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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 작지만 강한 출판사 미시마샤의 5년간의 성장기
미시마 쿠니히로 지음, 윤희연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8월
평점 :
이 책의 주 무대인 ‘미시마샤’라는 출판사의 이름은 사장인 미시마 구니히로의 성을 딴 것이다. 그는 두 군데의 출판사에서 약 7년간 근무한 후 2006년,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출판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렇게 난데없이 1인출판을 시작한 이후 약 4년에 걸쳐 좌충우돌한 출판활동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혼자서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뜻 그러하듯이 이 책의 큰 줄기 자체는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할 것 같다. 자본금은 저축을 헐어 마련한 수천만 원 정도이고 일단 ‘장사’를 시작하고 나면 대체로 반년 안에 그 자본금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혼자서는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직원을 뽑아야 하는데 내 마음 같은 사람을 고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리고 매일매일을 버티는 심정으로 보내다 보면 어느덧 장기 계획이니 비전 같은 말은 저만치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 ‘계획과 무계획 사이’에서 용하게도 버텨내며 사장 포함 전 직원 7명에 교토 사무실도 내고 편집 프로덕션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편집 프로덕션 이야기는 책에 없지만 홈페이지에는 프로덕션에 대해서 나와 있다).
이 과정은 눈물 날 만큼 웃기게 묘사되어 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부분을 보자.
법인등기를 마쳤다.
사무실도 차렸다.
첫번째 책도 나왔다.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다.
……고 밖에서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기, 갑자기 큰 벽에 직면한 것이다.
돈이 없……다.
참나, 내가 초등학생이었어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는데.
(망상 속의 젊고 예쁜 여선생님) “여기 3백만 엔이 있어요. 회사를 세울 때 백만 엔을 썼어요. 그러면 남은 돈은 2백만 엔이 되겠지요. 그 돈으로 책을 한 권 냈어요. 인쇄비, 인세, 디자이너에게 줄 돈 등 한 권에 드는 돈이 2백만 엔이에요. 그런데 책을 내고 난 이후 판매 대금이 들어올 때까지는 7개월이 걸려요. 그동안 잔금을 전부 지불했다고 해봐요. 그럼 남은 돈은 얼마일까요? 정답이 뭔지 알 수 있을까?”
(초등학교 3학년인 나) “네!”
“아, 미시마, 정답이 뭔지 알았어요?”
“네, 0엔입니다.”
“훌륭해요, 잘 맞혔네요. 그러면 이 회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망하게 됩니다.”
“정답이에요!”
분명 초등학생이더라도 쉽게 ‘정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나는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한심하게도……
적어도 이 일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 앞으로 살려나가야 할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생각해봤다.
그 결과 이 사실에서 두 가지 명제를 이끌어냈다.
1. 사람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만한 계산도 때로 실수하는 존재이다(인류적 문제).
2. 나는 이른바 ‘앞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되는 대로 해나가는’ 존재이다(개인적 문제).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이 다음부터 회상을 해가면서 그 답을 찾아가려 한다(어느 쪽이 옳든 세상사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 같지만). (pp. 48~49)
조금 과장하자면 이런 식으로 서술되는 에피소드 덕에 10분마다 한번씩 빵빵 터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업계획서도 없고 결산서도 쓸 줄 모르고 엑셀도 못 다루는 사장에, 침울한 얼굴의 영업부 직원에, 인터넷 중독 편집자, 날마다 밖에서 사건사고와 마주치고 오는 마케팅 직원, 겨울에는 바람이 숭숭 새어들어오는 오래된 단독주택 사옥에서의 근무 풍경까지 읽고 있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는 대목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에피소드들은 오래되고 큰 회사 위주로 빈틈없이 짜인 일본 출판계에서 작디작은 회사가 ‘원하는 출판’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시도들과 긴밀히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저자의 출판에 대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서술한 대목들은 매우 진지하다. 저자가 처음 출판사를 만들고자 했을 때 생각한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출판사’
‘원점회귀의 출판사’
‘편집과 영업은 둘이면서도 하나. 양쪽 바퀴가 기능적으로 연동해야 한다. 스피드를 내려고 하든, 좁은 데서 재빨리 방향을 바꾸려고 하든 간에’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작은 회사에서 하나하나 실현해가느냐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전통적으로 ‘원고를 기획하고 그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내는’ 출판 이야기와는 좀 거리가 있으며 필자들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대신 ‘회사로서의 출판사’에 대한 경영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자와 직접 연결된다’는 부분은 홈페이지, 블로그, 무가지 등을 통한 마케팅 측면과도 관계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독자를 타깃별로 너무 세분화하여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측면을 경계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작은 출판사로서 서점 영업은 도매상을 통하지 않고 직접 거래를 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현재로서는 반품률이 너무 높기 때문에(40퍼센트 이상) 회사로서는 신간을 많이 낼 수밖에 없고 신간을 많이 낼수록 반품되는 책도 많아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반품을 없애고자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책을 내보내는 직거래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영업을 다른 회사에 위탁했지만 편집과 영업은 둘이되 하나로서 기능적으로 연동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직원을 뽑고 직접 영업을 개시한다.
