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프다.':나는 이 말을 도저히 내 입으로 할 수가 없다. 내게 나를 슬퍼할 자격이 있던가.

'나는 너를 용서한다.':소름끼치는군. 내가 용서되지 않는데, 누굴 용서한단 말이야.

슬픔도 용서도 능력이다. 그리고 나는 무능력하다. 그러나 나의 모든 문장에서 '나'를 빠뜨릴 순 없을까.

'나'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대로 있는 '나'. 그 '나'는 '나'를 말하는 데 아무 거리낌 없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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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반쯤 전주에 도착했다. 만 하루의 서울 나들이와 하루 앞둔 귀대. 가뭇 없이 사라져 가는 나에 대한 믿음. 비가 오고 있었고, 서울의 일들이 허망하게만 느껴졌다. 과장된 하소연은 너무 지겹다. 하소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했다. '괴롭다!'는 유아기적 외침. 이어지는 반성과 참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내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제 나는 그만큼 떠벌일 필요가 있었던가. 그 난리법석의 무안함이란.

처음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던 헌책방을 찾았다. 주인 아저씨와 인사는 하지 않았다. 5년 전과 달리 영락해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팔리지 않는 책들 거개가 일년 전 모습 그대로 였다. 책방을 조용히 나섰다. 다시는 이곳에 발들 들여놓지 않기로 했다.

조금은 뻔뻔하게, 나는 나를 잊을 필요가 있다.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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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입대가 코 앞이다. 공군홈페이지에 가봤더니 생각외로 준비해야 될 게 많다. 난 몸만 가면 되는줄 알았다. 요구하는 게 이렇게 많을줄이야. 티비에서 봤던 입대 풍경은 이런 잡다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듯 한데, 이거 원. 공군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준비물엔 주민등록등본도 있다. 동사무소 문 닫은지 오래되었고, 일요일은 쉬는 날이니 천상 월요일 아침 진주에서 뗄 수밖에 없겠다. 휴대폰을 3년간 정지하고, 입대 전 할 일은 따져보았다. 하기로 약속한 것들이 부지기수다. 하릴없이 식언이 되고 말았구나. 특히나 중원이와 한 약속을 거듭 어기게 되어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나의 군입이 조금이나마 핑계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군대가는 일 아무렇지 않게 생각 됐었는데, 조금 전에 본 '그것이 알고 싶다'의 실미도의 진상이 내 소심을 자극한다. 실은, 실미도고 나발이고 더 무서운 게 있다. 1500미터 달리기 7분 44초의 압박. 사람들 말로는 이게 별거 아니라 하는데, 달리기를 해 본 지가 까마득하여, 생각하면 조금 긴장된다. 연습이라도 한번 해볼 것을. 좌우간 체력검정을 통과한다손 치더라도, 어느 부대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병과를 보아하니, 무엇하나 똑부러지게 잘할 만 한 것도 없더구먼. 잉여인간으로서의, 그것도 저급한 의미의 잉여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재삼 확인함.

전주 내려오기 전 어쩌다 운동화도 잃어버렸으니, 그 누런 아버지의 르까프 운동화를 신고 헙수룩한 머리에 추레한 복장으로 입대하겠구나. 버스에 뭐라도 놓고 내린양 영 찜찜한 기분일 텐데 말이야. 김병익처럼, 군생활이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찬 벽감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그처럼 도스토예프스키를 아껴가며 곱씹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까. 과연 그랬으면 한다.

 

우선 나는 그대들의 건강과 영광을 빈다. 아울러 그
대들의 죽음을 축하한다. 그대들의 꿈같은 좌절과 화려
한 지옥을 축하한다. 모든 것은 절대로 좋고 절대로 나
쁘다-그 점을 축하한다. 그대들의 공포 및 동해와
서해의 격랑을 축하한다. 그대들의 이목구비와 발바닥
과 신문을 축하한다. 극장과 짧은 즐거움과 애국가를 축
하하고, 전진과 후진을, 좌진과 우진을, 그대들의 전후
좌우를 축하한다. 한 잔의 술, 길 없는 데서의 질주의
끈기(!), 그 모든 것을 축하한다.

  돋아나는 풀잎의 눈물 속에 내리는 비
  불 꺼진 창의 검은 눈동자 속에 내리는 비
  오 내 사랑
  돋아나는, 풀잎의, 눈물, 속에, 내리는, 비......


-정현종, <내 사랑하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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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2-0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입대 전날이라... 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정말 긴장되는 순간일 것 같네요.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짧아졌으니까요. 시간은 흐르는 거니까요. 다들 감내하는 일이니까요... 부디 화이팅 하십시오!!!

