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새벽 1
최인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깊은 절망을 느꼈다. 용서도, 응징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그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허무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독서의 시간이 내내 허무해졌다.

사순절의 시작에 사탄과 다시 만난 최성규의 절망을 보여주었던 강렬한 시작은 소설이 전개되면서 자꾸만 반복되는 종교적 인식으로 인해 날카로움을 잃어갔다. 겨우 안정을 되찾은 삶의 복판에서, 그것도 자신의 안식처에서 사탄과 조우한 최성규의 갈등과 좌절은 농밀하게 묘사되지 않았고, 자꾸만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갈등과 겹쳐서 독실한 신앙을 가진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했다. 그리고 그의 가슴 절절한 신앙 고백에 이어지는 용서는, 용서라는 그 단어가 갖는 무게와 가치에도 불구하고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최성규가 신영철의 존재를 폭로하여, 거대한 역사 속에서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왔던 사탄이 몰락하기를 바랬던 것일까. 아니면 최성규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더라도, 사탄을 응징하기를 바랬던 것일까. 우리 역사가 하지 못했던 그 어떤 일을 소설 속 인물이 해주기를 바랬던 것일까.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 소설을 통해 과거 청산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마리 마들랜 수녀의 그 고된 여정보다, 어쩌면 지금 이 도시의 변두리에서 헤매이고 있을 초라한 고등학교 교사의 삶이 더 궁금했던 것이다. 성당이 아닌 곳에서, 그가 겪어내야 했던 좌절과, 그의 분노와, 그의 상처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또, 소설 속의 소설인 마리 마들랜의 수기-분명 수기를 쓴 사람은 장님인 마리 마들랜 수녀인데, 그녀는 너무나 생생하게 문제의 현장을 보고 있다. 그리고 수기 속에서 장님인 수녀가 잠깐 등장하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수기는 마리 마들랜이 소설의 형식을 빌어 재구성한 것인가? 처음에는 나름대로 생생하게 읽혔던 그 수기를 2권째에서는 거의 읽지 않고 건너뛴 것을 고백한다. 아마도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져 깊이 있는 사유를 하지 못하는 내 수준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