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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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견 출판사는 그 어떤 모험도 실수도 허락하지 않았다. 원로 문인들이 쓴 장편소설을 중쇄하며 현상 유지에 만족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내삶도 굳어갔다. 매달 말이면 한 달을 일한 대가로 월급이 들어왔고, 저녁 6시 30분이면 퇴근해서 이런저런 강의도 들었다. 또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에도 올랐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출근길에 마시는 아메리카노 같은 거였다. 잠시는 잊을 수 있고 벗어날 수 있지만 그저 그때뿐인 것들,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앞으로의 내 삶이 두려웠다.

한 달 뒤 나는 회사를 나왔다. 한 번도 멈춘 적 없이 달려온 삶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휴학 한 번 하지 않았고, 졸업과 종시에 대학원에 입학했고, 또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정해진 모범 노선에서 단 한 번 이탈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그런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크고 높은 산에 가고 싶다는, 언제나 내 마음 가득 차올라 있던 그 소리를. 나는 생각했다. 산은 눈으로, 추억으로, 상상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심장으로, 가슴으로, 두 다리로 올라야 한다고.

이튿날,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일주일 뒤에 떠나는 일정이었다. 준비도 계획도 오래전부터 되어 있었다. 공과금이 다달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카드에 여윳돈을 채워뒀다. 집주인에게 사정을 전해 두 달 치 월세를 미리 입금했다. 그동안 돌보지 못한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했다. 마음을 다잡으며 매일 일기를 썼다. 미용실에 들러 그동안 기른 머리로 짧게 잘랐다. 그리고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에게 나의 근황을 알렸다. '네팔에 간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 얼마나 두근대던지. 얼마나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p.32~34)

* 『아무튼, 택시』를 읽고 난 뒤의 아무튼이라 그런지 등산을 하는 심정으로 우직하게 쓴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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