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궁전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장석훈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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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 아래 버려진 땅이 보였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공터다. 오물과 먼지 그리고 반짝거리는 깨진 세면대 조각 사이로 기괴한 형상의 고물 악기가 외진 곳에서 혼자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악기 소리에 성이 난 듯한 황소 한 마리가 교각 아래서 씩씩대고 있었다."(68쪽)

어느 청과물 상인이 꾸었다는 이 꿈에서 쿠프릴리가의 비극은 시작된다. 교각과 악기, 그리고 황소 한 마리는 그대로 역모가 되고, 매력적인 외삼촌은 참수형을 당한다. 쿠프릴리가를 노래한 노래와 어느 청과물 상인이 꾸었다는 이 꿈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한 권력은 반역의 두려움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한다. 아름다운 음악은 선량한 백성을 선동하는 구호처럼 들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수다는 은밀한 모의처럼 여겨진다. 아이들의 놀이 역시 불온한 반역의 징조처럼 보인다. 그들은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안심을 한다. 아니 모든 것을 통제하고도 안심을 하지 못한다. 그런 그들은 남들의 꿈을 기웃거린다. 말이나 행동, 노래로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의 심연까지 철저하게 통제해, 반역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이스마엘 카다레가 1981년에 썼다는 이 소설은 알바니아의 독재정권의 핵심을 겨냥하고 있다고 한다. 암울하고 어두운 정치적 현실때문에 그는 아주 큰 용기를 갖고 이 소설을 썼다고 고백한다. 어두운 알바니아의 정세와 꼭 닮은 어둡고 축축한 거리,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건물 <꿈의 궁전>, 꿈으로 존재하는 역모로 인해 참수 당하고 마는 한 인간, 그리고 세상 모두의 꿈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그 거대한 권력.

반역의 기운이 진압되고, 쿠프릴리가와 술탄이 모종의 협약을 맺고, 주인공 마르크 알램이 <꿈의 궁전> 최고의 관리자 자리에 올라도, 책을 읽는 독자는 <꿈의 궁전>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그저 마르크 알램의 얼굴이 점점 딱딱해지고 암울해지며 생기를 잃어가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소설은 은밀한 기운과 소리 없는 수런거림으로 가득하다.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끊임없이 헤매인다. 사무실 하나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배회해야 하는 마르크 알램처럼, 독자들은 <꿈의 궁전>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파악하지 못한다. 옆자리 동료가 은밀하게 전달하는 내용으로, 역모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은밀하게 전개되는 소설의 내용은 청과물 상인이 꾸었다는 꿈처럼 막연하고 추상적이지만, 그래서 동시에 매우 명확한 상징이기도 하다. 은밀한 수런거림과 추상적인 꿈의 세계를 배회하다 문득, 자신의 딱딱하고 음울한 얼굴을 확인하게 되는 마르크 알램처럼, 독자들은 안개속에 숨어 있는 <꿈의 궁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매혹적인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단순히 전제주의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어버리기에 <꿈의 궁전>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은 너무나 은밀해서, 기계적인 독서를 막아준다. 무덤에서 나온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가 하나를 이루는 듯한 알바니아 음유시인의 노래, 무덤 속에 있는 자와 결투를 하려 하지만 그가 일어나지 않아 절망하는 노래 속의 무사만큼 이 소설은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소설의 내용보다도, 소설 속에 나오는 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마르크 알램처럼 그 꿈을 해석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 그 꿈 속에는 반역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고, 세상 어느 곳에서 존재하지 않을 새로운 예술의 세계가 살아있기도 할 것이다. 어떤 꿈 속에서는 지독한 살인이 일어나고, 어떤 꿈은 천재지변을 예측할 수도 있다. 그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해 꿈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 꿈보다 더욱 매혹적인 것이 있으니, 이미 28살에 딱딱한 얼굴이 되어버린 마르크 알램에게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게 한 그것. 그리하여 꿈을 꾸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한 순간 반짝이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나는 <꿈의 궁전>의 은밀한 붕괴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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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7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11-0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냥 계속 그렇게 이쁘고 앳되리라, 생각해 주세요. 그걸루 만족하죠, 뭐...

빨리 영화를 보고 싶은데, 며칠 동안은 안 될 거 같네요. 울 아버지, 내가 거실에서 영화보고 있으면 안 주무시고 밤 새실 겁니다. 저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어느 밤, 문득 그 영화 볼 생각에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