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erist 2004-11-09  

그러고보니...
지난 토요일에 나다에서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를 봤어요. 눈 똘망똘망한 후배와 함께.

그날따라 은행 카드가 안 먹혔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약속시간 30분 전에 나갔지만 혹시나 하고 은행을 네 군데나 뛰어다녔지만 다 해당은행사 장애. 라는 비정한 메세지뿐. 어쩔 수 없이 약속시간 맞춰 돌아오니 나다 앞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자그마한 아이가 기다리더군요. 이마에 배인 땀 대강 닦고 녀석에게 보여달라고 졸랐다니 웃으면서 만원짜리 두 장을 내밀더군요.

다소 늙고 추하게 생겼다고 생각한 주인공의 웃음에 정이 들어갈 때 즈음 영화는 끝났고, 달리 생각나는데가 없어서 호질에 만두전골을 먹으러 갔어요. 비빔밥 나오면 고추장 절반 이상을 덜어버리는, 민감한 녀석은 연신 전골이 맵다고, 만두가 다 터졌다고 투덜댔어요. '맛은 있지만'이란 단서를 붙였지만요.

재밌는 건 지지난 주 낮, 익숙한 높이 만큼의 밥과 전골을 남기더만요. 검은쌀을 섞은 밥의 1/4, 뚝배기 안에 1/3을. 그거 보면서 생각했어요. 여자들 밥통 크기는 대강 다 비슷한가보다. 라구요. 남기면 아까우니까, 다음부터 또 만날 땐 매너 밥통 비우고 와야지. 남은 밥 매너가 싹싹 긁어먹어야지.

만만한 밥집 덕분에 하나 더 알아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갑니다. =)

 
 
선인장 2004-11-09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집 만두는 원래 터진 맛에 먹는건데... 여자들 밥통이라고 다 똑같은 크기겠어요? 아마 매너님 취향이 반영된 듯 ^^. 그래도 조르면 영화 보여줄 친구도 있고, 늙고 추한 남자에게 정도 느끼고, 나름대로 즐거운 가을을 만끽하고 있군요.
근데, 참 이상해요... 매너님이 여자친구(말 그대로 여자이며 친구인, 혹은 후배일 수도..)에 대한 글을 쓰면, 항상 느낌이 촉촉한 걸까요? 애정이 듬뿍 담긴 말투... 누군가, 그런 느낌으로 글을 써 주면 참 좋을 거 같네요.(절대 강요는 아님, 절------대)
조만간 기회를 드리죠.. 남은 밥 싹싹 긁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