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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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새악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땜누이라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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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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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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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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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주사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크게 떴다. 그 놀라는 반응은 첫 번째 노린 효과였다. 아, 당신이 미국 박사님! 한국 사람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공무원 같은 보수 집단에게 미국이란 그 얼마나 거룩하고 눈부신 대상인가.
- 마노아




억(億)이란 뜻을 아는가? 그 글자는 사람 인 변에 뜻 의 자가 합해진 거지.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건 실재하는 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는 큰 수라는 뜻이야. 그 글자가 만들어졌던 그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경제 규모가 작았으니까 억 단위의 금전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거야.
- 마노아




우리는 흔히 분노와 증오를 감정적인 것, 또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값싸게 취급하거나, 경멸적으로 비웃는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비인간적인 불의와 반사회적인 부정이 끝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그런 그른 것들을 보고도 아무런 분노나 증오도 안 느낀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가. 더구나 지식인들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마땅히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분노와 증오를 느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처절하게 살아온 민족일수록 그 지식인들은 가해자들을 향해 식을 줄 모르는 분노와 증오를 품어야 한다. 그 시간과 세월을 초월하는 분노와 증오는 이성적 판단과 논리적 분석이 없이는 생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분노와 증오는 일시적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인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부당함과 역사의 처절함에 대해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지 않다면 그건 지식인일 수 없다. 더구나 작가로서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가슴에 담겨 있지 않다면 그는 작가일 수 없다.
80년대 그때에 큰 자극을 받았던 어떤 작가의 글 - 마노아




전인욱은 늦은 밤길을 혼자 걸었다. 처자식 있는 몸!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보다 훨씬 더 호소력이 강한 자기변명의 수단이고 무기였다. 그리고 비겁자, 보신주의자들이 가장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였다.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그 한마디는 그 어떤 난처한 입장, 그 어떤 궁지에서도 단숨에 탈출할 수 있는 만사형통의 묘수요, 만병통치특효약이었다. 그 말의 밑뿌리는 우리의 골수에 박혀 있는 인정주의였다.
- 마노아




좀도둑은 포승 받아도 큰도둑은 상 받는다. 우리의 속담이다.
재벌들이 저지르는 그 불법 행위는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범죄이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씌워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재벌들의 경제 범죄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다. 왜 그랬을까. 기업들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 마노아




긴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으로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
- 마노아




투표가 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계속 신장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혁명’이듯이, 우리가 단결한 불매운동은 기업들과 우리들이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경제 혁명’이다. 우리가 그 어리석은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 사로잡혀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기업들은 더욱 신바람 나게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 우리는 점점 더 비참한 노예가 되어 간다.
감기 고뿔도 남 안 준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왜 재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주겠는가.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 내고, 거미줄도 수만 겹이면 호랑이를 묶는다. 조상들의 일깨움이다.
국민, 당신들은 지금 노예다.
- 마노아




사흘이면 남의 일은 다 잊어버린다는 그 말을 다시금 입증해 주듯이 한동안 끓는 물 넘치듯 시끌벅적 왁자지껄해 대던 사람들의 입도 잠잠해지고 있다. 속이 터지는 경제민주화실천연대에서만 어서 빨리 수사를 진행하라는 시위를 검찰청 앞에서 날마다 벌였다. 그러나 그건 법에 저촉되는 것을 피한 1인 시위였다. 그 침묵의 외로운 시위는 저마다 바쁘고 지친 도시인들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했다.
- 마노아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도덕적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 말았으니 그 결과야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돈과 결탁하는 ‘정경유착’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배신과 불의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또 다른 감시와 감독 조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시민단체다.
- 마노아




“충고란 그동안 있어 왔던 우정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배신을 무릅쓰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 마노아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루 나누어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 마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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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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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관찰, 공간의 느낌을 깊은 사색을 통해 잘 표현한 작품이다. 아주 오래간만에 울림이 있는 문장들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서사적으로 요즘 나오는 소설들처럼 흡입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나, 작가의 무게감 있는 한문장 한문장이 책장을 넘기는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생각한다. 소설의 구조도 그러하다. 현실의 깊이를 과거가 더해준다. 과거와 현재의 어울림이 한 사람의 뒷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서 주절거려 본다. "어쩌면 삶은 쓸쓸함일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살아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떠 들지만, 결국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의도와 의식은 상극의 관계이다. 소설의 나오는 주인공의 아내는 비중이 많지는 않지만, 그의 시선에 보여지는 아내의 모습은 아름답다. 독자로서 그의 아내를 생각할때 미안하다고 사랑하다고 보고싶다고 말하싶다. 그리고 그런 아내와 살고 싶다고 생각이 든다. 소설은 주인공의 시선과 관념을 오롯이 따라가면서 서사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킨다. 앞서 말했던것과 같이 현재를 통한 과거의 보기의 쓸쓸함때문이 이것이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아름답지만, 쓸쓸한...소설이다.

