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나라야말로 체계적인 과학적 사고, 양질의 과학 교육과는 거리가 먼 나라이다. 학창 시절 과학시간에 배우는 것이라고 해봐야 교과서에 나온 것들이 전부이고 그나마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만 찍어서 마치 암기 과목처럼 공부한다. 문과에 들어간 경우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지긋지긋한 과학이란 것과 아예 담을 쌓고 그 후 평생을 살아간다.

서점에 나가보면 읽을만한 과학 교양 서적보다는 UFO니 외계인이니, 심령술이니 하는 비과학적인 것들이 마치 과학의 행세를 하고 있다. TV는 어떠한가? 입증되지 않은 것들을 마치 사실인양 몰아간다. 요즘 많이 나오는 전생탐험이니, 귀신체험이니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어떻게 저리 터무니없는 것들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꾸며댈 수 있는가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TV에서 만드는 오락용 프로그램 중에서 비과학에 대해 회의적인 견지를 포함한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이자, 영화 <콘택트>의 원작자 칼 세이건이 이러한 대중의 무지와 대중매체의 선동을 질타하고 나섰다. 이 책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에서 얘기하는 악령이란 존재가 바로 '사이비 과학'이고, '무지'이며 '미신'이다.

특히나 미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TV 외화 'X-파일'의 소재로 종종 채택되곤 하는 '외계인 납치-해부' 사건이 칼 세이건이 주로 비판하는 사이비과학의 대표이다. (사실 외계인의 납치와 해부가 미국에서 주로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가짜일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왜 외계인들은 유독 미국인들만을 납치하여 실험하는가? 외계인 납치 - 해부가 다분히 문화적 사건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세계는 점차 복잡해지고 과학 기술은 발전해 가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귀찮아 한다. 외계인이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하면, 그렇다면 외계인이 없다는 증거를 대보라고 한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지 말라는 것이 외계인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칼 세이건은 이것에 대해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가 되진 못한다'고 반론을 편다.

칼 세이건이야 말로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있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콘택트>의 주제의식도 그렇고 실제로 그는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이던가..) 프로젝트의 강력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있다는 것이 증명되기 전까지 그것을 믿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과학이 스스로 만들어온 룰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일맥상통하기 때문. 과학은 '오류'를 인정한다. 하지만 '사이비 과학'은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이비 과학이 스스로 옳다는 것을 주장할 때, 나머지 사실들은 자동적으로 그른 것이 된다.

진짜 과학은 열려 있다. 아무리 저명한 과학자가 증명한 이론이라 할 지라도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반박될 수 있다. 여기에서 권위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이제 갓 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과학자도 철옹성 같은 이론을 무너뜨릴 수 있다. 과학의 근본은 자유로운 의견의 교환이고 민주주의로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킬수록 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상당한 두께에다 내용도 그리 수월하진 않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가 복잡하고 어지러워질수록 미몽의 함정은 이곳저곳에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의 무지를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 - 예를 들어 암을 치료해주겠다며 동물의 살덩이를 암세포라고 빼내는 쇼를 하는 종교인 - 이 있고, 입만 열면 엉터리 담론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온전히 내 것이 되는 흥미로운 지식과 함께,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밝게 해줄 진지한 성찰까지. 칼 세이건이 마지막으로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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