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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처음 이 소설의 몇 장을 읽었을 때, 나는 한강이라는 조숙한 작가가 썼던 과거의 몇 작품들을 떠올렸다. 20대에 등단한 작가가 너무나 어둡게 그려냈던 그때의 세상들은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그러나 그 때 느꼈던 막연한 어둠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오히려 더 컸다. 약속 시간을 미루면서까지 책장을 넘기게 하는 그런 힘이, 소설에는 있었다.
그러나 장운형이라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벗어나면서, 그 힘은 소설 속에서 조금씨 약해졌고 종내는 자취를 감추더니 끝내는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소설가를 화자로 한 액자의 바깥부분과 조각가를 화자로 한 액자의 안 부분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했지만, 나는 소설가가 읽어낸 조각가의 삶이, 그가 짐작하게 된 장운형의 도피 이유가 좀처럼 짐작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감추려고 하는 이면을 일찍 보아버린 장운형의 비극은 어린 시절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읽는 이를 압도한다. 독자로 하여금 어머니의 평범한 미소를 의심하게 하고, 아버지의 눈물에 스민 가식을 읽게 했다. 그 아이답지 않은 아이의 조숙한 시선 때문에 때로는 숨이 막히고, 때로는 탄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성장하고 두 여자를 만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갑자기 사라지고, 내용은 진부해지고 만다.
두 여자가 갖고 있는 과거의 상처는, 그 상처가 몸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전혀 새롭지가 않다. 그리고 그 상처를 읽어내는 장운형의 심리를 나는 좀처럼 읽은 수가 없었다.(물론 이건 순전히 문장과 문장 사이의 깊은 간극을 읽어내지 못하는 내 어설픈 독서 때문이다.) 두 여자의 상처는 너무나 깊지만, 그것을 장운형이 미리 비극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좀처럼 그 비극에 가까이 갈 수 없고, 폭식증에 걸린 L의 모습은 너무나도 상투적이다. 그리고 결말, 나는 도무지 장운형의 실종이 어떤 실존적인 이유를 갖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장운형의 기록을 읽는 소설가는 그 이유를 이해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소설에는 깊이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마치 이승우의 생의 이면을 읽었을 때와 같이 가슴을 옥죄이던 소설 전반부의 인상은 지금까지의 투덜거림보다 훨씬 더 컸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