▲ 밑줄 긋기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생의 어느 한 부분을 안다는 것으로 서로 얼굴 한 번 안 본 사이끼리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습니다. 그런 소설이 되기를 바랐고, 그것이 교감되었다는 것이 기쁘고 고맙습니다. (표지 안쪽 작가의 말) 

생의 의미를 찾아 멀리 떠날 것까진 없다. 의미는 사무실 소파 아래에 뒹구는 막걸리 통에도 얼마든지 있다. 의미는 사무실 소파 아래에 뒹구는 막걸리 통에도 얼마든지 있다. 의미를 몰라 인생이 건조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하루에 두 번씩 거리의 색채를 바꾼다. 해가 뜰 때보다 질 때가 더 갑작스럽고, 더 슬프다. 몰락이라는 단어는 석양에서 왔을 것이다.(11쪽)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사치는 가져가는 게 좋다. 정신의 사치는 우울증을 막아준다.


남자가 들어왔을 때 환기를 하느라 열어놓은 창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닫았다. 창가에 서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덤덤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자기 인생을 누구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이해라는 건, 자식이나 마누라가 아닌, 맞은편 막걸리 집에서 몽롱하게 취해 바라보는 어느 손님이 뜻밖에 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15쪽) 오래된 사물에는 세월을 견뎌 온 고유한 질감이 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시절들이 희미하게 번져 있어, 단지 먼저 살아냈다는 이유만으로 보는 이의 인생을 문득 긴장시킨다. 거기에 보이는 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그것들 속에 시간으로 괴어 있는 낯익은 슬픔일 것이다.(26쪽)   


나이가 마흔쯤 되면 버릇이 옹이처럼 삶에 박힌다. 무심코 반복되는 그것들 속에 욕망도, 상처도, 사는 방식도 다 들어있다.


사르트르 <구토>의 한 부분

주인공은 무심코 문고리를 잡다가 서늘하게 놀란다. 차갑고 딱딱하던 문고리가 물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사물, 아니 생물로 느껴진다. 문고리가 생물이 되고 나니 주인공 남자와 문고리는 이제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 된다. 그러자 모든 존재가 갑자기 낯설어진다. 문고리가 생물이 되는 대신 정상적인 사람들은 짐짝이나 고깃덩어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그래서 구토를 하고 만다.

한 번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그 일이 돌아온다.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

우연을 운명으로 의식하는 순간 운명은 바뀐다. 안 거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것이 시작된다. 슈뢰딩거 고양이 이야기는 실종된 운명의 이야기다. 우리가 확인한 고양이의 죽음은 우리가 불러일으킨 일일 뿐, 고양아의 진짜 생사는 상자 뚜껑을 열기 전의 그 시간에 있다. 운명은 ‘모르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아는 건, 안다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아니다.


산자가 보내지 않으면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못 떠나는 건 산 사람 때문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까뮈가 말했다. 부조리한 세계에서는 ‘더 잘사는 것’보다는 ‘더 많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말이에요. 한 인간의 도덕과 가치 체계는 축적된 경험의 양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현대의 상황은 대다수의 인간에게 같은 양과 같은 깊이의 경험만을 부여한다. 경험이 좀 더 많아지면 가치의 목록이 달라질 것이다.


사방이 아주 고용하면 예민해지는 게 아니라 둔한 방심 상태가 된다. 그런 방심 상태가 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존재’만 하던 것들이 슬며시 자기를 드러낸다. 의미라는 것도 그럴지 모른다. 절망이나 깊은 슬픔으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면, 현실적 의미들이 사라진 곳에서 다른 차원의 의미가 올라온다. 자각은 갑작스러워야 자각이다.