쎈연필 2004-02-0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시고, 휴가 나오시면 이곳에 또 글 남기세요. ^^

wald33 2004-02-0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도서관여행자 2004-02-0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체력검정도 잘 통과하시구요.
 

시월평과 소설을 제한 <김수영 전집2:산문>을 단속적으로 읽었다. 순수참여 논쟁 당시 김수영은 참여 쪽 인사로 분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몇 글을 읽어보니 오히려 그는 당시로는 보기드물었을 상식적인 우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전에 읽었던,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의 입장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정에 부정을 거듭함으로써 문학에서의 자유를 구가하려던 점, 순수 참여를 떠나 읽을만한 작품인지를 먼저 살폈던 점 등이 그러하다. 그에게 당시의 순수시는 난해시로, 참여시는 힘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작품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가 시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 밀고 나감은 부정의 정신이었고, 결국 자유를 향한 정신이었다. 난해시든, 참여시든,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그는 무엇보다도 양심있는 작품을 요구했다. 요컨대 그에게 양심은 자기검열 없는 반동성이었다. 그 반동성은 반동을 반동하는, 계속되는 반동이다. 박인환으로 대표되는 <포즈>를 줏대로 하는 시인들과 검열에 주눅든 또는 정치적 격문에 도취된 시인들이 그의 경멸의 대상이 된다.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조차 억압되어 있는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가해지는 자발적 자기검열을 향한 격분이 그의 참여시 옹호로 이어졌나 보다. 김현의 말대로 그는 자유를 자유 그것으로 말하지 않고, 자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함으로써 자유를 지향한다. 정치적 자유가 지적됨은 따라서 당연하다. <내용>과 <형식>에 대한 김수영의 정의가 사실 내게는 조금 모호하게 느껴졌지만, <형식>이 아무리 자유롭다 하더라도 <내용>은 <형식>의 부자유를 끊임없이 지적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에 공명했다. 논리적인 동조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공감이다. 누구든 그가 문인이라면, 예술가라면 자유를 향한 민감한 촉수가 그의 예술가 됨의 기본요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완벽한 자유의 구가가 불가능한 꿈이라 하더라도, 자유의 불가능을 지적함으로 자유의 새 지평을 열어주는 역할을 예술가는 마땅히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수영에 이르러 자유는 자유의 불가능으로 가능하다. 시가 배고프게 하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자크 마르땡의 언사처럼, 자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엔 김현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그는 어느 글에서 질문의 가능성에 삶과 문학의 의의가 내장되어 있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김수영은 사물을 가급적 외부에서 보려고 한다. 거리를 두고 남의 시를 보듯 자기 시를 보고 싶어 하고, 객관의 눈으로 사물의 됨됨이를 따지려 한다. 그 외부는 냉담하고 거침없는 필설의 대상이 된다. 그는 시를 밀고 나가야 하며 당세 한국의 문화적 풍토를 밀고 나가야 한다. 여유가 없다. <번역자의 고독>에서 말해지는 한국 번역의 실상은 그를 자포자기하게 하며, 어느 시월평에서와 같은 자탄을 자아낸다. 그의 대답은 <모르겠다!>이다. 절망의 수렁을 한마디 입바른 소리로 나무라는 <고급속물>들과 싸우기에도 넌더리가 난다. 하지만 그는 생계를 위해 번역을 계속 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땅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자탄과 더불어 밀고 나갈 것이다. 그 누구도 맡기지 않은 짐에 내리 눌리며 탄식할 것이다. 사물의 자발적 탈각을 조장할 것이다. 이것은 밖, 밖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의 눈은 밖에 있다. 아니다. 그는 사물을 가급적 내부에서 보려고 한다. 내부의 모습은 쓸쓸하고 그만큼 상스럽다. 가족과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내부의 모습이다. 담배값의 메모와 양계에서 비롯되는 생계의 지리함과 잡다함은 소설의 세계다. 이 세계는 아늑하고 여유있다. 이것은 악인가. 그렇지 않다. 인정할만한 여유다. 이 또한 사랑의 지평 위에 놓여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긴장을 놓치는 것만 같고, 시를 쓰는 데 특별한 애로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 또한 세상의 한 풍경이라면 인정할만하다. 인정할만한가. 자유의 억압을 목전에 두고 주저할 수 있는가. 이게 양심인가. 그의 산문은 이 딜레마의 자장 위에 놓여있다.

