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에 돌아와 TV를 보다 우연히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를 보았다.

경제 프로그램이었는데, 대형유통기업 이마트가 직원들의 노조설립을 조직적으로 반대한다는 내용의 뉴스가 흘러 나왔다. 직원들은 추운 날씨에 밖에서 시위를 하고 회사가 보낸 건장한 청년들은 이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면서 충돌이 벌어진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 바로 그 친구는 마이크를 잡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회사의 이와 같은 처사에 항의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아래엔 이름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자막.

10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 그녀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15년 전 한번 같은 반이 되었을 뿐이고 이후 거의 만난 적도 없지만, 신기하게도 그녀의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단발머리에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 이목구비 하나하나까지도 15년전 그녀와 달라진 게 없었다.

당시에도 그 친구는 우리 반 반장으로 키도 크고, 공부도 잘 하고, 생각하는 것도 어른스러웠다. 달리기도 잘하고 응원도 잘해서 운동회만 하면 스타가 되었고,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한번의 외침으로 떠드는 반 아이들을 조용히 시킬 수 있었다. 물론 놀고 수다 떨 때는 유치한 것에도 까르르 넘어가는 영락없는 여중생이었지만.

어쨌든 그랬던 그녀를 갑자기 TV 뉴스에서 보니 반갑기도 하고..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선 묘한 기분이 든다.

그녀는 분명 멋진 여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방송국 카메라가 와 있는 상황에서도 당당히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었을테지. 그것도 자신의 생존권을 쥔 거대 기업에 맞서서 말이다.

오늘은 TV 뉴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에 미약한 전류만큼의 자극을 받은 날이다. 또한 곤색 학교 츄리닝에 덧신을 신고, 어딜 가든 뛰어 다녔던 15년 전 그때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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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12-29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코너에는 한 달 만에 글을 올리시는거군요. ^^ TV를 통해 15년만에 본 것인데도 친구를 알아본다니... 사람은 그리 쉽사리 잊혀지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 TV출연 같은 거 하지 말아야지. 나 좋다던 남자들이 알아보고 찾아 올라...^^;)

sooninara 2004-12-2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정규직 문제는 얽힌 실타래처럼 풀기가 어렵네요..ㅠ.ㅠ

그 친구분이 15년 동안 안바뀐건지..서니님 눈썰미가 좋은건지..

서니님..요즘 뭐하세요? (생뚱맞긴..ㅋㅋ)

sunnyside 2004-12-3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이 정말 잊혀지지 않나봐요. 잘 살아야죠. 언제 어디서 날 아는 사람이 나에 관해 글을 쓰고 있을지 모릅니다. ^^;

수니나라님, 이상하게도 저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한답니다. 이름은 기억을 잘 못하지만. ^^; 그래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가 또 다른 영화에 나왔을 때도 용케 알아보죠. 얼굴을 분간하는 눈썰미는 좀 있나봐요. (으쓱 ^^) 저, 잘 지내요. 글 한번 올릴께요. 새 일터에 나간지 한달이 되었는데 아직 보고를 못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