인생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나 구차한 허영, 아내를 실망하게 한 다른 큰일은 말할 것 없지만, 순간적으로 목이 메게 하는 기억은 이처럼 작은 일이다.(134쪽)  

가난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면에 담담한 자부심이 있으면 가난한 생활이 쓸쓸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못난 자의식으로 늘 세상과 대결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속물스러운 사람들을 경멸하며 의연한 척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초조해하며 나에게 없는 것들을 욕망했다. 아내의 인생도 그런 나를 고단하게 지켜보는 것으로 소진되었다.(182쪽)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191쪽) 

 때로, 인생 전체가 아니라 삶의 어느 한 국면, 무엇을 견디거나, 넘어서거나, 혼자 걸어가는 어느 장면이 한순간에 전폭적으로 이해될 때가 있다. 그 사람 영혼의 한 자락이 들여다보인다고나 할까. 

(210쪽) 빛은/조금이었어 // 아주/조금이었지 // 그래도 그게/빛이었거든(230쪽)  

중요한 건, 내가 아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모호하게 사족 붙이지 않고, 부질없는 미문에 매달리지 않고, 내가 아는 표정과 몸짓들에 대해서만, 내가 명백히 아는 이야기만 쓴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하는 말들을 내가 정확히 받아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내가 쓰는 글은 '내가 아는 세계'라는 한 의미가 된다. 그것이면 된다. 한 사람을 온전히 만나면 거기에 다른 이들도 보인다. 배역이 다를 뿐 모든 사람의 욕망과 상처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산다. (237쪽) 

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249쪽)  

 아이는 그때 자기 생을 유예시키고 있었다. 아무 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늘 혼자였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기 인생에 무슨 일인가 생겨주기만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온순했다. 세상은 온순한 사람은 기억하지 않는다.(281쪽) 

바람이 불었다. 목련 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후두두 흔들렸다. 수십 개의 나뭇잎들이 저마다의 몸짓과 표정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뭇잎의 미세한 떨림, 그 파동 하나하나가 내 몸에 날아 들어왔다. 서서히 벅찬 감흥이 가슴에 차올랐다. 나뭇잎은 저마다 하나의 웃음이고, 뜀박질이고, 눈물이고, 기도였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욕망이고 회한이었다. 살아오면서 문득 마주치곤 했으나 알 수 없었던 신비한 순간들이, 들판에 퍼져 나가는 종소리처럼 나뭇잎들 하나하나에서 무수하게 솟구치고, 몰려오고, 날아다녔다.(288쪽) 

 당신은 지금 어디 있냐고, 아내는 그렇게 나를 긴장시켰다. 이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 청탁 끊긴 지 오래고 전직 소설가라는 농담을 덤덤하게 듣던 시절이다. 이번 소설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293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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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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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쪽에서 일한 경력은 확실히 서사면에서 장점을 보여준다. 특히 초반부의 설정과 흡인력은 시각적 드라마 이상이다. 다소 비현실적 설정을 설득하기 위해 소설은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그렇다고 정보의 설명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서사의 진행과 그것이 어우러져 결코 지루하지 않다. 설정자체가 품고 있는 서스펜스가 충분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활자나 영화나 그 초반의 설정으로 나오는 흡인력으로만 마지막 까지 달려나가기란 무리다. 소설은 다소 의외의 주제의식으로 발전했고, 후반부는 소설의 색깔과 맞지 않는 톤의 관념으로 버무려지면서 살짝 기대에 어긋나는 재미없음과 재미있음이 공존하게 되었다. 어쩔수 없음이 결코 실존적 결말이라고는 생각할 수없다. 그러나 그 어쩔수 없음을 자각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아마 아주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돈과 그럴싸한 자기합리합만 가능하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일때 내가 그들을 죽여할 이유를 찾기보다 그들이 죽어야 할 이율르 찾는 것이 더 빠르고 더욱 편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거대한 회사.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어쩔수 없음을 인정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람의 지표든, 국가의 지표든 모든 것은 수치가 보여주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 결국 거대한 회사의 직원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사람의 죽임으로서 얻는 댓가에 그리 큰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이 삶에 태어나는 순간 누군가를 알게 모르게 수없이 죽여야 하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알고도 모른척 , 모르면 그냥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숙명이며, 그러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죽이며, 누군가를 두려워 하며 살아나가야 하는 굴레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불행하지는 않다. 가끔은 많은 것에 위안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위안들은 표면적으로, 아마 모든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그런것들일 것이다. 그렇다. 거기까지다. 모두에게 위안이된다고 믿고 있는 것들을 내가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항상 선이 선을 악이 악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나는 어쩌면 시궁창 같은 바닦위에 그럴싸한 누각을 짓고 안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하자 결코 저 먼나에 이름모를 전혀 다른 민족의 죽음이 나와 무관하다고는 생각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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