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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
움베르토 에코 지음, 손유택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가 에코의 라이브러리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은 철저하게 수용미학적 입장에서 씌어진 책이다. '독자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도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독자는 이야기 진행 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기본적 요소이기도 하다'는 전제 아래 에코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소설에 접근할 것인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독자들을 고려한 글쓰기, 그리고 한 작가로써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은 소설을 읽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 위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에코는 텍스트는 하나의 숲, 그것도 많은 갈래길이 있는 하나의 숲이라는 보르헤스의 말과 같은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그리고 무수한 갈림길 속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한다. 그는 독자를 전형적 독자와 경험적 독자로 구분하는데, 경험적 독자는 흔히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텍스트에 이입하여 그저, 자기 식대로 이해하는 독자를 말한다. 이와 대비되는 전형적 독자는 작가가 텍스트의 협력자로서 기대할 뿐만 아니라, 텍스트가 창조해 내려고 하는 이상적인 독자이다. 그리고 이런 전형적 독자들은 소설 속에 존재하는 전형적인 작가를 찾아낸다.
전형적인 작가란 창조주처럼 자기 작품 내부나 뒤나 위에 존재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순수한 형태로 존재 밖에 있는 자이다. 전형적 작가를 찾아내고 그가 독자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했을 때에 한해서 경험적 독자는 본격적으로 전형적 독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에코는 소설이 상상의 세계, 즉 허구의 세계를 다루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불신의 중지(suspension of disbelief)라는 개념을 통해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소설의 허구적 합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허구의 세계는 실제 세계에 기생하는 세계로서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을 제외시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한정되고 폐쇄된 세계에 집중하게 만드는 작은 세계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허구의 세계는 단순히 작은 세계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유사 이래로 실제 세계에는 비밀의 메시지가 존재하는데, 허구의 세계에는 이것이 존재한다. 작가는 창조자로서 그 세계의 내부에서 일련의 읽는 방식들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그 세계의 배후에 상존한다. 따라서 전형적 작가에 대한 탐구는 또 다른 탐구에 대한 대용물이다. 그 탐구의 과정에서 조물주의 이미지가 무한성의 안개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해도 우리는 왜 무가 아니라 어떤 무엇이 존재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에코의 진술은 허구의 세계가 갖는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소설이라는 문학 작품이 갖는 의미로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문학이 힘이 줄어든다는 탄식이 많은 시대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영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속에서 허구의 세계가 갖는 의미는 매일매일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나는 왜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는가? 그것은 세상 어딘가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 세상을 전부 뒤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은 세계, 허구의 세계를 뒤지는 것도 이렇게 벅찬데. 그리고 나는 내가 찾은 메시지를 새로운 곳에 숨겨두고 싶은 것이다. 나 또한 한 세계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의 문화 속에서, 그것도 세계의 주류에 속하지 못한 변방의 한 나라에서 성장해 온 내가 찾은 메시지가 정말로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나 스스로도 자신할 수 없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남들은 모두 옛날에 찾아 이미 폐기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걸 확인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아직은 에코의 가르침을 믿어보기로 하자. 일단은 전형적 독자가 되어 보는 거다. 그리고 나 역시 전형적 작가가 되어 얽히고 섥힌 이 세상의 비밀을 풀어보는 거다. 정말 인생 같은 그런 세상을 한 번쯤 만들어보겠다고 욕심은 그리 해 될 것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