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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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여기에 있는가

                                    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2007, 문학동네
 

아무래도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구체적인 줄거리는 거의 머리 속에서 지워져버렸지만, 그 소설 속 세계에 내가 얼마나 매혹되었는지. 암수를 한몸에 가진 생명체와 애꾸눈과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이 펼치는 활극에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그래서 천명관에 대한 부정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또다른 세계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기다림이 길어지면, 부질없는 기대가 높아진다. 그리고 높아진 기대는 독서의 즐거움을 방해한다. 대체로 그렇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라는 표제작때문에, 나는 다시 <고래>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상상에 조금 들떴을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등장한 서간체의 문장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소설의 줄거리는 그닥 흥미롭지도 않았지만, 나는 뭔가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의 세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토마스, 그가 떠난 여행지는 생트로페 항구란 말이다. 나의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물론 이 소설 앞에는 <프랭크와 나>가 있지만, 이 소설은 작가의 등단작이라지 않는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천명관의 세계가 펼쳐질꺼다, 라는 믿음은 몇 편의 소설이 끝나면서 어이없이 사라졌다. <고래>의 황당해서 그지 없이 유쾌했던 그 세계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 세계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실망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금방 천명관이 그려내는 이 현실의 세계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소설의 공간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내가 앉아 있는 익숙한 내 방이 낯설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이 곳에 있는 것이지? 내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최선을 다해 자기의 생을 산다. 중상층의 평범한 생을 영위하기 위하여 제 삶의 목적 따위 고민할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농장의 일요일, 세일링),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모진 소리를 들어가면서 드라마 작가로 성공한다(비행기). 시대의 변화와 가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프랑스혁명사), 실직한 남편이 언젠가 캐나다에서 랍스타를 수입해올 날을 기다리며 마트 점원의 고된 나날들을 견뎌낸다(프랭크와 나). 그들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세상에 특별히 냉소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고, 위험한 욕망을 가졌다거나 불온한 존재들이 아니다. 불온한 것은 시간이고, 세상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위험하고 불온하다. 이 세상은 죽은 고양이가 살아오기도 하고, 믿었던 남편이 동생과 바람을 피기도 한다. 자신이 쓴 드라마 대본과 실제의 삶은 어이없이 섞여 버려서 삶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가 되는가 하면 그렇게도 동경했던 디제이형은 어설픈 양아치일 뿐이다. 그리고 이 불온한 세상은 이들이 꿈꾸는 일상에 이따금 린치를 가한다. 그때마다 이들은 어리둥절하다. 아프다,는 비명보다 먼저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되었지? 겨울날 잠옷차림으로 달린 도로 위에서, 아버지의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위에서, 아이들과 골프공을 주우러 찾아간 호숫가에서 이들은 생이 날리는 주먹을 맞고, 어리둥절해 할 뿐이다. 이유도 없이 한 방 얻어맞고, 답도 없는 질문에 머리 속이 뒤엉킨다. 그저 자고 나니, 나는 여기에 있을 뿐인데. 그제서야 우리의 가여운 주인공들은 세상에 주먹질을 해보지만, 그건 그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숟가락 구부리기에 불과한 것이다. 겨우겨우 성공해도 쌀도 안 나오고, 돈도 안 나오는, 숟가락 구부리기와 같은 것.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대학생이었다. 유학을 했다 복학한 그해, 가을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한 선배의 심부름으로 교정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여기저기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문득 동기들 무리가 내 옆을 지나간다. 너희들 어디 가? 내 물음에 동기 중 하나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수업 들어가지, 가긴 어딜 가. 그제서야 나는 수업 시간임을 깨닫는다. 할 일이 많은데, 여기 저기 뛰어다녀야 하는데. 그러나 상황은 보다 심각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반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수업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거다. 그 순간 등에서 식은 땀이 났다. 도대체 나는 무얼 하러 뛰어나니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지? 나는 왜 한번도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던 거지?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려 했지만 도무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 이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더욱 막막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내 꿈의 세계와 내 현실의 세계와 천명관 소설의 세계가 겹쳐져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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