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지난주에 봤던 영화 카게무샤다.

너무나도 유명한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이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 내돈주고 산 몇 안되는 DVD 중 하나이다.

혼란스런 중세 일본을 통일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영주 신겐은 타고난 용맹과 카리스마로 적들의 외경과 아랫 사람들의 충성을 한몸에 받는다.

이러한 영주에게는 카게무샤라 불리우는 그림자 무사가 있는데, 이들은 영주와 닮은 꼴을 하고는 영주가 없는 곳에서 영주 행세를 한다. 적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함이다.

천한 도둑에 불과했던 한 사나이가 신겐과 닮았다는 이유로 카게무샤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신겐이 죽고, 호시탐탐 빠져나갈 궁리만 하던 도둑은 3년 동안 신겐 대신 영주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 받는다. 한 밑천과 3년 후의 자유를 약속받는 대가로.

그리고는 3년 동안 신겐의 말투, 신겐의 생각, 신겐의 용병술까지 배워나가면서 도둑은 점점 신겐과 비슷해진다. 전투 현장에서는 날아드는 화살 속에서도 '산(山)'이라 불리웠던 신겐을 생각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무사히 3년이 지나고, 도둑은 처음처럼 볼품없는 행색으로 영주의 궁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사이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신겐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한때 도둑이었던 그 사나이는 자신의 군사들이 처절하게 패배를 맞는 전투 속으로 뛰어 들어가 죽음을 맞는다. 피로 물든 강에는 신겐의 교시가 씌여진 깃발과 함께 그의 주검이 둥실 떠 내려가고 있다.


▶ 첫장면. 세 닮은 꼴의 대화. 영화의 기본 줄거리를 알지 못하면, 뭐하자는 얘긴지 이해하기 힘들다.

 

 

 

 

 

 


▶ 카게무샤의 악몽. 긴장과 초조... 늘 신겐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표현한 듯.

 

 

 

 

 

 


▶ 무모한 신겐의 아들은 영주가 되자마자 대군을 이끌고 이웃 영토로 쳐들어간다. 신겐의 영혼이 무지개가 되어 이들에게 경고를 내리고 있건만...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상적 영웅에 대한 묘사는 일본의 작품들을 따라가기 힘들 듯. 거친 듯 강렬한 색감도 인상에 남는데..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피가... 피가... ^^; 아무래도 옛날이다보니 요즘 피처럼 실감이 나지 않아 피칠갑 하는 많은 장면들에서 약간 깬다는 것, 정도이다.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워낙 거창한 영화이니만큼 생각은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카게무샤는 왜 적들의 십자포화 속으로 달려 갔을까?

사실 그는 누가 천하를 통일하든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신겐이든 이에야스든 노부다가든 어느 누구도 그 한 입 풀칠하고 사는 데 보태준 이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계속 그렇게 빌어먹고 훔쳐먹고 살다가 한 생애를 마감했을테고, 세상의 주인이 누군지는 영영 몰랐을 터이다.

그러던 그가 신겐의 카게무샤였다는 이유 하나로, 신겐의 손주를 자신의 손주처럼 신겐의 부하를 자신의 부하처럼 여기다 끝내는 장렬하게 최후를 맞게 된다. 그러한 과정이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과도한 정체성이 빚어낸 비극이다. 

카게무샤는 날아오는 화살 사이를 달릴 이유가 없었다. 이후에 신겐 부하들의 몰살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팠을 순 있지만, 거기까지면 카게무샤로서의 임무는 완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신겐의 큰 그림자가 그에게는 버거웠던 것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고서는 신겐 행세조차 할수 없었던  거다.

결국 영화는 죽어서도 3년 동안 적들을 속이고, 부하를 속였던 아주 아주 커다란 영웅의 이야기다. 한 도둑이 그 영웅의 그림자 무사가 되었지만, 영웅의 그림자에 압도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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