그는 <시는 행동>이라 말하지만, 그 행동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그 행동은 자유를 향한 행동일텐데, 시 속에서의 행동으로 생각된다. 그는 천상 시인이다. 그의 양심이 정치적 양심이라기보다 시인의 양심을 지칭하듯, 시인의 양심이 시를 벗어난 양심이 될 수 없듯, 그의 행동은 시적 행동이다. 그 행동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고, 시 속에서의 부정의 정신, <反詩論>의 태도다. 결국 정신과 태도가 행동을 결정한다. 사르트르의 시에 대한 입장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나로서는 이런 그가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시라는 <형식> 속에서 최선을 다한 그이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그 문체만으로 당대 문학판에 기여한 바 크다는 평판을 어디에서 들었던 것 같다. 산문 속에 인용된 몇몇 글을 보니 그 평판이 과연 옳다. 문법적 오문도 많을 뿐더러 포즈만 가득하다고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다. 어느 글에서는 김수영도 이 대열에 예외가 아닌 듯한 인상을 준다. 일본어 세대인 탓도 크리라. 한국어에 설어 원고 한 장 쓰는데 사전을 두 세번을 뒤적여야 한다고 김수영은 불평하고 있지 않던가. 동년배 문인들. 이어령, 유종호, 박이문의 노고가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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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피곤하다. 게으른 하루가 가고 있다. 이래선 안 될 것 같다. 하룻동안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곱씹어 보고, 또 누군가가 떠오르면 그이와 나의 관계를 곰곰이 따져보기도 한다. 그러자면 머리가 지끈해지고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 자야겠다. 잠도 안온다. 밤낮이 바뀐 일상도 인이 박였는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책상 서랍을 이리저리 뒤져본다. 접힌 갱지 네 장이 나왔다. 고등학생일 때, 시험 전날이나 익혔던 한문 유인물 몇 장. 베개 위에 가슴을 이고 한자한자 써보았다. 시간만 나면 하던 교과서 공백에 하던 낙서가 한문 갈기는 거였는데, 그렇게 갈겨 댔는데, 재주가 어지간히도 없는지, 서체가 아직 똑같은 꼬락서니다. 절망, 절망. 서예를 잘 하려거든 무릇 힘이 있어야 한다, 우선 손목 힘을 기르는 게야, 하고 선생님께서 이르셨거늘. 그렇다면 여태껏 셀 수 없는 종이를 더럽혔던 본인은 어떻게 된건가. 이 비재를 숨기기 위해서인지, 남 앞에선 꼭 흘겨 쓰게 된다. 역시 한 방면의 실력자를 가늠하려거든, 그의 기본을 따져야 한다. 어설픈 것들이 분식으로 제실력을 감추려 들기 일쑤다. 그래도 흘겨쓰는 버릇이 내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이, <생활한문>시간에 선생은, 나의 판서를 보고 한마디 해주었다. '수병 학생은 서예를 했나보군요.' 물론 그렇지 않았으므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는데, 조금이라도 기미를 보이면 본색이 탄로 날 것 같아 뻣뻣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사자성어 익히는 일이 즐겁다. 교훈이나 처세를 함유하지 않더라도, 성어는 소루한 일상을 낯설게 한다. 문득 풍경같다. 성어는 그 풍경 속을 잠시 주유하게 해준다. 사불성의: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수영은 사불성의하면 여편네를 팬다고 그의 산문집에 쓰여있다. 적수공권: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말에 '맨주먹 붉은 피'라는 관용어가 우스개로 쓰인 일이 있는데, 성어와 뜻이 유사해 이 성어는 쉽게 외게 된다. 작취미약:어젯밤 술이 깨질 않았다. 여광여취:미친 듯, 술취한 듯 즐겁다. 망양지탄:양 찾을랬더니, 길이 너무 여러가지다, 현재 나의 상황이 그러하다. 후생가외:젊은이의 가능성을 가늠키 어려우니 가히 두려워해라, 후배님들 책을 덜해야겠다. 불원천리, 진문기담, 관인대도 등등등. 가장 좋았던 성어는 수불석권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위편삼절, 독서백편의자현, 한우충동, 현두자고, 형설지공 등등의 말이 있다지만, '수불석권', 괜히 좋다. 어쨌든 사자성어 공부는 정신의 안정을 도모하며, 소화불량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잠도 잘 온다. 덕분에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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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1-1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편네란 것은 사불여의하면 치고 차고 할 수 있는데, 처체라는 것은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없는 종족이라고... 김수영이 썼던 거보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솔직한 사람이었죠. 덕분에 이따가는 김수영 산문집 좀 들추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