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속화 속의 고독의 날들 속에서 내가 자주 힘겹게 떠올린 건 도시로 나오던 그날 밤. 외사촌이 보여준 사진집 속의, 아득한 밤하늘 아래,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답게 잠든 새들이었다. 나, 그들을 내 눈으로 보러 갈 날이 있을 것임을 힘겹게 나에게 기약하며 그 풍속화 속에서의 나날들을 살아내곤 했다. 훗날, 살아가는 피로와 관계의 부재 속에 처절하게 외로워졌을 때도, 그날 밤 외사촌이 들고 있던 화보 속의 새들, 백로들. 숲속에, 밤이 온 숲속에,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용서한 듯, 서로 올망졸망 기대어 숲을 아름다이 잠으로 뒤덮고 있던 백로들의 무리를 내 눈으로 보러 가겠다는 마음 버리지 않았다. 나, 언젠가, 기차의 창틀에 팔을 흔들리며. 눈앞을 가로막는 능선을 넘어서 가리라고, 절망과 고독의 날일수록 남몰래 나에게 기약하였다.
그 기약으로부터 십육 년.
나는 아직 새를 보러 떠나지 못했다. 잊은 건 아니다. 잊기는...... 오히려 연년세세 내 마음속의 하얀 백로들 더욱 눈부시게 도드라지며 내 기약을 아로새기는 날들이 많아졌다. 피로한 발바닥을 주무르다가도,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숲속, 별을 향하고 잠들고 있을 나무 위의 백로의 무리를 생각하면, 내 피로가 가져다주는 고단함은 물론이고 간혹 찾아드는 기쁨들하고조차 웬일인지 덤덤해질 수 있었다. 쓰라리게 느껴지던 불행도, 여러 날 계속 내리는 찬비 같은 고독도, 왠지 쓰잘데없이 느껴져서 그 힘으로 다시 다음날을 맞이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2)
예전에 <사진화보>라는 잡지에서 <히라의 철쭉>이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득히 눈 아래로 거울 같은 호면(湖面)의 일부가 바라보이는 히라산 줄기 꼭대기의, 저 향기 높고 하얀 고산식물 군락이 그 가파른 사면을 아름답게 뒤덮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언젠가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슬픔을 배낭 가득히 짊어지고, 눈앞에 막아 선 히라 능선을 쳐다보면서, 호반의 조그마한 협궤열차에 흔들리며, 이 아름다운 산정의 일각에 닿을 날이 있을 것임을, 남몰래 굳게 다짐했었다. 절망과 고독의 날, 기필코 난 이 산에 오르리라고ㅡ.
그로부터 아마 십 년이 지났을 것이지만, 나는 아직껏 히라의 철쭉을 알지 못한다. 잊어버린 건 아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 높은 봉우리의 하얀 꽃을 눈앞에 그리는 기회는 나에게 늘어났다. 다만 저 히라 봉우리 꼭대기 향기 높은 꽃 군락 아래, 별을 향해 든 나 자신의 잠을 생각하면, 그때의 내 모습이 갖는, 행·불행 그런 것과 무관한 외줄기 슬픔과 같은 것에 접하게 되면, 웬일인지, 하계(下界)의 그 어떠한 절망도, 그 어떠한 고독도, 한결같이 외잡(外雜)하고 쓰잘데없는 것만 같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었다.
(1)은 지금 새삼스럽게 표절 문제로 화제가 되고 있는 신경숙(이하 존칭 생략)의 대표작 <외딴방>의 1장 가운데 한 부분이고 (2)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1907~1991)의 시집 <북국(北國)>(1958)에 실린 <히라의 철쭉>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1)은 1999년 개정판 17쇄(2005년 발행)로 만든 전자책에서 가져왔으며, (2)는 1997년 창작과비평사 발행, 유정이 편역한 <일본현대 대표시선>에서 가져왔다. (1)이 1995년의 초판본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개정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혹시 초판본을 갖고 계신 분이 계시면 비교해주시면 감사할 듯하다).
