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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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등 뒤로 지나가는 어떤 것을 느낀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텅 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혹은 빈 집에서 세수를 하다가. 너무나 또렷하게 어떤 존재를 느끼는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것은 없다.

언제부터인지, 보이지 않는 세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감각이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어서, 너무 큰 소리도, 너무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하고 역한 냄새에도 금방 둔해진다. 시각 역시 마찬가지인듯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금방 허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불완전한 감각에 대한 인식은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것들, 그러나 엄연한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이승우의 신작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은 바로 인간의 감각 이전에 존재한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집안의 악취를 호소하는가 하면, 혼자 사는 여인이 자신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소설에서 이들의 존재가 매력적인 것은 그것들이 어쩌면 허상일지 모른다는 은밀한 암시 때문이 아니라, 그 허상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내용 때문이다. 너무도 간절하게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면서, 귀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서워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보이지 않는 특별한 존재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삶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많은 전설의 고향의 귀신들을 보면 무섭다기 보다 슬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내 삶을 조용히 뒤흔들고, 내 삶에 균열을 일으킨다.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허상에 집착하고 있는 내 삶이 붕괴될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붕괴의 과정은 처참하다. 그러나 붕괴될 때까지 흔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의 내용을,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어떤 것의 삶의 내용을 확인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늦은 밤, 아파트 단지를 지나갈 때마다 주위의 공터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 공터 어딘가에 우산으로 집을 짓고 어떤 여자가 살지는 않을까, 어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꽃향기가 퍼져오지 않을까, 혹시 내 옆에 누군가 발소리를 죽이며 함께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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