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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산 <자전거 여행>은 오래 만나다 이제는 남이 된 사람에게 선물을 했다. 오랫만에 그 사람을 만나던 날, 가방 안에는 이 책이 있었다. 몇 장을 아껴가면서 읽던 책을 주고 온 후 몇 달을 미루다 다시 샀던 책은 군대에서 휴가 나온 후배 한 명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오랜 시간이 보낸 후에 이 책을 사게 되었고, 그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 책을 모두 읽었다.
명문으로 유명한 김훈의 문장을 따라 읽어가는 속도는 처음으로 빠를 수가 없다. 그가 자전거 페달을 굴리다가, 쉬었을 언덕에서 내 독서는 같이 쉴 수밖에 없었고, 그가 눈길을 주었을 어떤 나루 한 그루에 나 역시 오래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김훈의 문장들은 그 언덕의 자잘한 굴곡을 세밀하게 느끼게 했고, 자전거 바퀴 틈으로 새어나가는 미미한 바람의 흔적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의 수필이나 소설은 나의 독서를 방해하고, 머뭇거리게 한다. 그러다가는 결국, 내 마음은 방랑을 시작한다. 그의 자전거가 지나갔던 길들을 따라다니다, 마음은 금방 지쳐 책상 앞으로 돌아오지만 그 세세한 인상을 그대로 주변에 남아 있는 느낌에 오래도록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기행문은 책상 위에서 읽혀지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책의 여정을 따라 몸을 움직이게 하는 책, 그 떠남의 길 위에서 책장이 들춰지는 책이 좋다. 그러나 김훈의 책은 그러기에 적합하지 않다. 떠도는 길 위에서 그의 책을 읽다가는, 어느 이름 모를 길목에 주저앉아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에 매혹되어, 더 이상 발을 옮기게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늘 먼 곳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이 곳에서 있는 사람들. 마음의 방황을 즐겨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주 좋은 처방전이다. 한 여름 도심의 한 복판에서 나는 뚝뚝, 동백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