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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 ㅣ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2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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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모양처賢母良妻(wise mother and good wife)'는 유교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이상적 여성의 전형이 아니었으며, 설령 그렇다 해도 신사임당은 그 기준에 맞지 않았다. 유교가 여성에게 가르친 기본 덕목은 '삼종지도三從之道'였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식에게 순종하는 것이 여성이 평생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이다. 순종은 자아를 용납하지 않으며 독립적 사유를 배척한다.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은 '말 잘 듣는 것'뿐이다. 그에 반해 현모양처는 여성이 도달해야 할 지향점과 길러야 할 자질을 제시하며 남편과 자식을 보조하는 형식으로나마 여성에게 자율과 능동의 영역을 허용한다.
현모양처론은 중세 유교의 덕목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창안되어 20세기 초 한국에 유입된 천황제 국민국가의 여성관이다. 일본 천황제 국민국가가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은 남성이 나라에만 충성할 수 있도록 뒤에서 가정을 맡아 꾸리며 자식을 충성스러운 미래의 신민臣民으로 기르는 일이었다. 현모양처라는 용어는 성인 남성을 가정에서 완전히 이탈시켜 천황에 직속된 신민의 일원이라는 자격만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가정에 생긴 '권위의 공백'을 제국 신민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자각한 여성의 자발적 헌신으로 메우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p.76~77)
쌀은 밀,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3대 곡물로 꼽힌다. 오늘날 전 세계 경지 면적의 약 20퍼센트가 논이며, 세계 총 농업 생산고의 약 26퍼센트가 쌀이다. 쌀은 다른 곡물에 비해 인구 부양력이 특히 커서 쌀을 주식으로 삼는 지역은 어디나 인구밀도가 높다. 당장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일본 한국 등이 주된 쌀 소비국이다. 밀은 경작 면적에서 32퍼센트로 1위지만 전 세계 인구의 10퍼센트 정도만이 주식으로 삼는 데 비해, 쌀을 주식으로 삼는 인구는 전 인류의 35퍼센트에 달한다.
쌀 경작은 적도 부근의 아시아에서 기원했고, 지금도 전 세계 쌀의 90퍼센트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한국은 쌀 생산 지대의 맨 북쪽에 해당한다. 한반도 사람들이 쌀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경이었고, 쌀을 주식으로 삼은 것은 그로부터 1,000여 년 뒤였다. 그런데 한반도는 벼농사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여름이 짧고 강수량이 적은데다가 벼가 한창 생장할 5~6월에는 가물기 일쑤고, 수확을 앞둔 8~9월에는 수시로 태풍이 밀어닥쳤다. 그래서 한반도에 정착한 고대인들의 최대 실수는 쌀을 주곡으로 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동남아시아 아열대 기후 지역에서는 1년에 2~3차례나 수확하는 쌀을 한 번밖에 수확하지 못했으니,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p110~111)
* 왕조나 영웅으로 대변되는 역사는 넘친다. 이 책은 근대를 살았던 이름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