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서가 2003-10-31  

선인장님~
담배 끊을 요량으로 시작한 달리기가, 이젠 오롯하게 즐길만큼 몸에 배었습니다. 금연, 열 이틀 쨉니다. 며칠 전엔 꿈에서, 담배 20가치를 뭉터기로 아귀넣고 피워대는 꿈을 꿨어요. 그런 정도의 금단증세를 빼면, 아직 잘 견디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5시, 한창 몽중간에 허우적댈 때, 한 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래 사귄 누군가와 헤어지고 저에게 전화해서는, 눈물 콧물 뿌리며 다짜고짜 울기부터 했어요. 남 모르게 제가 좋아해오던 아이인데, 그 난데없는 전화를 새벽에 받곤, 참 묘한 양가감정에 시달리고 있어요. 아무리 많이 겪었대도, 연애엔 패턴이란 게 형성되지 않아, 제겐 매번의 연애가 결국 첫 연애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방향도, 지점도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가 왜 나한테 전화했을까,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저렇게 꿍얼꿍얼해서 블라블라해서 행복하게 산다,라는 결말까지, 이불 속에 모로 누워, 머릿속에서 장장 3시간 동안 신파극 하나 쓰고, 스스로도 참 유치하단 생각에 피식, 웃었습니다.

......이런 거, 말해놓으니 더 유치한 거 같아요, 에이...
 
 
선인장 2003-11-01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우연이었겠지만, 저도 어제 새벽 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참 푸념을 했네요. 그리고는 출근도 하지 않고 31일을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보냈어요. 의도하지 않아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큰 상처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태연하게 행동해놓고서는, 상처받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는 무섭습니다. 그 상황에 대한 나의 선택은 도피. 일단은 보지 않고, 일단은 말하지 않고, 견뎌볼 요량인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십 년 동안의 신뢰와 그 동안의 애정이 단순한 장난으로 없어질 수 있냐고, 되려 욕만 먹었지만, 내가 본 건 사람 사이의 장난 뿐이니까, 지금은 십 년 동안의 보이지 않는 신뢰따위 생각할 여력이 없어요... 밤 사이 지방에서 하는 연극 공연 중에 내 전화를 받아준 선배가 고맙네요.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11월이 되었고, 그 11월을 어떻게 살아갈지 암담하기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