지만 몇 컷의 영화 스틸 사진에 담긴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영화가 급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영화, 개봉날 보고 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사재혁 선수를 연상시키는 영화의 첫장면이, 매번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씁쓸함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땀 흘렸는지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승자에게만 환호하고 오로지 금! 금! 금!! 메달의 색깔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영화의 첫장면에서 그대로 쏟아져 참 부끄러워졌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지봉(이범수)은 여러 곳을 전전하다 시골학교 역도 코치로 부임한다. 자신의 실패 때문에 역도를 하려는 아이들을 말리지만 아이들의 열정에 결국 마음을 열고 최선을 다해 소녀들을 지도한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감동 드라마도 잠시, 뜻하지 않은 역경에 부딪치게 되고 진심으로 제자를 위하는 이 코치와 그런 스승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솔직히 <킹콩을 들다>는 다소 좀 빤한 스토리의 뻔한 감동을 담은 영화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킹콩을 들다> 또한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빠지지 않는 악역들의 훼방으로 곤경에 처하지만 그런 역경을 이기고 성공으로 나아간다는 예측 가능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도 그리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재미와 감동, 웃음을 제법 맛깔스럽게 이어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강도 높은 악역의 등장으로 갈등을 고조시키고 조금은 억지스런 상황 연출로 하면서 감동을 강요하면서 급격히 신파적인 면을 보인다. 초반의 즐거움을 후반까지 이어갔으면 좋으련만, 감동도 좋지만 너무 대놓고 울어봐!라고 하니 조금은 김이 빠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쁘지 않은 건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의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신경쓰는, 그리고 그들의 꿈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멋진 조력자가 되어주는 스승의 마음, 그 진심이 뻔한 스토리를 이기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더불어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영화에 대한 나머지 감정까지 모두 순화시켜 버린다. 약삭빠른 이 시대에 진정 저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곳이 아닐까.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남겨주는 엔딩 크레딧이었다.

더불어 이범수와 조안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다.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며 첫장면에서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는 이범수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화장기를 걷어내고 늘어진 티셔츠와 추리닝에 얼굴에 버짐 분장까지 하며 역도 선수로 분한 조안의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드라마 <토지>를 잠깐 보다가 악녀 귀녀 역을 맡은 그녀의 연기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이 앞으로 기대를 갖고 지켜봐도 좋을 배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녀와 함께 출연한 역도부원 소녀들 역을 맡으며 함께 땀흘린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이 영화를 한층 빛나게 해준다.



















영화 <언노운 우먼 : The Unknown Woman>은 내가 사는 작은 도시 그 어느 영화관에도 개봉하지 않는 영화라 영화사이트에서 처음 알았다. 포스터부터 심상찮은 이 영화, 대체 어떤 영화인가 싶어 봤더니 오홋! 그 내용이 화려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의 호평과 감동을 이끌어낸 명작 <시네마 천국>의 두 거장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가 8번째로 만난 영화란다. 이번 장르는 스릴러라고.

The Unknown Woman은 직역하면 모르는 여자(갑자기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가 생각나는 이유는? ^^;), 알려지지 않은 여자 정도? 영화의 내용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보석상인 아다처 가에 들어가기 위해 기존의 가정부를 사고로 위장해 없애버리고 그 집의 가정부이자 딸아이 ‘떼아’의 유모로 취직해 주인 부부의 환심을 사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이레나는 어느날 정체 모를 남자에게 쫓기게 되고, 주인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에 그들의 딸 떼아에게 잔혹한 훈련을 시키기 시작한단다. 과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여자, 이레나는 누구일까?

<시네마 천국>의 감독과 세계적인 작곡가 엔리오 모리꼬네가 함께 했다는 빵빵한 배경을 갖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비주류인 유럽 영화이기 때문인지 <언노운 우먼>은 이번주 개봉작임에도 불구하고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개봉관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관들이 돈 되는 영화에 스크린의 절반을 뚝 떼어줘 버린 터라 다른 절반을 남은 영화들이 모두 달려들어 나누다보니 피터지는 경쟁에 휘말릴 수 밖에. 그나마도 흥행력있는 영화들이 먼저 자리를 잡으니 이런 작은 영화들은 발붙일 곳이 없다. 어쨌거나 시놉시스를 읽다보니 궁금해지는데, 이곳에서는 개봉을 안 하니 궁금한 마음을 참을 수 밖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거북이 달린다>는 <트랜스포머>의 광풍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거북이처럼 끈질긴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알아보는 법!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봤던 영화였던 만큼 이렇게 질긴 흥행세로 롱런을 해주니 반가울 따름이다. 잘 짜여진 스토리와 능수능란한 연출, 배우들의 호연과 곳곳에 숨겨둔 웃음까지..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바로 <거북이 달린다>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어서 보러 가시라고 여전히 강추하는 작품!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며 역대 최대 스크린에서 개봉한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은 개봉 2주차에 접어들며 스크린수가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전체 스크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엄청난 흥행세를 과시하고 있다. 원래 기대치도 있겠지만 볼만한 시간에는 죄다 이 영화만 상영하니 기타 관객들까지 모조리 흡수해버린 덕분이지만. 트랜스포머 태풍을 피해 개봉일을 잡은 다른 영화들 덕분에 <트랜스포머2>의 불붙은 흥행세는 아마 당분간은 계속될 듯하다.


7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하반기 기대작인 우리 영화 <차우>, <해운대>, <국가대표>, 8월에 <10억> 등이 대기중이라 흥행 판도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트랜스포머2>는 뚜렷한 경쟁작이 없는 7월 중순까지 무한질주하며 충분히 주머니를 채우겠지만. 여튼 로봇들 말고 다른 영화들도 마음대로 골라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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