이 두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같은 단어가 많이 나온다. 그중 '해가 거듭될수록'이라고 유정이 옮긴 부분은 일어 원문에는 '연년세세'라고 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뿐만 아니라 (1)의 '나'가 백로 사진((2)에서는 철쭉 사진)을 보았다는 것, 열차를 타고 그들을 보러 가리라는 마음을 다진 것, 잊지는 않았지만 아직 보러 가지는 못했다는 것, 그렇지만 그들을 보러 가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잠들고 있을 백로((2)에서는 '나의 잠')를 생각하면 '불행'과 '고독'((2)에서는 '절망'과 '고독')이 쓰잘데없이 느껴진다는 구성이 똑같다. 시 전문을 가져와서 철쭉을 백로로 바꾸고 그 외 문장들도 자기 식(?)으로 바꾼 혐의가 짙은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단, 의문이 느껴지는 건 <외딴방>은 1994년에 연재가 시작되었고 <일본현대 대표시선>이 나온 것은 1997년이라는 점이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은 아주 오래전부터 국내에 번역본이 나와 있었고 그 후로도 거듭 출판되었기 때문에 나름 이름이 알려진 일본 작가였음은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시, 특히 이 <히라의 철쭉>이 이전에 또 번역된 적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연세대와 고려대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이노우에 야스시로 검색하였을 때 번역된 시집은 분명 나온 바가 없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시선집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또 신경숙 본인이 일본어를 잘 알 가능성도 있고, <일본현대 대표시선>이 나오기 전 원고를 보았을 수도 있다. 반드시 당사자만이 보고 원고 내용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출간 전의 원고를 검토하거나 보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닐 테니까. 어쨌거나 지금은 (1)이 참고했을 것이라 생각되는 번역문을 찾지는 못한 상태다. 이 역시 혹시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가르쳐주시면 좋겠다.
표절에 대한 내 생각은 사회의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거다. 표절의 법적 정의와 그에 대한 처벌은 어떠한지도 잘 모르고 사회적 단죄도 어느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명확한 생각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작가든 누구든 글이든 뭐든 남의 것을 무단으로 가져와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딱 거기까지이다.
(1)과 (2)의 유사성을 알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일본현대 대표시선>이 나온 지 1년 정도 뒤였으려나. 이 시선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시인이 이노우에 야스시가 아니었더라면, 우연히 도서관에서 <외딴방> 1권을 다시 넘겨보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의 실망스러움을 친구 몇 사람에게만 지나가듯 이야기했고 더 이상 신경숙의 책을 사서 보지 않았다는 정도가 그저 독자로서 내가 한 일이었다.
이응준 작가의 문제 제기를 읽고, 또 <외딴방>의 표절 여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기에 뒤늦은 줄 알면서도 굳이 포스팅을 해본다. (신경숙, 미시마 유키오 표절 논란 휩싸여…자전소설 '외딴방'은? CBC미디어 http://www.cbci.co.kr/sub_read.html?uid=240550) 오랫동안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응준 작가가 문제 제기를 하니까 기어나오느냐는 비판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또 달게 받겠다. 솔직히 나는 누군가의 작품이 실망스럽다면 그걸 구구절절 떠들기보다 더 이상 내가 안 보면 되고 언급도 하지 않고 사지도 않는다는 쪽이지만 이런 방침이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비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독자로서 '비판의 의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기보다 자신이 먼저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순서일 테니까(네가 뭔데 그런 의무를 지느냐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겠지만). 풍파를 더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많긴 했지만 일단은 올리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많은 이들의 반박과 비판을 바란다(인신공격은 마시고...ㅜㅜ).
아, 이 포스트의 제목인 '히라의 철쭉에서 백로의 숲까지'는 초판에 실린 남진우의 해설 제목 <우물의 어둠에서 백로의 숲까지>에서 빌려온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