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무재씨,
그날 제주에는 한낮에 폭우가 쏟아졌어요. 예정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한 제주 공항, 커피숍에 자리를 잡아두고, 나는 당신과 은교씨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지요. 오전에 말짱하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어요. 커피숍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창밖을 보며 소란을 피웠지만, 내 귀에는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도, 빗소리에 발이 묶인 사람들의 소란도 들리지 않았어요. 너무 고즈넉하고, 너무 고요하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곳 전자상가 어디쯤에 있었을 수리실 한 구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 혹은 당신과 은교씨가 오래된 차를 두고 걸었던 그 섬의 어딘가를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지요. 도시로 돌아가면 나도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하고 싶다고. 무재씨와 은교씨처럼 나란히 앉아서 오늘 섬에 갑자기 내린 비가 잠시 무서웠다고, 그 비때문에 또 누군가가 사고를 당했다고, 나는 요새 차를 타는 것도, 도로 위를 걷는 것도, 비행기를 타는 것도 조금씩 두려워진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저에게 묻겠지요.

무섭나요?
네, 무서워요.
그리고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 그러면 오무사 이야기를.
오무사?
무재 씨는 오무사를 모르나요?
네.
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가량 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일 개, 사십 개를 사면 사십일 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십일 개, 백 개를 사면 백한 개, 하며 매번 살 때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구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가 갔다 하지 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무재 씨, 원 플러스 원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무재 씨도 그런 것을 사 본 적 있나요.
가끔은.
하나를 사면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준다는 그것을 사고 보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각은 어째선지 들지 않고요.
그러고 보니.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그래요, 무재씨,
도시에서 섬으로, 섬에서 다시 도시로 바삐 돌아다니다 보면, 몸도 마음도 조금은 딱딱해져요. 그리고 이 길 어딘가에서 느닷없는 사고가 일어날까, 나는 조금 무섭거든요. 오늘까지 존재했던 오래된 것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버리는 이 도시에서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위험이잖아요. 아무튼, 그런 날이요, 유난히 어깨가 딱딱한 그런 날, 나도 누군가와 무재씨와 은교씨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지요. 나의 무서움을 덜어주기 위해 슬픈 노래를 참으면서 불러주고, 그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해 따뜻하고 귀한 덤을 떠올리며 속삭여주고. 그렇게 은교씨와 무재씨의 대화를 흉내내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딱딱해진 어깨가 말랑말랑해지고, 단단해진 심장에도 피가 돌고, 그래서 온통 위험뿐인 도시라 하더라도,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나는요, 무재씨,
서른 해 가깝게 이 도시에서 살았어요. 이 시간 동안 열 다섯 번이 넘도록 이사를 다녔지요. 스무 살이 넘고부터는, 서너 해에 한 번씩, 내가 살았던 집들을 찾아보곤 했어요. 내가 계획한 것처럼 살아지지 않을 때, 누군가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 혹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을 때, 그런 날이면 고가 도로 옆 낡은 아파트부터, 개천 옆 반지하 방까지 헤매고 다녔지요. 지금의 나보다 가련한 여자 아이를 만나기도 했고, 앞으로의 시간을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총명한 아이를 만나기도 했어요.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사라져버린 집터에 새로 생긴 아파트와 높다란 빌딩만 올려다보는 시간이 많아졌지요. 낡은 아파트가 사라지고, 쥐가 마당을 누비던 단층집이 없어지고, 몸 누일 자리만 전기가 들어오던 명동의 이층집이 무너졌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다시 힘을 내 살아보고 싶은 순간에도 찾아갈 어딘가가 없어졌지요. 애써 이 도시를 견디던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되는 일도 없어졌지요. 그리고 허망해졌어요. 내 과거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테니까요. 사라져가는 것들을 아쉬워하지 않는 이 도시에서는 말이지요.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존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는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그래서요, 무재씨
나는 당신이 좋아졌어요. 당신과 함께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오무사의 할아버지와 은교씨가 일하는 수리실의 여씨 아저씨, 그리고 유곤씨까지 모두 모여서요. 유곤씨가 알아냈다는 그 복권의 법칙을 전수 받아, 나에게 얼마의 돈이 생기면 당신들에게 나누어주겠어요, 우스개소리도 하면서요. 그러면 우리는 배적삼이 젖도록 울고 있는 아낙이 슬퍼도,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와 버렸다는 사연이 슬퍼도, 따뜻하게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무재씨, 낡은 전자 상가가 사라지고 공원이 생겼다고, 도시가 훤해지고 깨끗해졌다고 좋아하던 어느 날이 생각났어요. 저 낡은 빌딩들이 도시의 경관을 해친다고, 함부로 말했던 날들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어느 날, 볼 일이 있어 찾아간 전자상가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누군가에 눈살을 찌푸리던 내가 떠올랐어요. 혹 그 누군가의 옆에 순대를 먹던 아이 하나 앉아 있어, 혹 울음을 터뜨린 건 아니었는지, 그 생각을 하니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이 뜨거워졌지요. 내가 외면한 건, 돈에 휘둘리는 자본의 욕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활과, 그의 아이와, 그를 위협하는 그림자였으니까요. 

아버지는 여기서 난로를 팔았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나 누나들하고 와 보면 멀리서부터 그가 가게 앞에 의자를 내어 두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우리가 오면 그는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잠시 뒤에 나타나선 신문지에 싼 순대를 먹으라고 내주곤 했어요. 나는 아버지 곁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길게 자른 순대를 베어 먹었고요. 손에 기름이 밴다고 순대 밑동에 신문지를 감아서 내어 주던 모습이나, 집으로 돌아갈 때 동전 몇 개를 쥐여주던 모습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한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장사를 어떻게 했을까 싶을 만큼 말도 서툴고 여러모로 서툰 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함께 순대를 먹으며 앉아 있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슬쩍 일어나서 무엇을 찾느냐고, 뭐가 필요하냐고 말을 걸곤 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이렇게 호객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당황스럽고,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지나가는 것이 싫어서 종종 울었거든요. 이유도 말하지 않고 우니까 못됐다고 혼도 많이 났지만 나는 그냥 속이 상했을 뿐이었고요. 그런 속을 모르고 혼을 내니까 더 속이 상해서 더 울고 더 혼이 나고, 하다 보면 아버지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로부터 고래를 돌리고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되고 보면 나는 더 울 수가 없어서 아버지 곁에 그냥 서 있었고요. 돌아가신 지가 오래라 그런 기억이란 희미해질 법도 한데 도무지 그렇지가 않아서, 가는 이 부근을 그런 심정과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데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 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나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무재씨,
그래도 나는, 당분간 차를 타는 것도, 도로 위를 걷는 것도 무서울 거에요. 어떤 날은 아무런 슬픔 없이 새로 생긴 공원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지요. 개발의 이익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그 개발로 인해 피해를 입지만 않는다면, 나는 아무런 낡은 전자상가의 시간과 그곳에서의 삶을 까맣게 잊어버릴 거에요. 그러다 문득 또다시 열 몇 군데의 옛집을 헤매다 사라져버린 집을 찾지 못해 허둥댈 때, 혹은 나도 모르게 일어나 버린 내 그림자를 따라 살이 내리는 것도 모르고 거리를 떠돌 때, 당신과 은교씨, 여씨 아저씨와 오무사 할아버지를 떠올릴 거에요.

그렇게 당신과, 은교씨가
내 삶을 위로하고
나를 각성시킬 테지요.

그러니 부디,
당신과 은교씨가 오래 헤매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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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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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7 1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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