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갑자기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행복한 책읽기'에 눈이 간 것은 우연만은 아니었다. 얼마 전 만났던 누군가는 김현 선생님의 탁월한 예지력과 분석력에 대해 감탄했다. 그래, 그런 면이 있었지, 라며 수긍하고 돌아와서도 갑자기 그 내용이 궁금했다. 그러다 며칠,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10년 전, 필독서쯤으로 치부하면서, 거기에 나오는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을 읽었었다. 그 때 나는 김현이라는 한 젊은-그러나 이 세상에 없는-평론가의 나이보다 젊은 학구열에 매료되었다. 내가 읽은 책, 내가 아는 책은 아주 이따금만 나왔고, 나는 하루에도 몇 권씩 새로운 책에 대한 호기심에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의 박식과 그의 냉철한 분석력과 그의 왕성한 독서량에 감탄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그 때 이 책은 나의 호감을 사기에는 충분했지만, 감동을 주지는 않았다. 아니, 그 때의 나는 '행복한 책읽기'를 읽으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만한 마음과 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행복한 책읽기'를 아주 행복하게 읽었다. 이 책 속에서 나는 지금부터 15년 전 김현이라는 한 평론가가 분석한 많은 작가들은 만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김현 선생님의 분석은 아주 정확하고 그 분석을 토대로 한 작가에 대한 전망은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그 내용을 확인할 때마다 그의 부재가 안타깝다.

그러나 전과 달리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은 작가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이 아니다. 나는 김현이라는 평론가 이전에 죽음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만나고, 문득문득 마음이 아파진다. 일주일에 한번 숨을 헐떡거리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 문득문득 죽음과 만나는 사람, 자신의 삶의 나사를 헐겁게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가 보는 세상. 일기 속에는 그의 열정과 지식은 물론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그것과 비례하는 두려움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를 통해 평론가 김현이라는 존재는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김현이라는 한 사람을 얼마나 우상화시키고 있었던가. 내 마음 속에서 그 동안 그의 존재는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던가, 새삼 깨닫는다.

행복한 책읽기는 단순한 독서일기가 아니다. 책 속에서는 너무나 뛰어난 한 평론가의 지적 성과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삶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가라앉아 있고, 그의 두려움과 고통이 솔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독서에 대한 열망을 일깨우면서, 내 삶을 겸허하게 돌아보게 한다. 내 젊음과 내 존재와 내 삶의 방식을 부끄럽게 만들고, 한 사람의 부재를 더 크게 만든다. 사적인 그의 일기는 그래서 아직, 문학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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