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상처를 보듬는 달콤한 향기

서양골동양과자점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장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3월

캔디류의 만화가 주는 극도의 긴장감이 나는 싫다. 언젠가는 모든 누명이 밝혀질 것이 뻔한데도, 늘 당하는 아이의 일상은 불쾌하다. 물론 매력적인 악인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가의 미움을 받고 있는 것같은 이라이자류의 인물들도 나는 싫다. 우리가 경험하는 갈등과 상처는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 존재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인물들이 대부분인 만화에 늘 매혹당하고, 그런 그들이 모여 상처 받고 갈등하면서 결국에는 삶과 화해해나가는 만화에 대부분 동의한다.

어렸을 적 유괴를 당했던 상처를 악몽으로만 기억하며 살아가는 타치바나는 타인을 배려하는 그의 태도가 타인과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잘 알지 못한다. 유일하게 자신이 상처를 준 동급생 오노와 함께 양과자점을 운영하면서, 그가 보여주는 조금은 실없어 보이는 유머는 그와 세상과의 거리이며 동시에 자신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사랑과 성에 상처받은 게이 오노는 수많은 남자들과 원나잇을 즐기지만, 그 관계를 통해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방법을 터득할 만큼 성숙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전세계 챔피언이었지만, 또한 삼류 양아치였던 에이지를 제일의 파티셰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을 긍정하는 성숙한 시선, 네 남자가 서로 맺어가는 관계는 그런 시선으로 얽혀 있다. 껄렁한 복서 에이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프랑스로 날아가고, 늘 모든 것이 더딘 츠카케가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 타치바나 곁을 떠나기까기 네 명의 남자들은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를 성장하게 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연결해주는 엔티크의 케이크들은 독자들의 후각과 미각과, 시각을 모두 자극한다. 케이크라는 것이 그렇게 달콤하고,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왜 피곤할 때 단것이 먹고 싶은지, 생리학적으로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단것이 입맛에 퍼지면서 만들어내는 풍요로움을 조금쯤은 알 것 같다.

타치바다는 여전히 악몽을 꾸고, 오노는 여전히 오모테산도 거리를 헤매겠지만, 프랑스를 다녀온 후에도 에이지는 여전히 투덜거리는 어린 파티셰겠지만, 그리고 츠카케는 아직 이삿짐 정리도 혼자 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삶을 살겠지만, 그들이 만드는 케이크는 잊지 못할 달콤함을 선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