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내가 '환장'하며 보는 자연 다큐멘터리, 그 중에서도 특히 생태 다큐멘터리를 이번 설에도 TV에서 볼 수 있었다. KBS 1 에서 오전 11시경에 방영한 '신년특집, 지구환경대기행 삼부작'이 그것이다.
첫날 부침개를 만드느라 러시아 캄차카 편을 놓치고, 둘째날 순다 편과 셋째날 아오테아로아 편을 보았는데.. (설겆이를 제쳐두고!) 역시나 보는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순다 열도와 뉴질랜드(뉴질랜드를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의미의 마오리어인 '아오테아로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희귀 생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나라는 비슷했지만,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었다.
순다 열도는 적도 생물의 마지막 낙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전세계 생물종 17%가 서식하는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바닷속엔 온갖 기묘한 물고기와 조개, 산호초들이, 뭍에는 원숭이, 오랑우탄, 악어, 코모도 등 수많은 생물종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한편 뉴질랜드는 과거 대륙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부터 약 800년 전까지 포유류가 없었다. 대륙에서 그 거리가 상당하였던 관계로 과거의 뉴질랜드엔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조류들만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조류들은 자신들이 당도한 섬에 천적이 없었기에 날아서 도망갈 필요가 없었고, 먹이는 풀이나 벌레면 그만이었으므로 먹이감을 구해 멀이 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새들은 점점 몸집이 커졌으며 다리는 굵고 튼튼해졌다. 또한 날개는 퇴화되어 비행이라는 본래의 목적에는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심지어 키가 3m, 몸무게 200kg에 이르는 거대한 새(역시 날 수 없는)가 불과 몇 백년 전까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오테아로아'는 날 수 없는 새들의 천국이 된 것이다.
결국 두 곳의 환경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극과 극이었던 셈이다. 순다 열도 생물들의 다양함과 기기묘묘함은 치열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산호초와 똑같은 생김으로 자신의 몸을 변형시킨 물고기, 주위 환경에 따라 몸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오징어, 높다란 나무 위에서 재주 넘는 긴코 원숭이들은 포식자가 득실한 환경 속에서 종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왔고,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반면 뉴질랜드의 날지 않는 새들은 천하태평 걱정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풀이 돋아 있고, 사랑하는 달링과 귀여운 자식들은 둥지에서 아비를 기다린다. 그래서 삼년에 한 번, 단 하나의 알을 낳는 새들도 종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인간과 함께 들어온 담비, 족제비 같은 포유류 때문에 이러한 새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당연히도 난 순다 열도의 화려함보다도 뉴질랜드의 순박한 새들에게 더 정이 갔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외양을 바꾸고 재주를 키워온 순다의 동물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마치 중국 서커스단의 소녀가 도저히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을 것 같은 자세로 묘기를 부릴 때 신기하기보다는 '얼마나 고되게 훈련을 했으면.. 얼마나 혼나면서 배웠으면 저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걸까?..'생각하며 안쓰러웠던 기억과 비슷하다.
뭐, 우리 사는 것도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으리라. 살아 남아라, 이겨라,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워라,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를 생존경쟁에 몰아넣는 외침들에 우리는 점점 제 몸 색깔을 바꾸는 물고기처럼 그렇게 본래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휴... 그래서 난 자연 다큐멘터리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면서도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