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반쯤 전주에 도착했다. 만 하루의 서울 나들이와 하루 앞둔 귀대. 가뭇 없이 사라져 가는 나에 대한 믿음. 비가 오고 있었고, 서울의 일들이 허망하게만 느껴졌다. 과장된 하소연은 너무 지겹다. 하소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했다. '괴롭다!'는 유아기적 외침. 이어지는 반성과 참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내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제 나는 그만큼 떠벌일 필요가 있었던가. 그 난리법석의 무안함이란.

처음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던 헌책방을 찾았다. 주인 아저씨와 인사는 하지 않았다. 5년 전과 달리 영락해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팔리지 않는 책들 거개가 일년 전 모습 그대로 였다. 책방을 조용히 나섰다. 다시는 이곳에 발들 들여놓지 않기로 했다.

조금은 뻔뻔하게, 나는 나를 잊을 필요가 있다.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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