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간이라고 부르지 말라 - 남아프리카 대표단편선 아프리카 문화연구소 기획총서 4
나딘 고디머 외 지음, 이석호 옮김 / 동인(이성모)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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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차마 힘든, 벅찬 무게의 그 무엇을 짊어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살았던 그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혹은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지역 너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들 어깨에 짐 지워진 그 무게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사회라는 이름으로 간단하게 규정해 버리곤 한다.

많은 책을 통해, 영화를 통해, 혹은 풍문처럼 떠도는(그러나 은밀한) 이야기를 통해 그 무게의 얼마큼은 살짝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때도 우리는, 아니 나는 역사를 들먹이며 짐짓 엄숙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 때 그 고통스러운 표정과 어깨의 무게는 실체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내 머리 속에 떠돌고 있는 생각들은, 아주 조금 둔중하게 느껴지는 어깨의 통증은 실체가 아니다.

<나를 인간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남아프리카 대표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남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백인 작가들과 흑인 작가들의 작품을 교대로 편집해 놓은 이 책 속에서 극단적인 인종차별의 현장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의 삶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검둥이의 육체를 얻었을 바에야 검둥이의 뇌를 주지, 라며 한탄하는 흑인 지식인의 외로움은 작가가 다른 소설 구석구석에서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테마이다. 백인 지식인들이 남아프리카의 평등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주장할 때, 실제 그 불평등의 한복판에 있는 흑인 지식인은 모욕적인 불평등보다 극단적인 외로움을 토로한다. 미국 사회로 망명을 선택한 작곡가도 남아프리카의 자연 그대로의 음을 간절히 소원하면서 미국의 소음 속으로 몸을 날린다.

물론 이런 식의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저항만이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이 소설집의 구석구석에는 가난하고 불행한 삶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서 따뜻하게 살아가는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기도 하다. 그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감동을 느낀다. 사회에 대한 저항과 분노 이전에 우리들 모두가 느끼는 다양한 삶의 결들을 그들도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집 전체가 하나의 줄기로 묶여져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런 구체적인 삶의 결들 때문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통해 유럽이나 우리 문단에 흔히 나타나는 아름다운 문장과 섬세한 감정의 무늬들을 기대하는 것을 어리석다. 여기 실린 소설들은 때로 거칠고, 투박하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문장들이 마음 한 켠을 휘젓고 다니는 이 명징한 감각은 무엇일까. 그들 삶의 고단함이 투박하고 거친 문장들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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