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읽는 질문 8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지비원 옮김 / 글담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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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변화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온갖 전문적인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세상이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그 무엇도 삶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인 규범이나 의지가 될 수 없어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인문학자란 이러한 변화와 불안을 누구보다 앞서 감지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닐까? 지은이는 우선 그들이 내놓는 대답은 낯설고 난해해 보일지라도 질문 자체는 우리가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짚어줌으로써 현대사상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줄여준다.

 

그런 다음 질문의 형식을 빌려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들이다. 집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심지어는 이런저런 필요 때문에 집 안에서도) 감시 카메라를 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뇌의 비밀을 풀면 마음의 비밀도 전부 해명될까? 우리가 의심의 여지없이 믿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우리를 정말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체제일까?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모호해지는 창작과 표절의 경계는 어떻게 봐야 하나? 환경 보호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말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복제 인간이 나타나고 사이보그가 발달하면 과연 '인간'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결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누구나 한 번쯤은 호기심에서라도 던져봤을 법하다. 지은이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문장과 예시를 제시하면서도 단숨에 현대사상에서 핵심적인 사상가들의 논의로 건너간다. 각 장들을 읽다 보면 현대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중요하게 언급되는 사상가들의 논의를 간략하게나마 파악하게 되면서 우리 삶이 현재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물론 지은이는 논의를 정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현대 사상가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데리다나 랑시에르, 네그리와 하트의 저작은 한국에서도 많이 번역되고 읽혔지만 그들이 염원하는 '민주주의'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사실이 이렇게 간명하게 지적된 적은 거의 없었다. 지은이의 이러한 지적은 위대한 사상가들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며, 그들의 한계를 파악함으로써 아직 아무도 길을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우리가 대면해야만 하는 과제를 눈앞에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철학적 논제들이 유난히 자주 부딪히는 것도 이 책의 큰 특징이다. 지은이는 '현대는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시대'임을 다른 저서들에서도 주장해왔고, 이 변화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과학 분야이므로 과학의 발달과 그에 따른 세상의 변화를 고민하는 데 좀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다 다루지는 않았지만 법과 제도가 기술의 발달을 미처 따라잡지 못해 생겨나게 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 책을 덮은 다음 우리가 시작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사상 입문용으로 쓴 한 권의 저서 안에서 이들을 전부 언급하고 있는 지은이의 독서 목록에 주목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이 책은 각 저작들을 독립적으로 읽고 해석하기보다 이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고전'들을 어떤 식으로 묶어 읽어야 하는지에 관해 하나의 전범을 보여주는 듯하다. 감히 말하자면 그런 '정리 및 분류'는 이제 일반인이 하기는 힘들어지고 있고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길잡이가 되어주어야만 한다. 오카모토 유이치로는 기꺼이 그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현대 사상에 관심이 있지만 가장 먼저 어떤 책을 손에 들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한번쯤 이 길잡이를 따라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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