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술을 마실 때면 늘 농담처럼 말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꼭 회색 눈동자에 은발 머리로 태어나야지.

그들은 화답한다. 초록색 눈동자나, 파란색 눈동자로. 그러면서 저기 북유럽 어딘가의 나라들을 읊어댄다. 나는 추워서 싫어. 나는 프랑스 남부 촌구석이나, 스페인 어디쯤이 좋을 거 같아. 따뜻한 남쪽 나라. 한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곳에서, 까만 머리 까만 눈동자가 아닌, 회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로 태어난다면, 또다시 지리멸렬할지도 모르는 한 세상, 기꺼이 살아주지....

 

 

마흔이 넘어버린 선배들과 여전히 이런 농담을 주고 받은 것은, 아직 우리가 철들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이 책, <바람의 그림자>

인간의 삶을 소설이나 책에 비유하는 것은 상투적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소설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설에 대한 몰이해와 지나친 자기 연민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인간의 삶은 하나의 텍스트이고, 하나의 텍스트는 누군가의 삶이다. 은밀한 도서관 한 구석에 숨겨진 비밀스런 책 한 권은 훌리안의 비극적인 사랑을 증명하는 텍스트이고, 그 비밀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다니엘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읽어 나간다. 헌책장에 쌓인 먼지 먹은 책 속에 먹먹한 삶의 비밀이 숨어 있듯이, 바르셀로나 어디 구석 이름 없는 누군가의 삶에는 뜨거운 욕망과 안타까운 눈물이 가득하다.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을 부르고, 한 사람의 인생이 누군가의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사슬처럼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 그래서 통속적인 결말이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매력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안개 가득한 바르셀로나. 세상의 비밀을 공유한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가는 바르셀로나의 새벽길, 너무 일찍 경험한 사랑의 좌절 때문에 얼굴이 멍이 든 채 걸어야 했던 차가운 바르셀로나의 밤길,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가 그 사랑을 방해하는 누군가를 피해 은밀하게 만나던 바르셀로나의 골목길. 안개와 비가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그 길.

 

 

 

혹은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은 70이 넘어서도 여전히 꿈을 꾼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피카소와 달리와 헤밍웨이가 사랑을 하던 그 시대에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함께 꾸게 된다. 자본의 욕망이 온 거리를 가득 메운 현재에는 불가능한 삶을 살았던 시대를 꿈꾸며, 자정 무렵 파리의 어느 밤 거리를 서성이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그 꿈에 빠져 설레일 때, 노감독은 현재를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의 의미에 대해, 이 순간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 그로 인해 달라지는 삶에 대해.

 

그러나 나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고갱의 시대에 남겠다는 에드리아나처럼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함께 한 그 시대, 그 골목에 서고 싶다. 그게 안 된다면, 비오는 파리의 밤거리라도. 그 골목을 서성인다면, 지금 내 통장에 찍히는 얼마 되지는 않는 월급과, 그 월급에서 파생하는 몇 벌의 새 옷, 혹은 날마다 늘어가는 책장의 책들 따위들은 모두 잊고, 나도 여기 남겠다고,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길이 예찬한 것처럼 비오는 파리의 밤거리는 그 자체로 다른 세상이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나에게 선사할지도 모르니까.

                    

 

장마라 했는데, 제대로 비도 오지 않는 서울은

 

참 덥구나.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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