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슬퍼서 저절로 흘리는 그런 눈물.
그러나 영화 [마음이]는 슬프지 않았다.
불쌍해서, 엄마없이 사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어이없게 죽은 소이가 불쌍해서, 어이없이 구박당하는 마음이가 불쌍해서, 앵벌이가 된 유승호가 불쌍해서, 베키에게 물어뜯기는 마음이가 불쌍해서, 노숙자가 되어버린 유승호가 마음이가 불쌍해서, 녹내장이 심각해진 마음이가 불쌍해서, 영원히 소이를 기다리는 마음이가 불쌍해서...눈물이 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 불쌍한 남매의 엄마는 결국 돌아온 것으로 설정했는지...
현실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식 버리고 떠난다. 십중팔구...
강아지를 이용해서 이렇게 불쌍하게 스토리를 엮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은 그야말로 마음껏 방황한다.
홀든이 그렇게 마음껏 방황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부모님이 부자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래서 조금 화가 났다.
머리속이 복잡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홀든처럼 방황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난?
[능소화]에서
주인공 여늬와 응태는 요샛말로 하면 얼짱들이다.
얼굴이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얼굴이 추한 사람은 추한 만큼 추한 사랑을 하는 것인가.
사람들의 편견은 정말 무섭다.
얼굴보다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기 때문에
추한 사람은 마음마저 추한 듯....가늠해버린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추남추녀였다면
조선을 뛰어넘어 현대에까지 전해진 그들의 사랑이 여전히 아름답다고 했을까...
오늘따라 웬지 발을 걸고 싶다.