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근원
크리스틴 오르방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안녕하세요, 쿠르베씨>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김원일이 쓴 <그림 속 나의 인생>이라는 책에서였는데, 그 책에서 그 그림은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다만 쿠르베라는 화가가 파리 코뮨을 지지했다는 사실과 그가 당시의 화풍에 반기를 들고 사실주의를 강조했지만,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그가 그린 <세상의 근원>이라는 작품이 외설적이라고 평가받았다는 사실만 기억이 날 뿐이다. 그 그림은 화가 쿠르베 자신이 등장했었는데, 그 사진 속에서 나오는 깡마른 화가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 <세상의 근원>을 읽으면서 나는 김원일의 책을 다시 꺼내 그 그림 속에 나오는 화가의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설 책 앞에 함께 실린 <세상의 근원>이라는 그림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아야만 했다.

소설 <세상의 근원>은 동명의 그림 모델이었던 히퍼넌이 쓴 수기와 같은 형식이다. 휘슬러의 애인이었다가 후일 쿠르베의 연인이 된 히퍼넌의 회상을 통해 <세상의 근원>이라는 그림이 왜 그려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쿠르베는 어떤 생각,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히퍼넌의 회상에 따르면 화가 쿠르베는 비어 있음과 존재함이 함께 있는 여성의 성기에서 세상의 근원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사실적으로 재생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온 열정을 쏟아낸다. 그는 휘퍼넌의 성기가 가진 가장 따뜻한 색을 그리고자 하고, 남자들이 세상에 나온 최초의 길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 욕망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읽고자 한다.

소리과 색과 냄새에 민감한 쿠르베의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예술가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소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실재로 존재하는 그림과 소설의 내용에 연결되는 것은 소설 역시 가려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인간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쿠르베가 여성의 성기를 통해 세상의 근원에 다가가고자 했던 노력은 작가 크리스틴 오르방이 <세상의 근원>이라는 그림을 통해 세상에 근원에 다가가고자 했던 노력과 일치한다. 예술가에게 관찰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은 진실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의 근원>이라는 쿠르베의 작품은 오랜 시간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그림이 박물관에 나오기 전 그 그림을 소유했던 사람은 자크 라캉이라고 한다. 라캉조차도 그 그림을 다른 그림으로 가려놓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었나를 알게 한다. 비단 히퍼넌이 그 그림을 처음 보고 수치심과 절망을 느꼈다는 소설 속의 고백을 읽지 않더라도 말이다.

아직도 인간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들이 많고, 넘어서는 안 될 금기의 영역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지점에 그림이, 또한 문학이 존재한다. 적나라하게, 아주 직설적으로 세상을 인식할 것.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무엇을 찾아낼 것. 이것은 아주 고대로부터 인간에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 속에서 내가 찾아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내 몫으로 남겨진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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