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는 모처럼 약속 없는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이 책을 읽었죠. 오늘 뒷부분을 마저 읽어야 하지만요.

읽으면서 한숨이 나더군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그야말로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 피해야 할 오류와 함정이 얼마나 많은지… (이 책은 일본의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가 썼는데요.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 위안부 문제에 얽힌 민족주의 문제를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본 저술이랍니다.)

명칭부터 보세요. ‘위안부’라뇨, 누가 누구에게 ‘위안’을 준단 말입니까?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와 점령지의 여성들이 ‘위안’이라는 고상하기 짝이 없는 목적을 위해 전쟁터 이곳 저곳을 끌려다니며 성을 착취당했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봉사 활동이었습니까? 강간이고 폭력이었지… (그래서 시종일관 저자는 ‘위안부’라는 말에 따옴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소위 위안부라 불렸다는 뜻이겠죠)

그렇다면 ‘정신대’란 말도 함부로 쓸 게 못되겠죠. 황국 병사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식민지 여성들이 봉사한 게 되니까요. 돈 있는 사람 돈으로, 힘 있는 사람 힘으로, 그리고 몸뚱아리 밖에 없는 여성들은 그 물화된 육체를 ‘신성한’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바쳤단 그 말이 되겠죠.

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은 가해자, 한국은 피해자라는 구도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맞겠군요. -_-; ) 그래서 이 책을 던져주는 문제의식에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죠.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야 할 대상은 단지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문제가 양국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나, 민족주의의 대결 양상으로 가선 안 된다는 것이죠.

문제의 핵심은 엄연히 ‘성 착취(혹은 성 노예 …)’이며, 이는 페미니즘에 입각한 보편적 인권의 잣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한국의 가부장들이, ‘우리 처녀들의 정조를 빼앗아간 일본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는 식으로 나온다면, 위안부 문제는 순간 한일 양국 가부장들의 재산권 싸움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에노는 이 책에서 ‘정조’란 순전히 남성들의 재산권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싸워야 할 대상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의 가부장제이기도 한 것이죠. 그리고 이를 위해 연대해야 할 대상은 오늘도 곳곳에서 성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세계의 여성들일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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