사람을 뽑을 때도 스펙을 보지 않는다. 저자와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만을 보거나 서점 직원으로서 POP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해서 저자가 먼저 일하자고 한 경우도 있다. 글솜씨는 뛰어나지만 인터넷 중독자인 편집자도 있고 덜렁이라서 과연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직원을 뽑기도 한다. 이렇게 직원을 채용하거나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좋게 말하면 개성적이고 안 좋게 말하자면 스펙상으로 결코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일해나가는 모습이 어쩌면 일본의 젊은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지 않았나 싶다.
한 권 한 권의 책에 ‘혼’을 담아 만든다는 의미에서도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한 권의 책이 성공했을 때의 기쁨이나 실패했을 때의 아픔이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온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한 권이 팔리지 않으면 그 다음 책을 내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규모는 되도록 작게 유지한다는 것이 저자의 방침이다.
이 책에는 ‘원점회귀’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고 아예 한 장을 할애해서 따로 이것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도 말하듯이 이는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부분이고 그만큼 추상적인 면이 있어서 선뜻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주 넓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 전체가 ‘원점회귀로서의 출판’에 대한 해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2쪽에 따르면 이 ‘원점회귀’란 ‘한 권의 책의 힘을 믿는 것, 그 한 권의 책에 저자와 편집자가 최대한 ‘열량’을 담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원점회귀’를 어떻게 기존 출판 시스템의 악습을 벗어나면서 ‘미래의 출판’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구현할 것인가가 저자의 주요한 고민이며 이 책은 그 고민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중간결산’ 형식으로 내놓은 것이기도 하다.
갑갑한 출판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어가며 세계와의 연결을 회복한 기분이 든다는 저자의 말은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말로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 책은 저자의 노력을 충분히 담고 있다. 출판에 뜻이 있는 편집자 지망생이나 혹은 자신의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분명 요절복통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책이 출판계 밖 사람들에게까지 어느 정도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지는 조금 의구심이 생긴다. 출판사에 관한 책이므로 출판과 출판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책’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물건이지만 ‘책을 만드는 산업’과 이에 관련된 출판사 경영이란 정말 특수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동네 서점은 고사하고 도매상마저 거의 사라질 지경에 처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서점 영업을 다니는 등의 이야기가 얼마나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는 한다(물론 쉽게 읽히고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웃으며 읽을 수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국내의 출판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감이 안 오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블로그 운영, 무가지 발행, (인터넷 서점과의) 직거래 등은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진 마케팅/영업 방식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음에도 경영이 어려운 회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 책이 ‘눈앞의 이익만 좇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고 저자가 비판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독자도 많고 출판 환경이 워낙 좋은 일본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라고 이상론적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출판사이지만 나름의 새로운 성공 모델로서 참조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저자가 사람을 기용하고 같이 일해가는 방식, 자신이 속한 업계의 미래를 나름대로 새로 구축해보려는 노력 등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준비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실현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획과 무계획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저자의 말과 경험은 분명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 쪽수는 양장본 원서 쪽수. 번역문, 표기법, 용어 등은 번역서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