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 1 -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나카하라 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헤븐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나왔던 이 만화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무열이었다. 어느 작은 섬에서, 슬픔을 안고 달리기를 시작한 소년에서 매우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안타깝게 기다리던 다음 권이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더니, 유스케라는 이름으로 이 책이 다시 나왔을 때 나는 내내 완결을 기다렸다. 그 어리던 무열이가 어느 새 고등학생이 되어 무거운 어깨띠를 두르고 역전 마라톤에서 뛰던 날, 나는 그 곳에 모인 어떤 관중들보다 더 흥분했다.

어쩌면 이 책은 만화로서 그리 재미 없을 수도 있다. <스타트>에 등장하는 유스케의 라이벌들은 그 많은 만화 속 인물들이 보여준 악당의 기질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온 마음으로 유스케의 질주를 동경하고,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뛰어왔던 그 바다가 고개길을 사랑한다. 달리면서, 자신이 달리는 의미를 찾으려는 그들은 마라톤이라는 그 장엄한 드라마에 애써 의미 부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앞에서 뛴 선수의 땀방울이 스며든 어깨띠의 무거움만을, 그 무거움으로 인해서 더 무거워지는 다리의 움직임만을 고스란히 보여줄 뿐이다. 이 만화에서는 어떤 특별한 스포츠 철학도, 악당이 만들어낸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영웅의 뛰어난 지략도 없다.

다만, 언제나 조금 느린 호흡으로 유스케의 움직임으로 읽어내는 나오코의 독백은 그들이 함께 뛰어왔던 모든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에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보여줄 뿐이다. 이따금씩 가슴을 치는 나오코의 독백들이 어쩌면 만화를 읽는 재미를 반감시켜줄 수도 있다. <스타트>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나 대사, 그들의 독백은 만화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소설적이다. 호흡이 길어야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마라톤처럼, 이 만화 역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유스케가 지쳐할 때 그 속만큼 읽는 속도를 줄인다면, 나오코의 독백이 나올 때, 잠시 쉬면서 그 독백 속에 묻어나오는 바다 바람을 느낀다면 이 만화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만화가 된다.

만화다운 상상력이 넘치는 만화들은 여전히 좋다. 박진감 있는 승부의 세계는 스포츠 만화의 백미다. 그러나 그런 만화들 속에서 이따금 발견하게 되는 사람 자체에 대한 성찰은 유난히 더 감동적이다. 사람 많은 만화방에서 오래 기다린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그 속에 푹 빠져 눈물 글썽일 수 있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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