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태평양 한 가운데 구명보트 하나, 벵갈 호랑이와 한 소년. 호랑이와 함께 227일을 표류한 한 소년의 이야기.

이 책에 대한 정보는 이것이 전부였다. 무인도에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남은 이야기가 주는 흥미진진함을 기대하며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루한 일상에서 숨막히는 모험담이 주는 즐거움은 얼마나 큰지, 책표지를 넘길 때부터 나는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이 소설은 좀처럼 태평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소년의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부터 동물원에 대한 사색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힌두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에 대한 소년의 믿음사에 펼쳐진다. 그런데, 이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파이와 벵갈 호랑이의 숨막히는 동행보다, 인도의 한 외진 동물원에서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어린 소년이 깨달아가는 생태계의 법칙과 동물들의 삶의 원리, 그리고 종교의 한 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파이는 우리가 관습과 형식으로 이해하는 종교를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에게는 누군가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부들의 모습이 감동적이고, 빵을 굽다가도 정해진 기도시간이면 정결하게 기도를 하는 이슬람교도가 아름답다. 그래서 세례를 받고, 정해진 시간에 이슬람식 기도를 하는 이 힌두교도 파이의 마음에서 서로 다른 종교는 갈등하지 않는다.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이 자신의 세계를 갑갑해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저마다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하며 여유롭게 움직이는 그 동물들처럼 말이다.

거의 소설의 절반을 차지하는 파이의 성장사를 읽고난 후에 읽은 벵갈 호랑이와 파이의 동행은 하나도 기이하지 않다. 그건 일본 선박회사 사람들의 생각처럼 소년이 그저 꾸며낸 이야기도 아니고, 환타지도 아니다. 동화처럼 기이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인. 파이의 고백처럼 그 호랑이가 없었다면 그는 227일이라는 그 기나긴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파이에게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삶을 지속하게 한 동반자였고, 절절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 녀석때문에 파이는 손에 피를 묻히고, 냉혹한 생존의 법칙을 터득했다. 그 녀석때문에 파이는 공포를 이기는 법을 배웠고, 자기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렇게 파이를 살게 하고, 파이를 성장하게 만든 후, 땅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 그 호랑이.

인간의 삶이 동물의 삶과 아주 많이 달라졌어도, 지구가 삶의 터전인 인간과 동물은 여전히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도쿄를 거꾸로 뒤집으면 호랑이, 뱀, 코끼리부터 온갖 곤충들까지 상상도 못할 동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이 거대하고 갑갑한 서울 역시 수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처럼, 동물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인간의 법칙으로만 살아가고 있기때문이다. 수많은 교회가 십자가를 반짝거리고 있어도, 예수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수많은 동물들이 둥지를 틀고 살아도, 생명 있는 것들의 은밀한 활기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파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소설일 뿐이다. 그래서 파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욱 흥미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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