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zooey > <자명한 산책> 중에서

'솔직'이란 옷을 입고 저의 삿됨과 속됨과 추함과 비천함을 발산할 것인가, 아니면 제 한 몸 '솔직하기'를 희생해서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의로움과 비범함에 봉사할 것인가. 라로슈푸코는 후자에 높은 점수를 준다. 나도 내 시가 최소한 세상에 악취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 소극적 바람이다. 적극적 바람은 즐겁게 시를 쓰는 것이다. "난 즐거움으로 달려요. 난 일로 달리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달음박질꾼처럼 즐거움으로 시를 쓰고 싶다. 매혹적인 시의 길이 영원까지 뻗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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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1-0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내가 사는 게 점점 후자에서 전자로 옮겨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온갖 속된 욕망을 발산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 그래서 세상 모든 속됨과 추함과 비천함을 관용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나이먹는 과정이 되어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