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이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누구나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그냥, 자신이 부잣집에서 버려진 가려한 자식이 아닐까,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그 상상의 세계는 무한정 확장한다. 그 상상의 세계 속에서 때로는 부모님을 죽이기도 하고, 형제나 자매에게 불행한 일이 찾아오기도 한다.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그런 사건은 고통과 쾌감을 동반한다. 니콜라가 경험했던 감미로운 고통, 그것은 내 유년의 세계 어느 한 자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그런 쾌감은 반드시 죄책감을 동반한다. 머리 속의 세계에서 엄마를 죽이고 나서, 그래서 달콤한 고통의 눈물을 흉내내고 나서, 한껏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내게,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현실의 엄마는 구체적인 고통이 된다. 나는 잠시나마 머리 속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에 머리 속에서 그려냈던 상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때 느끼는 죄책감과 공포는 밥상 앞에 앉는 상황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겨울아이>의 공포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 아이의 실종 사건을 가지고 어린 니콜라는 상상의 날개를 편다. 그 상상 속에서 왕따 당하던 약한 소년 니콜라는 훌륭한 탐정이 되고, 아이의 짐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불성실한 아빠는 정의를 위해 맨몸으로 맞서는 용기 있는 인간이 된다. 그러나 실종되었던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니콜라 앞에 펼쳐진 진실이란, 반쯤은 상상의 세계와 일치하고, 반쯤은 니콜라의 상상을 벗어난다. 니콜라의 상상 속 가장 어두운 세계는 현실과 그대로 겹쳐지고, 니콜라 상상 속에서 가장 환한 세계는 현실을 벗어난다. 그러면서 아이는 세상을 향한 문 앞에 혼자서 서게 되는 것이다.

이따금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만나게 되는 함정, 누군가 함정을 파 놓고 내 발이 거기에 딛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끊임 없이 그 함정에 대해 상상을 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본다. 그러나 정작 내가 만나게 될 함정은 내 상상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 때 나는 어린 니콜라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것도 묻지 못하고 입을 닫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